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배씨

대구 배씨(大邱裵氏)는 대구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배손적(裵孫迪)의 증손 배정지(裵廷芝)가 고려조에 밀직사부사(密直司副使)에 올랐다.

대구 배씨 (大邱 裵氏)
달성 배씨 (達城 裵氏)
관향대구광역시
시조배손적(裵孫迪)
집성촌대구광역시 북구
경상북도 칠곡군
전라남도 무안군
전라남도 영암군
전라북도 고창군
전라북도 순창군
주요 인물배정지, 배천경, 배협, 배경후, 배상옥, 배상면, 배명인, 배명국, 배기원, 배만운, 배기선, 배기운
인구(2015년)77,942명

역사편집

대구 배씨(大邱裵氏)는 고려조에 대구(大邱) 지방의 향리(鄕吏)를 역임하였다고 한다. 배정지(裴廷芝)가 현달하자 그의 증조부인 배손적(裵孫迪)이 대호군(大護軍)에 추증되었다.

배손적(裵孫迪)의 아들은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에 추증된 배인검(裵仁儉)이고, 손자는 민부전서(民部典書)를 지낸 배영(裵瑩)이다.

배영(裵瑩)의 아들 배정지(裴廷芝)의 초명 배공윤(裵公允)이며, 자는 서한(瑞漢), 호는 금헌(琴軒)이다. 고려 원종조에 도지(都知)가 되었고, 1270년(원종 11) 개경(開京)으로 환도할 때 왕을 호종한 공으로 대정(隊正)이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에 별장(別將)으로 만호(萬戶) 인후(印侯)를 따라 원의 반란군 합단적(哈丹賊)을 무찌른 공으로 중랑장(中郎將)에 특진되었다. 충선왕(忠宣王) 때 호군(護軍)이 되었으며, 1318년(충숙왕 5)에 대호군으로서 탐라존무사(耽羅存撫使)가 되어, 탐라(耽羅)의 반란을 토벌한 후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다.[1] 낭장 정승백(鄭承伯)의 딸과 혼인하여 3남 2녀를 두었다. 전라남도 나주의 초동사(草洞祠)에 제향되었다.

배정지의 둘째 아들 배천경(裵天慶)이 1354년(공민왕 3)에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고, 1356년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를 거쳐 지추밀원사에 올랐으며,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에 특차(特差)되었다. 2년 뒤 판추밀원사(判樞密院事)에 오르고 뒤에 동경윤(東京尹)을 지냈다.

인물편집

  • 배정지(裵廷芝, 1259 ~ 1322) : 고려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민부전서(民部典書) 배영(裵瑩)이다. 고려 충렬왕 때 별장으로 연기에 침입한 거란군을 격파하였으며, 충숙왕 때 일어난 김성(金成)의 탐라 반란사건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워 밀직부사가 되었다.
  • 배성경(裵成慶) : 고려 공민왕 때 과천에 침입한 홍건적과 맞서 싸우다 아들 광유(光裕)와 함께 순절하였다.
  • 배정란 : 고려시대에 도원수를 지냈다.
  • 배천경 : 고려시대에 판추밀원사를 거쳐 동경윤을 지냈으며 달성군에 봉해졌다.
  • 배함경 : 고려시대에 홍건적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검교장군을 지냈다.
  • 배인경 : 조선시대에 우간의대부를 거쳐 고주의 수령이 되었으며 그곳을 잘 다스려 고부군에 봉해졌다.
  • 배익신 : 조선시대에 청송 부사를 지냈다.
  • 배협 :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을 사수하였으나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 배상옥 : 전라남도 무안지역의 동학농민운동 대접주.
  • 배명인 : 33대 법무부 장관, 15대 안기부장
  • 배명국 : 11,12,14대 국회의원
  • 배득식 : 39대 국군기무사령관(육사33기)

과거 급제자편집

달성 배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7명을 배출하였다.[2]

문과

배경후(裵慶垕) 배성유(裵聖兪) 배수동(裵壽仝) 배숙기(裵淑綺) 배익신(裵益臣) 배진명(裵晉明) 배철순(裵哲淳)

무과

배명록(裵命祿) 배상도(裵尙度) 배상준(裵尙俊) 배성두(裵成斗) 배세일(裵世逸) 배우량(裵友良) 배운봉(裵雲奉) 배이발(裵二發) 배준(裵俊) 배진량(裵晉良) 배천경(裵天京) 배한주(裵漢柱) 배후도(裵後度) 배흥준(裵興俊)

생원시

배경국(裵經國) 배면주(裵冕周) 배세령(裵世寧) 배수정(裵守貞) 배수형(裵守亨) 배엽(裵曄) 배우현(裵禹玄) 배위(裵緯) 배정신(裵鼎臣) 배진신(裵震臣) 배홍업(裵弘業) 배환(裵絙) 배훤(裵暄) 배흘(裵紇) 배경업(裵敬業)

진사시

배기(裵紀) 배덕유(裵德裕) 배상선(裵相善) 배세익(裵世益) 배숙기(裵淑綺) 배원순(裵元淳) 배정좌(裵正佐) 배수동(裵壽仝) 배세녕(裵世寧) 배형손(裵亨孫)

본관편집

대구(大丘)는 대구광역시의 지명이다. 신라시대에 달구화현(達句火縣) 또는 달구벌(達句伐)이라 불렸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대구현(大丘縣)으로 개칭하여 양주(良州)의 영현이 되었다. 대구현은 1018년 경산부(京山府)의 속현이 되었으나 1143년(인종 21) 현령을 둠으로써 승격하였다. 조선시대인 1394년(태조 3)에 대구현은 수성현과 해안현(海安縣)을 관할하게 되었으며 1419년(세종 1)에 군으로, 1466년에 도호부로 승격했다. 1601년(선조 34)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경상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1780년(정조 4)에 대구(大丘)를 대구(大邱)로 변경하였으며, 1895년에 대구군이 되었다. 1914년 대구면이 대구부로 승격하고 나머지는 달성군이 되었다. 1949년에는 대구시로 개편되었고, 1981년에 대구직할시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대구광역시로 개편하면서 달성군을 통합하였다.

집성촌편집

  •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
  •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영오리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청천리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태봉리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구산리
  •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우곡리
  • 전라남도 함평군 신광면 유천리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만수리
  •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광승리
  • 전라북도 순창군 류등면 외이리

항렬자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