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메이 천황(일본어: 欽明天皇 긴메이 텐노[*], 509년 ~ 571년 5월 24일)은 일본의 제 29대 천황(재위 : 539년 12월 30일 ~ 571년 4월 15일)이다. 일본식 시호는 아메쿠니오시하라키히로니와노스메라미코토(天国排開広庭天皇)이다. 시키시마노스메라미코토(志帰嶋天皇 / 斯帰斯麻天皇)로도 불린다.

킨메이 천황
欽明 天皇
야마토 대왕
제29대 일본 천황
재위 539년–571년
전임 센카 천황
후임 비다쓰 천황
이름
시호 한풍: 킨메이 (欽明)
화풍: 아메쿠니 오시하루키 히로니와노 스메라 미코토 (天国排開広庭天皇)
능호 히노쿠마노사카 합릉 (檜隈坂合陵)
신상정보
출생일 509년
사망일 571년 5월 24일
왕조 야마토 왕조
부친 게이타이 천황
모친 다치바나노 나카쓰
배우자 이시히메

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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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풍 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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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쿠니오시하루키히로니와노스메라미코토 (天国押波流岐広庭天皇) - 『고사기
  • 아메쿠니오시하라키히로니와노스메라미코토 (天国排開広庭天皇) - 『일본서기
  • 아메쿠니오시하루키히로니와노미코토 (阿米久爾意斯波留支比里爾波乃弥己等) - 『천수국수장
  • 天國案春岐廣庭天皇 - 『간고지가람록기』

한풍 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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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메이 천황 (欽明天皇) - 대대로 천황과 함께 오우미노 미후네에 의해 붙혀졌다고 한다.

지위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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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당시 지위의 명칭은 천황(덴노)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덴무 천황지토 천황 시대까지 이 명칭이 도입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스메라미코토 또는 아메노시타 시로시메스 대왕(治天下大王)으로 하늘 아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을 의미한다. 또는 긴메이는 야마토 대왕 (ヤマト大王/大君)으로 언급된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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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의 긴메이 천황을 설명하는 여러 연대기의 차이 때문에 어떤 이는 그는 실제로 안칸 천황센카 천황의 라이벌이었다고 믿는다. 긴메이 천황은 형 센카 천황이 죽은 후에 왕좌에 올랐다.

이 설명은 센카 천황은 539년 73세의 나이로 죽었고 왕좌의 계승은 삼남 긴메이가 하였는데 그는 센카 천황의 동생이었다. 얼마 후 긴메이 천황은 왕좌를 얻었다고 언급된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539년 12월 5일 긴메이 천황이 등극하고, 540년을 원년(元年)으로 삼아 1월에 정비(正妃)를 정하게 된다.[1] 그런데 원년(539년) 2월조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2월에 백제사람 고치후(己知部)가 건너왔다. 그를 왜국의 소후노카미코호리(添上郡)의 야마무라(山村, 현재의 나라시 터전)에 살게 했다. 그는 지금(720년경)의 야마무라의 고치후의 선조(先朝)다. "[2] 이와 같이 당시 백제인들이 왜나라 백제인 왕실에 건너와 고관으로 활약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3] 539년 7월에, "왕도(王都)를 시키시마(磯城嶋, 지금의 나라현 사쿠라이시 카네야)로 옮겼다. 그리하여 왕궁의 호칭을 시키시마의 카나사시노미야(金刺宮)로 부르게 되었다.[4] 고바야시의 주장에 따른다면 고구려에 패해서 왜국으로 망명한 백제 성왕은 이 금자궁을 새로운 왕궁으로 삼고 540년 7월에 긴메이 천황으로서 왜를 다스렸다는 것이다.[5] 소가 씨(蘇我 氏)의 강력한 지지에 의해 즉위한 긴메이 천황은 소가노 이나메(蘇我稲目)와 모노노베노 오코시(物部尾輿) 등을 대신으로 임명하였다. 이후 조정은 소가 씨와 모노노베 씨(物部 氏)의 총지휘하에 놓였다. 그러나 이 두 세력은 '불교 숭배'를 둘러싸고 30년이 넘도록 대립투쟁을 펼쳤다.[6]

긴메이 천황은 그의 궁전을 시키시마 노 카나자시 궁 (磯城嶋金刺宮)을 야마토에 세웠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긴메이 천황은 571년까지 다스렸고 히노쿠마노사카 합릉(桧隈坂合陵)에 묻혔다고 기록되었지만 실제로는 가시하라시(橿原市)의 미세마루야마 고분(見瀬丸山古墳)에 묻혔다.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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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타이 천황의 적남이다. 어머니는 타시라카노히메미코 (닌켄 천황의 황녀)이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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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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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巻第十九 欽明天皇〉. 《일본서기》. 720. 冬十二月庚辰朔甲申、天國排開廣庭皇子、卽天皇位。時年若干。... 元年春正月庚戌朔甲子、有司請立皇后。詔曰、立正妃武小廣國押盾天皇女石姬爲皇后 
  2. 〈巻第十九 欽明天皇〉. 《일본서기》. 720. 元年...二月、百濟人己知部投化。置倭國添上郡山村。今山村己知部之先也。 
  3. 홍윤기 (2000). 《일본 천황은 한국인이다》. 효형출판. 60쪽. ISBN 8986361329. 반면 『일본서기』를 살펴보면 539년 12월 5일 긴메이 천황이 등극하고, 540년을 원년(元年)으로 삼아 1월에 정비(正妃)를 정하게 된다. 그런데 원년 2월조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2월에 백제사람 고치후〔기지부(己知部)〕가 건너왔다. 그를 왜국의 소후노카미코호리〔添上君〕의 야마무라〔山村, 현재의 나리시 터전〕에 살게 했다. 그는 지금(720년경)의 야마무라의 고치후의 선조(先朝)다. 이와 같이 당시 백제인들이 왜나라 백제인 왕실에 건너와 고관으로 활약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4. 〈巻第十九 欽明天皇〉. 《일본서기》. 720. 元年... 秋七月丙子朔己丑、遷都倭國磯城郡磯城嶋。仍號爲磯城嶋金刺宮。 
  5. 홍윤기 (2000). 《일본 천황은 한국인이다》. 효형출판. 60쪽. ISBN 8986361329. 또한 『일본서기』에는 같은 해 7월에 "왕도(王都)를 시키시마〔磯城嶋, 지금의 나라현 사쿠라이시 가네야〕로 옮겼다. 그리하여 왕궁의 호칭을 시키시마의 가나사시노미야〔金刺宮〕로 부르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고바야시의 주장에 따른다면 고구려에 패해서 왜국으로 망명한 성왕은 이 금자궁을 새로운 왕궁으로 삼고 540년 7월에 긴메이 천황으로서 왜를 다스렸다는 것이다. 
  6. 츠위화 (2008). 《일본 여성(성과 사랑, 삶의 역사)》. 시그마북스. 141쪽. ISBN 9788984453036. 539년 12월 소가(蘇我)의 강력한 지지에 의해 즉위한 긴메이 천황은 소가노 이나메(蘇我稲目)와 모노베 오코시(物部尾輿) 등을 대신으로 임명하였다. 이후 조정은 소가와 모노베(物部)의 총지휘하에 놓였다. 그러나 이 두 세력은 '불교 숭배'를 둘러싸고 30년이 넘도록 대립투쟁을 펼쳤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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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임
센카 천황
제29대 일본 천황
539년 12월 30일 ~ 571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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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다쓰 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