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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양(金致陽, ? ~ 1009년)은 고려의 문신, 무신, 권신, 정치가이다. 본관은 서흥(瑞興)이며, 목종 모후 헌애황후 황보씨의 외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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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양
金致陽
생애 ? ~ 1009년
사망지 고려 송도
본관 서흥(瑞興)
별명 법명 동송(東松)
종교 불교
자녀 1남
복무 고려 군사
복무 기간 997년 ~ 1009년
최종 계급 우복야 겸 삼사사
주요 참전 1008년 송도 모반역모 거병
기타 이력 고려 목종 임금의 섭정

목차

생애편집

고려사》에 따르면 성격이 간교하여 승려를 사칭하였다 한다. 일찍이 승려가 되었다가 천추궁(千秋宮)에 드나들며, 당시 경종의 왕후이자 태후인 헌애왕후(천추태후)와 추문이 있어 성종이 그를 처형하려 했다가 멀리 장배(杖配)하였다. 목종이 즉위한 후 천추태후가 그를 다시 송도로 소환하여 합문통사사인 벼슬을 주었고, 이후 몇 해 안 되어 왕의 존중과 총애를 받다가 우복야 겸 삼사사로 승진했다. 태후와 왕이 총애하자 전횡하게 된다.

1003년 경에 천추태후와의 사이에서 불의의 아들을 낳고 그를 책봉하고자 대량원군 왕순(훗날의 현종)을 살해할 모의를 하다가 실패했으며, 다시 유일한 혈통인 목종을 해하려다가 성공치 못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송도 근처의 사찰에 자신의 부하들을 승려로 위장하여 숨긴 뒤 그들을 사찰 안에서 병력으로 키워서 거병하기도 했다.

강조의 정변으로 왕순(현종)이 즉위하자 김치양은 그의 아들과 함께 처형되고, 그의 일당과 천추태후의 친척 이주정(李周禎) 등은 해도에 유배되었다. 강조는 목종과 천추태후를 충주로 내쫓아 도중에 목종을 죽였고, 이에 천추태후는 황주(黃州)에 숨었다.

가계편집

김치양이 등장한 작품편집

TV 드라마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고려의 대외정책〉" 항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