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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식(南宇植, 1952년 2월 23일 ~ )은 대한민국야구 선수 출신의 기업인이다.

남우식
Nam Wu-sik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생년월일 1952년 2월 23일(1952-02-23) (67세)
출신지 대한민국
신장 176 cm
선수 정보
수비 위치 투수
경력


생애편집

그는 초등학교 때에 야구부에 입단했으나 경북중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포지션은 포수였으나 중학교 2학년 때에 야구부 박창용 감독이 '투수에 알맞은 폼'이라면서 투수 전향을 권했고 이후 투수 전향을 해 은퇴할 때까지 투수 생활을 계속했으나 타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는 전국 대회 6개 중 5개를 제패했으며, 이후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했다.[1]

고등학교 시절 팀의 거의 모든 경기에서 완투를 했으며, 1971년, 고등학교 3학년 때 거의 모든 대회의 경기를 완투하면서 고교야구 사상 최초로 5관왕을 이루어 냈다. 한·일 고교야구 교환 대회에도 출전, 6전 전승을 도왔다. 이후 한양대학교에 진학했다.[2]

1975년 7월, 실업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으나 이후 1976년부터 1978년까지 3년간 상무에 복무하였다. 이때 박철순을 만나게 되었고, 박철순에게 투구에 대한 지도를 해 주었다.[3] 상무에서 제대한 뒤 1979년 다시 팀으로 돌아왔으나 은퇴를 선언했다.[4]

은퇴를 결정한 뒤에 롯데 그룹에 입사했으며 2009년 푸르밀의 이사로 임명받았다.[5]

투구편집

그는 오버핸드 강속구 투수로 구질은 포심 속구를 비롯해 슈트, 커브, 드롭, 너클볼 등을 가지고 있었으나 대부분 직구로 승부했다.[1] 구속은 그 당시에는 스피드 건이 없었으나 그의 동기생은 150km 정도 나왔다고 증언했다.[6]

각주편집

  1. 최민규 (2007년 7월 5일). “철완투수 남우식의 1971년과 그 뒤 36년”. 스포츠 2.0. 2009년 1월 15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2. 최민규 (2007년 7월 5일). “역대 고교야구 최강팀은?(4) 1971년 경북고”. 스포츠 2.0. 2009년 1월 15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3. 이재국 (2009년 1월 31일). “[피플인메모리]푸르밀 대표이사 변신 불세출의 강속구 투수 남우식”. 동아일보. 2009년 2월 21일에 확인함. 
  4. 전창 (2004년 6월 20일). “[스포츠카페]71년 황금사자기 경북고 우승 주역 남우식씨”. 동아일보. 2009년 1월 15일에 확인함.  |제목=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 (도움말)
  5. 이명진 (2009년 1월 14일). “고교야구 스타가 기업 CEO 됐다”. 매일경제. 2009년 1월 15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6. 장강훈 (2009년 1월 14일). '전설적인 투수' 푸르밀 남우식 대표 '인생도 스트라이크'. 스포츠서울. 2009년 1월 1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9년 1월 18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