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베시마 나오시게

나베시마 나오시게(일본어: 鍋島 直茂, 덴분 7년 음력 3월 13일(1538년 4월 12일) ~ 겐나 4년 음력 6월 3일(1618년 7월 24일)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무장이다.

Picto infobox samourai.png
나베시마 나오시게
鍋島 直茂
나베시마 나오시게 상(나베시마 보효회 소장)
나베시마 나오시게 상(나베시마 보효회 소장)
나베시마 행엽
나베시마 행엽
제6대 히젠 나베시마 가문 당주
1585년 ~ 1636년
시대 센고쿠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출생 덴분 7년 음력 3월 13일(1538년 4월 12일)
사망 겐나 4년 음력 6월 3일(1618년 7월 24일)
별명 통칭: 마고시로(孫四郎)
계명 高伝寺殿日峯宗智大居士
묘소 고덴지(高伝寺, 사가현 사가시 혼조정)
막부 에도 막부
주군 류조지 이에카네다카노부 → (마사이에) →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
씨족 나베시마씨
부모 아버지: 나베시마 기요후사
양부: 지바 다네쓰라
형제 형: 노부후사, 동생: 오가와 노부토시, 류조지 야스후사
아내 계실: 요타이인(이시이 쓰네노부의 딸)
자녀 가쓰시게, 다다시게

나오시게는 히젠 류조지씨의 가신이었지만, 히젠국의 실권을 장악하는 등의 권모술수에 능해 주군 류조지 다카노부의 아들 다카후사[1]양자로 들였다. 임진왜란정유재란 시기에 가토 기요마사의 휘하 장수로 참전하였다.

생애편집

히젠 류조지씨의 중신로 1592년 임진왜란 때 제2군 사령관 가토 기요마사의 휘하 장수로 본대보다 더 많은 1만 2000명을 이끌고 참전하였다. 함경도로 진격해 조선의 왕자 임해군순화군을 붙잡는 등 기세를 떨쳤으나 북관대첩에서 의병장 정문부에게 크게 패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제4진으로 황석산성 전투에 참전하였고 제1차 울산성 전투에는 기요마사를 구원하기 위한 8만명의 구원병 총사령관으로 조명연합군을 무찔렀다.

전후 귀국[2]하여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 측에 참전하였다.

1608년 사가성을 수축해 히젠 사가번[3]의 기초를 세워 나베시마가의 번조(藩祖)가 되었다.

각주편집

  1. 히젠 사가번(류조지가)의 초대 번주
  2. 귀국 중에 이삼평 등 많은 조선 도공들을 납치해 아리타정을 일본 도자기 생산지로 만들었다.
  3. 사가번(나베시마가)의 초대 번주는 나오시게의 아들 가쓰시게
전임
나베시마 기요후사
제6대 히젠 나베시마가 당주
후임
나베시마 가쓰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