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양왕
고구려의 제18대 국왕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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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양왕(故國壤王, ? ~ 391년, 재위 : 384년 ~ 391년 5월)[1]은 고구려의 제18대 국왕이다. 이름은 이련(伊連) 또는 어지지(於只支)로 고국원왕의 둘째 아들이다.
고국양왕
故國壤王 | |
---|---|
제18대 고구려 국왕 | |
재위 | 384년 11월 ~ 391년 5월 (음력) |
전임 | 소수림왕 |
후임 | 광개토왕 |
이름 | |
휘 | 이련(伊連) · 어지지(於只支) |
시호 | 고국양(故國壤) |
신상정보 | |
출생일 | 미상 |
사망일 | 391년 5월 (음력) |
부친 | 고국원왕 |
모친 | 미상 |
배우자 | 미상 |
자녀 | 광개토왕 |
종교 | 불교 |
능묘 | 고국양(故國壤) |
생애
편집384년 후사가 없이 소수림왕이 붕어하자 고국원왕의 둘째 아들로 왕위에 올랐다.[2]385년 여름 군사 4만으로 후연(後燕)을 공격하여 요동 및 현도를 점령하였으나 그 해 겨울 다시 빼앗겼다.[3] 한편 백제와도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다. 386년 백제를 공격하였으나[4] 389년과 390년에는 오히려 백제의 침입을 받기도 했다.[5][6]392년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신라와 우호관계를 맺고 실성(實聖)을 인질로 받기도 했으며,[7][8] 또한 교서를 내려 불교를 장려하는 한편, 백성을 위해 토지의 신에게 제를 올리는 국사(國社)를 세우고 종묘를 수리하였다.[9] 이 해에 왕이 서거하니 고국양(故國壤)에 장사를 지냈다.[10][11]
가족 관계
편집기년, 연호
편집고국양왕 | 원년 | 2년 | 3년 | 4년 | 5년 | 6년 | 7년 | 8년 |
서력 | 384년 | 385년 | 386년 | 387년 | 388년 | 389년 | 390년 | 391년 |
단기 | 2717년 | 2718년 | 2719년 | 2720년 | 2721년 | 2722년 | 2723년 | 2724년 |
간지 | 갑신 | 을유 | 병술 | 정해 | 무자 | 기축 | 경인 | 신묘 |
고국양왕이 등장하는 작품
편집각주
편집- ↑ 《삼국사기》의 기년 기준이다. 광개토태왕릉비의 기년에 따르면 391년까지 8년 동안 즉위하였다.
- ↑ 김부식 (1145). 〈본기 권18 고국양왕〉. 《삼국사기》.
小獸林王在位十四年薨 無嗣 弟伊連卽位
- ↑ 김부식 (1145). 〈본기 권18 고국양왕〉. 《삼국사기》.
二年 夏六月 王出兵四萬 襲遼東 先是 燕王垂命帶方王佐 鎭龍城 佐聞我軍襲遼東 遣司馬郝景 將兵救之 我軍擊敗之 遂陷遼東·玄菟 虜男女一萬口而還 冬十一月燕慕容農將兵來侵 復遼東·玄菟二郡 初 幽·冀流民多來投 農以范陽龐淵爲遼東太守 招撫之
- ↑ 김부식 (1145). 〈본기 권18 고국양왕〉. 《삼국사기》.
三年...秋八月 王發兵 南伐百濟
- ↑ 김부식 (1145). 〈본기 권18 고국양왕〉. 《삼국사기》.
六年 ...秋九月 百濟來侵 掠南鄙部落而歸
- ↑ 김부식 (1145). 〈본기 권18 고국양왕〉. 《삼국사기》.
七年 秋九月 百濟遣達率眞嘉謨 攻破都押城 虜二百人以歸
- ↑ 김부식 (1145). 〈본기 권18 고국양왕〉. 《삼국사기》.
八年 春 遣使新羅修好 新羅王遣姪實聖爲質
- ↑ 광개토왕릉비에 의하면 392년은 영락 2년으로, 고국양왕은 391년에 죽었다. 이에 따라 이 기사를 광개토왕 시기의 일로 보기도 한다.
- ↑ 김부식 (1145). 〈본기 권18 고국양왕〉. 《삼국사기》.
八年... 三月 下敎 崇信佛法求福 命有司立國社 修宗廟
- ↑ 김부식 (1145). 〈본기 권18 고국양왕〉. 《삼국사기》.
八年... 夏五月 王薨 葬於故國壤 號爲故國壤王
- ↑ 광개토왕릉비의 기년에 따르면 고국양왕의 서거는 391년의 일이다.
같이 보기
편집전 대 소수림왕 |
제18대 고구려 국왕 384년 - 391년 |
후 대 광개토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