이달충(李達衷, 1309년[1]1385년)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다. 초명은 이달중(李達中), 자는 중권(仲權)[2], 호는 제정(霽亭),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생애 편집

1326년(충숙왕 13) 신천(辛蕆)이 주관한 성균시(成均試)에 장원으로 합격하고[3], 같은 해 문과에도 급제했다.[2]

이후 좌사보(左思補), 전리정랑(典理正郞), 성균좨주(成均祭酒)를 거쳤다.[4][5]

1352년(공민왕 원년)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임명되었다가 이듬해 감찰대부(監察大夫)로 옮겼고, 1358년(공민왕 7) 호부상서(戶部尙書)로서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로 나갔다.[6]

1366년(공민왕 15) 왕이 그를 이름난 선비라 하여 밀직제학(密直提學)으로 발탁했으나, 당시 권세를 부리던 신돈(辛旽)에게 그가 술과 여색을 밝힌다는 말을 했다가, 얼마 안 되어 파직당했다.

신돈이 처형당한 후, 계림부윤(鷄林府尹)으로 임명되자 글을 올려 사양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했으며, 1385년(우왕 11) 계림군(鷄林君)으로 있다가 졸하자 문정(文靖)이라는 시호를 받았다.[7] 묘소는 경기도 성남시 탄동에 있다가 도시계획으로 추자리, 신탄진 등을 거쳐 2010년 안동시 풍산면 만운리 산61번지로 이장되었다.

가족 관계 편집

정사에 나오는 부분은 출처를 생략했다.

  • 증조 - 이핵(李翮)[8] : 증(贈) 좌복야(左僕射)
    • 조부 - 이세기(李世基)[8] : 밀직사부사(密直司副使)·예문관대제학(藝文舘大提學), 문희공(文僖公)
      • 아버지 - 이천(李蒨, ? ~ 1349년) :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 월성군(月城君), 문효공(文孝公)
      • 어머니 - 죽성군(竹城君) 박전(朴顓)의 딸[8]
        • 이복 형 - 이경중(李敬中)[8] : 월성군, 이정견(李廷堅)의 조부
        • 이복 형 - 이배중(李培中)[8] : 전리판서(典理判書)
        • 이복 동생 - 이성중(李誠中, 1332년 ~ 1411년) : 검교좌정승(檢校左政丞), 정순공(靖順公)
        • 첫째 부인 - 참지문하정사(參知門下政事)·집현전대학사(集賢殿大學士) 조문근(趙文瑾)의 차녀[8]
          • 장남 - 이준(李竴, 1338년 ~ ?) : 호조전서(戶曹典書)
          • 차남 - 이전(李竱) :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월성군, 이승상(李升商, ? ~ 1413년)의 아버지
          • 3남 - 이수(李䇕) : 판강릉대도호부사(判江陵大都護府使), 증 공조판서(工曹判書), 이흥상(李興商, ? ~ 1465년)의 아버지
          • 4남 - 이횡(李竑)
          • 첫째 사위 - 윤승렬(尹承烈)[8] : 내시(內侍)
          • 둘째 사위 - 방순(方恂)[8][9] : 판전교시사(判典校侍事)
        • 둘째 부인 - 상서(尙書) 조천우(趙千祐)의 차녀[8]

각주 편집

  1. 『제정집』의 본인 행장에 '妣延昌郡夫人朴氏 忠宣王元年己酉公生'라고 기록되어 있다.
  2. 『제정집』의 본인 행장
  3. 『고려사』 「선거지」
  4. 『고려사절요』
  5. 『고려사』 「충목왕세가」
  6. 『고려사』 「공민왕세가」
  7. 『고려사』 「이달충전」
  8. 『씨족원류』
  9. 이달충의 차녀는 방순의 후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