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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황해도 해주 청계당에서 태어났다. 호는 청곡(淸谷)‧석천(石泉)이다. 본관은 안동(安東[新])이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56년 한국일보 기자, 1964년 워싱턴특파원을 거쳐 1968년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장을 지냈다. 동양통신 정치부장을 역임했다.

 
10월 유신을 발표하고 있는 당시 김성진 청와대 대변인

1970년 5월 동양통신 정치부장으로 재직할 때 청와대 공보비서관이 됐다. 1971년 대통령 비서실 공보수석에 임명된 뒤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이 됐다.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1975년 문공부 장관으로 재직하다 10·26 사건을 맞게 됐다.

1980년 언론 통폐합 당시 탄생한 단일 통신사연합통신 초대 사장에 임명되며 제5공화국 정권과도 인연을 맺는다. 1981년 서울언론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1983년 연합통신 사장에서 물러난 뒤 한국국제문화협회 회장·한양대학교 초빙교수 직위 등을 맡다가 1991년 주 싱가포르 대사로 기용돼 다음해까지 외교관 생활을 한다.

1992년 대우 부회장으로 영입됐고,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대우경제연구소 회장을 지냈다. 1999년 성곡언론문화재단 이사를 지냈다. 2009년 77세로 지병을 앓다가 사망했다.

김성진은 박정희의 생각을 국민에게 전달하여 '박정희의 입'으로 불렸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다음 날에도 '박정희 대통령이 총탄에 맞아 서거했다'고 울면서 발표하였다. 하지만 그 후 그는 박정희에 대해서는 '독재자' 그리고 '반 민주주의자'라고 평가하였다.[1]

학력편집

명예 박사 학위편집

  • 헝가리 국립과학원 명예 정치학 박사
  • 미국 루이스 클라크 대학교 명예 문학박사

저서편집

  • 《한국정치 100년을 말한다》(1999년 10월)
  • 《박정희를 말하다》(2006년 8월)

각주편집

  1. ‘박정희의 입’ 김성진 전 장관 별세 《한겨레》 2009년 9월 17일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