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군 (고려)

남평군(南平君) 왕화(王和, ? ~ 1394년(조선 태조 3))은 고려 후기의 왕족으로 본관은 개성(開城王氏)이다. 고려 신종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학성부원군 왕향(鶴城府院君 王珦)이다. 공양왕과 사촌간이다.

여말 남평군(南平君)에 봉해졌으나, 1392년(공양왕 4) 정몽주(鄭夢周)가 주살될 때 도평의사(都評議司)의 탄핵을 받아 원지에 유배되었다. 조선이 개국한 뒤인 1394년(태조 3) 고려 종실들이 다시 거제도에 유배될 때 역모로 몰려 안동에 투옥되었으며, 이어 수원부에서 국문당한 뒤 사형당했다.

생애편집

가계편집

신종(神宗)의 7대손이며, 증조부는 익양후 왕분(益陽侯 王玢), 할아버지는 순화후 왕유(淳化侯 王瑈)이고, 학성부원군 왕향(鶴城府院君 王珦)의 아들이다. 정원부원군 왕균(定原府院君 王鈞)의 조카이자 공양왕(恭讓王), 정양군의 사촌 형제였다.

고려 말편집

1389년 사촌 공양왕 즉위 후 남평군에 봉해졌으나, 1390년 이성계(李成桂) 일파가 정권을 장악하고 왕조 타도를 기도하자, 윤이(尹彛)·이초(李初) 등이 이를 제거하려다가 발생한 윤이·이초의 옥(獄)에 연루되어 전판삼사사(前判三司事) 우현보(禹玄寶) 및 수연군 왕규(壽延君 王珪)·영원군 왕기(寧原君 王琦) 등의 종실과 함께 멀리 유배되었다.

유배와 죽음편집

그 뒤 1394년에 유배지를 옮기던 중 외부인을 만났다가 밀성(密城, 지금의 밀양)에 사는 장님 이흥무(李興茂)에게 고려왕실의 복구와 이성계의 운명을 점치게 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관들로부터 역모로 몰려 투옥, 고문을 받고 안동옥(安東獄)에 투옥되었다.

그때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박위(朴葳)역시 이흥무에게 남평군과 같은 내용을 점치게 하였다는 사실이 고변으로 알려짐으로써 언관들의 협공으로 결국 죄가 더욱 확대되어 수원부(水原府)에서 문초를 받은 뒤 동생 영평군 왕거(鈴平君 王琚)·이흥무 등과 함께 대역죄로 사형을 당하였다.

가족 관계편집

  • 7대조 : 고려 제20대 신종(神宗, 1144~1204 재위: 1197~1204)


  • 증조부 : 진한국인숙공 익양후 왕분(辰韓國仁肅公 益陽侯 王玢)
  • 증조모 : 진한국장경비 박씨(辰韓國莊敬妃 朴氏)
    • 조부 : 마한국인혜공 순화후 왕유(馬韓國仁惠公 淳化侯 王瑈, ?~1360)
    • 조모 : 마한국명예비 신씨(馬韓國明睿妃 申氏)
      • 백부 : 삼한국인효대공 정원부원군 왕균(三韓國仁孝大公 定原府院君 王鈞)
      • 백모 : 삼한국대비 왕씨(三韓國大妃 王氏, 생몰년 미상)
        • 사촌 : 정양군 왕우(定陽君 王瑀)
        • 사촌 : 고려 제34대 공양왕(恭讓王, 1345~1394, 재위: 1389~1392)
      • 아버지 : 학성부원군 왕향(鶴城府院君 王珦)
        • 동생 : 영평군 왕거(寧平君 王琚)
        • 부인 : 미상
          • 아들 : 원윤 왕근(元尹 王根)

관련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