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붕준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붕준(金朋濬, 1888년 ~ 1950년 9월)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통일운동가·정치인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중도우파로 원세훈 등과 함께 좌우합작운동과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 그밖에 미군정에서 설치한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 위원으로도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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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줄 오른쪽에 있는 이가 성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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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줄 맨 왼쪽 성주식, 오른쪽 김붕준
맨 뒷줄 왼쪽부터 조성환, 조소앙, 이청천, 이범석, 이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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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안창호, 윤치호의 신민회와 청년학우회에도 가담했고, 한일 합방 후 1911년 한석진 등과 승동학교를 경영하였다. 3.1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상해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임시정부 각료로 활동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때 서울에 있다가 7월 27일 조선인민군에 납북되었다가 그 곳에서 사망하였다. 평안남도 용강 출신이고, 호는 당헌(棠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