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만 (화가)

김기만(金基萬, 1929년 5월 9일(1929-05-09)~2004년 12월 26일(2004-12-26))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미술가(동양화 화가 겸 조선화 화가)이자 대학 교수였다.

김기만
金基萬
신상정보
출생 1929년 5월 9일(1929-05-09)
일제강점기 경성부 종로방 운니정
사망 2004년 12월 26일(2004-12-26)(75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평양시
직업 동양화, 조선화, 대학 교수
국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학력 평양미술대학교 조선화미술학과 학사(1960년)
경력 로동당 당무위원(1954년 ~ 1955년)
평양미술대학교 조선화미술학과 교수(1970년 ~ 1972년)
조선미술박물관 고문
조선철도미술창작사 고문
활동기간 1944년 ~ 2004년
분야 동양화, 조선화
부모 김승환(부), 한윤명(모)
형제 김기창(첫째형)
친척 박내현(첫째형수)
김현(친질녀)
김완(친조카)
주요 작품
고구려 인민들의 무술 경기》, 《홍경래 농민 폭동》
영향
정창모(鄭昌謨)의 사형(師兄)이며 선우 영(鮮于 英)의 스승
웹사이트 김기만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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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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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김해(金海)이고 서울 출생이며 1944년 동양화가일제강점기 말기 화단에 첫 입문하였고 이후 6·25 한국 전쟁 때(1·4 후퇴 직후 시점이던 1951년 1월 6일 당시)에 북괴 인민의용군 사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강제 월북하였다.

이후 그는 종전 6개월 뒤인 1954년 1월 13일 당시를 전후하여 북괴 인민의용군에서 군필 제대 조치 처분되었고 1956년에는 평안남도 평양미술대학교 조선화미술학과에 입학(당시 28세)하여, 이후 1960년 평양미술대학교 조선화미술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당시 32세)하였으며 이후 조선화가로 활동하였고 또 아울러 1970년 3월부터 1972년 9월까지는 자신의 모교 평양미술대학교의 교수를 잠시 지낸 적이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동양화가 정창모(鄭昌謨)와 사형제(師兄弟) 관계를 이루었다.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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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0년 8월 12일, 이산가족 상봉자라는 입장으로써 대한민국의 서울특별시를 방문하여 당시에 투병을 하고 있던 형 김기창(金基昶)을 만나며 서로 작품을 교환, 이후 대한민국에도 그의 이름이 크게 알려졌다.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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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6일 평양에서 향년 76세로 별세하였다.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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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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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인민들의 무술 경기》
  • 《홍경래 농민 폭동》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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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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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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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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