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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일생편집

본관함평(咸平)이고 호(號)는 효원(曉園)이며 전라북도 전주에서 출생하였고 1942년 동양화가일제 강점기 말기 화단에 첫 입문하였으며 1944년 수묵화가로 첫 입문하였고 8·15 광복 이후에도 미 군정 남조선 과도정부 시대의 동양화가 겸 수묵화가로 활약하다가 1950년 6·25 한국 전쟁북조선인민의용군 사병으로 강제 징집되어 강제 월북하였다.

이후 그는 1953년북조선인민의용군에서 군필 제대 조치 처분되었고 1959년에는 평안남도 평양미술대학교 조선화과에 입학, 이후 1963년 평양미술대학교 조선화과를 학사 학위하였으며 이후 조선화가로 활동하였고 또 아울러 한때 모교 평양미술대학교의 교수를 지낸 적이 있다.

경력편집

앞서 언급을 한 내용처럼 정창모는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전주군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 때 월북하였다. 풍경화와 화조화를 많이 그렸으며, 밑그림 없이 한 번에 그려내는 몰골법의 대가이다. 장승업의 계승자로 추앙받으며 미술계의 계보를 형성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예술인들의 최고 영예인 인민 예술가 칭호를 받았다.[출처 필요] 2000년 서울특별시에 왔던 이산가족 방문단에도 참여하여 남동생 등의 가족을 만났다. 뉴스 보도에 따르면, 정창모는 2010년 7월에 지병으로 별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학력편집

인간 관계편집

각주편집

  1. “북 정창모 화백 수상작 인터넷 경매중”. 통일뉴스. 2006년 8월 26일. 2010년 9월 6일에 확인함. 
  2. “北 효원 정창모 화백, 지난 7월 타계”. KBS NEWS. 2010년 9월 6일. 2010년 9월 6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