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정 (조선)

김영정(金永貞, 1437년 ~ 1509년 10월 14일[1])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일지(一之)[1],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진손(金震孫)의 3남이자 김세준(金世準)의 아버지이다.

생애편집

1475년(성종 6) 친시문과(親試文科)에 병과로 급제, 1478년 목천현감이 되었다. 1481년 사헌부지평·성균관직강을 역임하고, 1484년 예조정랑이 된 다음 행 헌부집의·봉상시정을 거쳐 1497년(연산군 3) 대사간에 올랐다. 1498년 이래 3년 동안 세번 명나라에 새해를 축하하는 정조사(正朝使)로 파견되어 북경에 다녀왔다.

1500년(연산군 6) 도총관(都總管), 1502년(연산군 8) 1월 대사헌(大司憲), 12월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를 거쳤으며, 1503년(연산군 9)·1504년(연산군 10) 두 차례에 걸쳐 전라도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로 나갔다.

이듬해 다시 정조사로서 명에 다녀왔으며[2], 이후 파직되어 집에서 지내다가 중종(中宗)조에 지돈녕부사로 복직되었다.

1509년(중종 4) 향년 73세로 졸했으며, 정난공신(定難功臣)에 책록된 3남 김세준(金世準)의 덕으로 병조판서(兵曹判書), 분성군(盆城君)으로 추증되고 안경(安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1]

가족 관계편집

  • 증조 - 김근(金覲)[3] : 판도총랑(版圖摠郎), 증(贈) 호조참의(戶曹參議), 김보(金普)의 손자
    • 조부 - 김효분(金孝芬)[3] : 서흥도호부사(瑞興都護府使), 증 병조참판(兵曹參判)
      • 아버지 - 김진손(金震孫, 1407년 ~ 1449년)[3] : 승문원부교리(承文院副校理), 증 호조판서(戶曹判書)
      • 어머니 - 한성부소윤(漢城府少尹) 이종인(李種仁)의 장녀[3]
        • 형 - 김영견(金永堅) :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 형 - 김영서(金永瑞)[3] : 횡성현감(橫城縣監)
        • 동생 - 김영순(金永純)[3] : 석성현감(石城縣監)
        • 부인 - 교하현감(交河縣監) 이성동(李盛東)의 딸[1]
          • 장남 - 김세균(金世鈞, 1462년 ~ 1534년)[3] : 참교(參校), 증 예조참판(禮曹參判), 김익수(金益壽)의 아버지
          • 차남 - 김세권(金世權)[3]
          • 3남 - 김세준(金世準) : 동부승지(同副承旨)
          • 첫째 사위 - 조정림(趙禎琳)[3] : 충무위후부장(行忠武衛後部將)
          • 둘째 사위 - 이진문(李震文)[3] : 의영고령(義盈庫令)

각주편집

  1. 『김영정 묘비』
  2. 『연산군일기』
  3. 『김진손 신도비명』

안경공파 김한수 풍양조씨 조남미 혼인으로 조남풍 27대 국군보안사령관, 조남기 중국 부주석은 김대중 대통령, 김종필 총리와는 인적관계 형성되었습니다

김영천 - 미 공수부대 김영금 - 미 국무부

김성겸 - 미 육군 대위 김영겸 - 미 하와이 변호사 김진겸 - 미 육군 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