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
서울특별시 중구의 하위 행정구역
(장충동2가에서 넘어옴)
장충동 奬忠洞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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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Jangchung-dong |
행정 | |
국가 | 대한민국 |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
행정 구역 | 9개 통, 48개 반 |
법정동 | 묵정동, 장충동1가, 장충동2가 |
관청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8길 22 |
지리 | |
면적 | 1.14km2 |
인문 | |
인구 | 4,691명(2022년 8월) |
세대 | 2,669세대 |
인구 밀도 | 4,110명/km2 |
지역 부호 | |
웹사이트 | 중구 장충동 주민센터 |
개요 편집
장충동이라는 명칭은 이 부근에 있던 장충단의 이름을 따서 생겨난 것이다. 1900년에 설치된 장충단은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 열사를 기리는 제를 지내던 곳인데 1946년 10월 1일 일본식 동 이름을 유서 깊은 우리 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 지역 일대가 '장충동'으로 이름 지어졌다. 그리고 묵정동이라는 동명은 '먹절골'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비롯되는데, 이 먹절골은 지금의 묵정동, 충무로 4, 5가, 필동 2, 3가에 걸쳐있던 지역이다. 오래전 이 일대는 '먹절' 혹은 '묵사'로 부르던 절이 있어서 '먹절골' 혹은 '먹적골', '묵동'(墨洞), '묵사동' 등으로 불렸다. 먹절골에는 또한 그 깊이가 매우 깊어 늘 시커멓게 보이므로 '감정우물'이라 불리는 우물이 있었는데 바로 먹절골의 '감정우물'이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묵정동이라는 동명이 유래된 것이다.[1]
법정동 편집
명소 편집
장충단 공원은 명성황후가 살해된 을미사변 때 순국한 충신, 열사들을 제사하기 위해 1900년 9월 대한제국 고종이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설치한 데서 비롯되었다. 본래 장충단은 현재 장충단 공원을 포함하여 신라호텔, 국립극장, 자유센터, 서울타워호텔 터를 아우르는 큰 규모였다. 청계천의 수표교를 옮겨놓았고, 서울시 유형문화재 1호인 장충단비가 있다. 안쪽으로는 경로당과 체육 시설, 야외 무대 등이 있으며, 사명대사를 비롯하여 이준, 이한응, 유관순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교통 편집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 ↑ 장충동의 동명 유래 및 연혁, 2017년 7월 9일 확인
외부 링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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