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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음법칙(頭音法則)이란, 한국어에서 , 이 단어의 음절초에 올 때 그대로 발음되지 않고 발음하기 더 편리한 , 의 음가로 사람들이 대체하여 발음하던 현상을 모든 단어뿐만 아니라 모든 성씨에까지 적용하여 민중의 발음을 표기법에 반영하도록 제정한 법칙을 말한다. 일제 강점기인 1933년에 국어학자인 이숭녕[1][2]이 이를 처음 주장했고, 이희승최현배가 이에 동조하면서 정한 법칙이라고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두음법칙으로 니씨에서 이씨로 李의 한글 표기법이 바뀐 李(이)씨 1개의 성씨만 대상이 되었고[3], 후자의 경우에는 ㄹ로 시작하는 많은 성씨들이 대상이 되어 임, 유, 양 등으로 한글 표기법이 바뀌었다. 하지만 어두에서 ㄹ로 표기했었던 성씨들의 경우 니(李)씨와는 달리 새로 바뀐 발음과 표기법이 실제 쓰던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두음법칙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실제로 류(柳)씨 종친회는 두음법칙에 반발하여 단체로 소송을 걸었었고 2007년 7월 20일에 승소하여 2007~2009년 2년간 약 54,000명이 '유'에서 '류'로 성씨 표기를 바꾸게 된다. 당시 대법원은 특정 가문의 성(姓)은 혈연집단을 상징하는 기호로서 이름과 함께 개인의 동질성을 표상하는 고유명사라는 논리로 '호적에 성명을 기재하는 방법' 제2항을 개정함과 아울러 '호적상 한자 성의 한글표기에 관한 사무처리지침'을 새로 제정하여 두음법칙이 성씨 표기법을 강제적으로 바꾸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하였다. 이로 인해 두음법칙은 본인이 희망할 경우 李, 林, 柳, 劉, 陸, 梁, 羅, 呂, 廉, 盧, 龍의 11개 성씨에 한정해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게 만들 수 있다.[4] 다만 본인이 과거부터 한자음 그대로 표기해 왔다는 것을 주민등록 등·초본, 학적부, 졸업증명서, 문중 또는 종중의 확인서 같은 서면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한다.

두음법칙은 국어학자인 이숭녕이 처음 필요성을 주장하였고, 이희승최현배가 이에 동조하면서 제정된 법칙이었다. 예를 들면 원래 한글에서 라고 표기하고 발음했던 니(李)씨의 경우 1600년대부터 계속 표기법은 였지만[5] 점차 로 발음이 변해가 라는 표기가 실제 발음인 [6]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발음과 표기법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음법칙을 제정하여 표기법을 발음에 맞게 수정한 것이 두음법칙이지만, 일각에서는 과연 역사적으로 쓰던 성씨 표기법을 바꾸는 것이 올바른 행위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이는 1600년대의 역사적 사료를 봐도 李의 한글 표기법은 '니', 1896년의 독립신문을 봐도 李의 한글 표기법은 '니'였기 때문이다. 또한 서구사회의 경우 Jung을 융으로 발음하는 등 발음과 표기가 다른 성씨의 경우 무수히 많지만 표기법을 건드리지 않았다. 베트남의 최대 성씨인 응우옌(Nguyen)의 경우에도 발음하기 무척 힘들지만 성씨 철자법을 고치지 않았다.

두음법칙은 일제 감정기 시대(1910~1945년)에 법으로 규정한 아직 얼마 되지 않은 법칙이다. 1921년에 개정된 조선총독부의 보통학교용 언문 철자법을 보면 "한자음의 두음이 'ㄹ'인 것은 발음의 여하를 불구하고 항상 'ㄹ'을 그대로 쓴다.(보기 : 란초, 룡산, 리익)"고 하여 두음 법칙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1933년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4장의 '한자음' 규정을 보면 두음 법칙이 적용되어 있다. 즉 두음법칙은 아직 86년밖에 안된 법칙인 것이다. 두음 법칙은 이렇게 역사도 짧고, 공간적으로도 한반도 전체에 완전히 정착된 것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두음 법칙을 적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 후의 북한 주민들의 성씨 표기를 어떻게 표기할 것이냐라는 문제도 발생하게 된다. 통일 후 북한 주민들에게 강제로 두음 법칙을 적용하여 성을 바꾸게 한다면 엄청난 저항이 일어날 것이고, 그대로 '리·류·라'로 놔둔다고 하더라도 남한의 '이·유·나'와는 다른 성씨가 되어 동성동본의 일가들이 성이 다른 남으로 갈라지게 된다.

음운 변동 현상은 전세계 모든 나라에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가변적인 음운 현상을 가지고 국민들이 역사적으로 써왔던 성씨 표기법을 발음에 맞춰 바꾼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성씨란 것은 역사적으로 혈통 집단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으로 그 근본이 일반 단어와는 많이 다르다. 따라서 성은 그 씨족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변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절대 배타주의나 이기주의라고 매도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며 만일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논리를 조금만 확장시켜보면, 그 자신이 자기 성씨를 얼마든지 바꾸거나 없앨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일 것이다. 한국의 가변적인 음운 현상에 대해 얘기하자면 한국의 경우에는 15세기의 경우 어두에 ㄹ로 시작하는 단어가 왔을 경우 사람들이 낯설었기 때문에 ㄹ 발음을 ㄴ 발음으로 대체하였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당시에 한글에 ㄹ로 시작하는 단어는 모든 단어를 통틀어 2개밖에 존재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7] 따라서 15세기 한글에서 어두에 ㄹ이 오는 단어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고, 이는 어두에 ㄹ 음을 가진 어휘가 많은 영어와 대조되는 부분이며 따라서 한국인들의 경우 외래어가 한국에 오기 전까지는 어두에 'ㄹ'발음이 오는 경우 처음 발음해보거나 매우 낯설었기 때문에 발음을 잘 하지 못하여 ㄴ 발음으로 바꿔 발음했다고 한다.

락시→낚시, 랄→날, 러비→너비, 럼나다→넘나다, 럼다→넘다, 롤라다→놀라다, 롤애→놀애, 루르다→누르다, 를다→늙다, 렴통→념통, 람자→남자[8]

위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15세기에는 어두에 ㄹ과 ㄴ 발음 구별이 잘 안 됐으며, 따라서 한자의 원음이 ㄹ로 읽혀도 어두에 올 경우 사람들이 생소했기 때문에 비슷한 발음인 ㄴ으로 표시하고 ㄴ으로 발음했다고 한다. 반대로 이로 인해 ㄴ이 원음인 한자어를 표시할 때는 거꾸로 ㄹ로 표기하기도 하는 등 혼동이 있었다고 한다. ㄴ과 ㄹ이 서로 발음 구분이 안 돼 한자의 독음을 한글로 나타낼 때 ㄴ으로 적기도 하고 ㄹ로 적기도 했다고 한다.

18세기 후반부터는 어두에 ㄴ이 오는 단어가 ㅇ으로 바뀌는 현상, 즉 ㄴ 탈락 현상이 조금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해 20세기 초반에는 많이 등장하게 된다. 1900년대 초반의 서적을 보면 어두에 ㄴ이 오는 단어와 ㄴ에서 ㅇ으로 변한 단어 2개가 서로 공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두음법칙으로 인해 1900년대 초반에 ㄴ이 ㅇ으로 표기되기도 했다고 주장하는 단어들의 대표적인 예로는 냑다→약바르다(약석발으다), 녀름→여름, 녀자→여자, 념통→염통, 녑구레→엽구리, 니→이(齒) 니마→이마, 니블,니불→이불, 니야기→이야기, 닐곱(七)→ 일곱, 닐흔→일흔, 님금→임금, 닙다→입다, 닛다→잇다, 닙→입 등의 예가 있다.[9]

두음법칙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왜 성씨 표기법에까지 적용했냐는 것이다. 성씨는 씨족을 구별하는 지표로서 일반 어휘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므로,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으로 규정해 놓고 일반 단어에 한정해 두음법칙을 적용하고 성씨는 예외로 했어야 맞지 않냐는 것이다. 성이란 쉽게 바꿀 수 있는 이름과는 달리 그 씨족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변할 수 없는 것으로 민법 제781조에도 성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변경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런 불변의 성이 가변적인 음운 현상 때문에 규제받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류씨 가문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가변적인 현상이 불변의 본질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 원래 바람직한 것이다. 만약 현재의 음운 현상과 맞지 않는 성씨가 있다면, 음운 규정에 예외를 두어서라도 이를 보호해 주어야 바람직하다. 천여 년 전부터 써 오던 불변의 성을 60여년밖에 안 된 음운 현상을 가지고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두음 법칙에 예외 규정을 두도록 발상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로는 현대 한국인들은 초성에서 ㄹ, ㄴ 발음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기 때문에(라디오,러시아,라면, 리본 등) 어두에 ㄹ음이 와도 발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음법칙은 미래에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 두음법칙의 논리는 현재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음운 현상과 맞지 않다는 것이 논리인데 현재 한국인들은 어두에 ㄹ음이 오는 많은 단어들을 잘 발음하고 있으므로 논리성과 체계성이 떨어지는 두음법칙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 세번째로는 두음법칙을 1933년에 제정했을때 문중들의 서면 동의서(Written Consent)를 받지 않고 먼저 제정한 후에 disclose(밝히기)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윤리(Ethics)적인 문제가 있다.성씨는 가문의 혈족을 나타내는 지표로써 엄청나게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이 이를 제정하고 공표하기 전에 모든 문중들의 확인 동의서를 받은 후 시행했어야 했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류씨성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반발하는 등의 성명권 침해, 윤리적인 문제점들이 발생하였다.

두음법칙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자신이 원래부터 쓰는 성명 표기를 바꾸는 것은 사실상 역사적으로 조상들이 써오던 성을 간 것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예를 들어 두음법칙으로 인해 표기법이 가장 많이 바뀐 성씨인 이씨(李)인 730만명이었는데 두음법칙이 제정되기 이전의 1400~1900년대 역사 사료들을 통계를 내보면 대부분이 '리'나 '니'로 표기되고 발음됐었고 '이'라고 표기된 경우에는 문학 소설에서나 간혹 보이고 거의 드물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두음법칙이 제정되고 나서 이로 표기법이 최초로 바뀌게 된 것이다.[10] 다만 李의 1900년대 영문 표기법을 보면 Ye라고[11] 표기했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으므로 1900년대에 와서부터 ㄴ에서 ㅇ으로 발음이 변모해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으로 쓰던 한글 표기법인 '니'를 폐기하고 '이'로 성씨 표기법을 바꾼 것이 정당화되는지에 대해서는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다고 한다. 성씨라는 것이 단어에서의 위치에 따라 그 표기가 달라진다면 성씨라는 고유 불변의 속성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에 항상 일정하게 표기되어야 하는 것이 세계 모든 나라들의 관습이었으며, 李의 경우 ‘이’와 ‘리’의 표기중 타당한 선택은 당연히 ‘리’이며 柳의 경우 '유'와 '류'의 표기 중에서 타당한 선택은 당연히 '류'가 되는게 맞기 때문이다. 또한 발음도 언제나 ‘리’ 나 '류'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류씨의 경우에도 두음법칙으로 인한 성씨 표기 변경이 역사적으로 써오던 표기법과 발음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대법원에 소송을 걸어 승소하였다. 영어권 국가의 Spelling과 발음이 다른 무수히 많은 이름들(Descartes나 Jung, Nguyen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으로 써 왔던 '니'라는 한글 표기법을 발음이 표기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이'로 한글 표기법을 바꾼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정리하자면, 李의 한글 표기법은 본래 '니'였고 '리'로 표기되기도 하였으며, 18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발음은 '니'나 '리'였지만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표기법은 '니'로 그대로였으나, 발음만이 영문 표기법 'Ye'에서 볼 수 있듯이 '이'로 남한에 한정해서 변해 갔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고, 따라서 이러한 현상을 성씨에게까지 적용한 것이 두음법칙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두음법칙으로 인해 원래부터 '이'로 표기하고 발음하던 성씨인 이(異)와 발음과 한글 표기만으로는 구분이 안되는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으며 역사적으로 써왔던 한글 표기법을 버리고 새로운 성으로 편입했다는 비난은 영원히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두음법칙이 첫소리 [ㄹ]로 시작하는 많은 한자어와 한글을 소멸시켰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리어], [링어]→[잉어]로 되어버렸고, 순수한 한글 낱말 [로래]는 [노래]가 되었으며, [로새]는 [노새]로, [란초]는 [난초]로, [룡병]은 [문둥병]이 되는가 하면, [량태]는 대로 만든 울타리를 뜻하는 낱말이었는데, 이 낱말도 두음법칙과 함께 사전에서마저 사라졌다고 한다.

두 번째로는 자신이 원래부터 쓰는 성명에 첫소리를 제한한 두음법칙이 [ㄹ]을 [ㅇ]이나 [ㄴ]으로 바꾸라고 한다면 그 성명이 과연 올바른 소리이고, 표기냐는 문제이다. 李와 異의 경우 두음법칙 이전에는 [리]와 [이]로 서로 발음과 표기법이 달랐는데 두음법칙이 적용되게 되면서 표기법과 발음이 [이]로 똑같이 되어 버렸다. 즉 일각에서는 본래 표기와 발음이 달랐던 성이 똑같이 [이]로 발음되게 된다면 성씨를 바꾸는 것, 즉 조상을 바꾸는 것과 같은 것 아니냐며 비판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두음법칙을 표기에 반영하는 것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러 학자들은 파생어, 합성어의 제 2음절 이하에까지 두음법칙을 적용시키는 것은 지나친 확대 적용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또한 두음법칙이 적용된 이후 표기법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녀석’은 되는데 ‘녀자’는 ‘여자’로 고치라고 말한다. 또 ‘그럴 리가 없다’라고 할 때 사용된 ‘리’는 한자 ‘理’인데 한자 첫소리의 ‘ㄹ’은 ‘ㅇ’소리로 표기하라는 두음법칙은 이 대목에서는 또 예외이다. 즉, 두음법칙에 예외사항이 너무 많아 일반인들이 감각적으로 학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우 두음법칙을 쓰지 않기 때문에 추후 통일할 때 문화적 차이 등의 이유로 두음법칙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다.

현대 한국어에서 대한민국의 표준어는 몇 가지 조건들을 제외하고는 두음 법칙을 인정하는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문화어에서는 일부 사항을 제외하고는 두음 법칙을 기본적으로 제정하지 않았고, 원래 쓰던 발음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목차

두음 법칙으로 성씨 표기법이 바뀐 성씨 명단편집

두음 법칙으로 인해 성씨 표기법이 바뀐 인구는 전체 인구의 23% 정도인 1100만명이다. 이 중에 대부분은 780만명의 李(리) 성을 가진 이들이었다. 한국에서 두음 법칙으로 인해 성씨 자음이 바뀐 대표적인 성씨로는

  • 니씨(李)(리→이)[주 1]
  • 류씨(柳)(류→유)
  • 류씨(劉)(류→유)
  • 림씨(林)(림→임)[주 2]
  • 량씨(梁)(량→양)[주 3]
  • 로씨(盧)(로→노)
  • 련씨(連)(련→연)
  • 라씨(羅)(라→나)
  • 륙씨(陸)(륙→육)
  • 렴씨(廉)(렴→염)
  • 려씨(呂)(려→여)[주 4]
  • 룡씨(龍)(룡→용)

등이 있다. 반면, 윤씨(尹), 오씨(吳), 안씨(安), 임씨(任), 양씨(楊), 여씨(余) 등은 원래부터 자음이 ㅇ이었다. 그런데 2007년 8월 1일부터 대법원이 성씨를 한글로 표기할 때 한글 맞춤법의 두음 법칙에 따라 적도록 했던 호적 예규를 고쳐 두음 법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개정 예규를 시행하도록 했다.[4]

한국어에서의 두음 법칙편집

표준 한국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음 법칙의 예로 ''이나 ''이 어두에서 조건에 따라 변형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두음 법칙이 한국어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매우 많은데, 대한민국의 공문서에서 성씨 를 '유'씨로 표기하도록 강제하는 것[주 5]이 대표적이다.

특히 ''과 ''의 두음 법칙은 한자음에서 두드러지는데 초성이 'ㄴ'이나 'ㄹ'인 한자음이 단어 초나 음절 초에 올 때(단어 중간의 음절에 두음 법칙이 적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나 ''으로 바뀐다. 두음 법칙이 적용된 발음은 한글 표기에도 반영된다.

두음 법칙이 관찰되는 조건편집

  • ㄴ이나 ㄹ이 ㅇ으로 바뀌는 경우
    • 한자음 '녀, 뇨, 뉴, 니, 랴, 려, 례, 료, 류, 리' 등 또는 +로 시작하는 이중모음이 단어 첫머리에 올 때 '여, 요, 유, 이', '야, 여, 예, 요, 유, 이'로 발음한다.
    • 한자음 '라, 래, 로, 뢰, 루, 르' 등 +를 제외한 단모음이 단어 첫머리에 올 때 '나, 내, 노, 뇌, 누, 느'로 발음한다.
  •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 이어지는 '렬, 률'은 '열, 율'로 발음한다.

예를 들면 '림'(林)은 '임'으로, '로'(路)는 '노'로, '념'(念)은 '염'으로 발음하고, '라렬'(羅列)은 '나열'로 발음한다. 이러한 두음 법칙은 외래어, 외국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 한자 파생어나 합성어 등은 뒷말에 두음법칙을 적용한다.
    • 신여성(新女性), 공염불(空念佛), 회계연도(會計年度) 등.
  • 고유어나 외래어 뒤에 한자어가 결합한 경우 두음법칙을 적용한다.
    • 구름-양(量) = 운량(雲量) , 칼슘-양, 어린이-난, 가십-난(gossip - 난) 등.

두음 법칙이 관찰되지 않는 조건편집

  • 단어의 첫머리 이외에서 본음대로 적는다.
    • 남녀(男女), 은닉(隱匿), 독자란(讀者欄), 비고란(備考欄), 공란(空欄), 답란(答欄), 투고란(投稿欄) 등
  • 의존명사는 본음대로 적는다.[12]
    • 냥(兩), 년(年), 리(里), 리(理), 량(輛)
    • 몇 냥, 몇 년, 거기까지 몇 리냐?, 그럴 리가 없다., 객차 오십 량 등
  • 외자로 된 이름을 성에 붙여 쓸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을 수 있다
    • (조선시대 장수) 신립(申砬).
  • 반대로 이름이 외자가 아닌 경우에는 두음법칙을 적용한다.

두음 법칙이 관찰되는 방언편집

두음법칙은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되기 전에 정해진 것이라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도 분단 초기까지는 두음법칙을 잠깐 고수하였지만, 얼마 안 가서 두음법칙을 폐지하였다.

북한의 문화어한국어의 방언인 중국조선말재일어에서는 한자계 어휘에 대한 [r] [l] [nj] 자음의 두음 법칙을 대부분 찾아볼 수 없다. 단, 북한에서는 라사(羅紗)를 나사로, 라팔(喇叭)을 나팔로, 료기(療飢)를 요기로 쓰고 있는 등, 일부 한자어는 변한 소리대로 적는 것으로 언어 현실을 반영, 두음 법칙을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12]

현대 한국어에서는 대한민국(남한)의 표준어와 남한 내의 방언에서 이런 두음 법칙이 주로 관찰된다.

두음 법칙의 예외 규정편집

법률이 개정되면서 두음법칙의 예외 사례를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예외 규정의 한 예로 성(姓氏)에 관한 것인데 신청절차를 거치면 李씨는(이→리씨), 林씨는 (임→림씨), 柳씨는 (유→류씨)등으로 변경할 수 있다.

두음 법칙에 대한 비판편집

두음법칙은 국내에서도 성씨(姓氏) 표기 등을 예외로 인정하면서 문제점을 드러낸 바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07년 ‘호적에 성명을 기재하는 방법’ 제2항을 개정과 동시에 ‘호적상 한자 성의 한글 표기에 관한 사무처리지침’을 제정하면서, “한자 성(姓)의 한글표기에 두음법칙의 예외를 인정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성과 이름에 두음법칙을 강제하는 것이 ‘국민행복권을 침해할 수 있다’라는 것이 판단 요지였다.[4]

또 두음법칙은 수많은 동음이의어를 양산해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다. 예를 들면 양산(陽傘)과 량산(量産), 이론(異論)과 리론(理論), 역학(易學)과 력학(力學) 등 원래 이 단어들은 이런 식으로 구분돼 있었다. 그러나 두음법칙으로 인해 위 6개의 단어는 양산, 이론, 역학의 3개로 깔끔하게 통일되어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소리가 바로 의미로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음이의어뿐만이 아니다. 두음법칙의 영향 때문인지, 원래 ㄹ 소리가 존재하지 않던 한자인 諾에 대해서도 ‘허락’과 ‘승낙’ 같은 쓸데없는 예외가 생겨나는 등 한국어의 기능성과 논리성이 두음법칙으로 인해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 두음법칙의 폐단은 고유명사나 약어를 표기할 때 제일 많이 나타난다. 2004 년 용천(룡천) 기차역 참사 때 방송에서 ‘룡천’과 ‘용천’으로 제각각 적어 보도하게 되면서 다른 나라의 지명의 경우 두음법칙에 따라서 적용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등의 복잡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음법칙은 합성어의 경우에도 예외가 쓸데없이 많다. ‘민주노동당’을 ‘민로당’으로 줄여 쓰고 ‘남자여자’를 ‘남녀’라고 쓰는 걸 보면 합성어에서는 두음법칙이 일관성 있게 비켜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신여성’, ‘남존여비’, ‘분노’, ‘희로애락’ 같은 단어를 보면 또 두음법칙이 적용되어 있지 않다.

두음법칙은 멀쩡한 사람의 성씨도 바꾸었다. 중국의 당나라 태종 ‘리세민’은 두음법칙으로 이씨 성으로 바뀌어 ‘이세민'이 되었고, 당나라 문인 ‘류종원’은 유씨 성으로 바뀌어 이제 ‘유종원’으로 불린다. 원말 명초의 소설가 ‘라관중’은 나씨 성으로 바뀌어 현재는 ‘나관중’으로 둔갑되었다. 삼국 시대 촉한의 ‘현덕−류비'는 고인이 된지 1,800여 년 만에 ‘유비’로 불리게 되었다. ‘사람 중에 려포요, 말 중에 적토가 있다’고 할 정도로 무용이 뛰어났던 맹장 ‘려포’는 성씨가 ‘여포’로 둔갑이 되었다. 수호전의 경우 ‘로지심’은 ‘노지심’으로, ‘림충’은 ‘임충’으로, ‘로준의’는 ‘노준의’로, ‘리규’는 ‘이규’로, ‘구문룡’은 ‘구문용’으로, ‘류당’은 ‘유당’으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의 임득명, 임백령, 대한 제국 때의 의병장 임병찬의 성씨도, 조선 명종 때의 임꺽정의 성씨도 두음 법칙이 나오기 전에는 모두‘림득명’, ‘림백령’, ‘림병찬’, ‘림꺽정’이었다. 생전의 여러 ‘림씨’가 사후에 선대조상을 떠나 ‘임씨’ 댁에서 떠돌아다니는 망령음귀가 되었다. 실제로 대법원에서도 2007년에 두음법칙이 성씨의 표기법을 바꾸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선례가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내용주편집

  1. 異(이)씨와 伊(이)씨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자음이 ㅇ이었다.
  2. 任(임)씨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자음이 ㅇ이었다.
  3. 楊(양)씨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자음이 ㅇ이었다.
  4. 余(여)씨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자음이 ㅇ이었다.
  5. 이러한 표기 원칙을 따르고 싶지 않다면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 '성씨의 한글 표기'를 정정하여 줄 것"을 사법부에 요청하는 등, 당사자나 당사자의 직계존속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의를 제기해야만 한다.

참조주편집

  1. ‘니’로 표기한 《됴야긔문》(朝野記聞)
  2. 獨立新聞 창간호 [1896년 4월 7일 창간.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 관찰사 니건하. 문쳔 군슈 니한용. 회계원 출납과장 니용교” 등 모두 ‘니’로 표기됨.
  3. 왕명에 의해 국가 사업으로 간행된 책에도 '니'로 되어 있고, 개화기에 나온 '독립신문'에도 '니'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리'보다는 '니'가 더 일반화된 표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4. 오늘부터 성씨 호적 표기 두음법칙 예외 인정 "성씨 결정은 인격권", 중앙일보, 2007년 8월 1일.
  5. * 杜詩諺解 初刊本 (성종 12년 : 1481)“셩이 니가 (姓李的)”
    • 訓蒙字會 [중종 22년(1527)[아동에게 한자의 音과 뜻을 정확하게 가르치기 위해 지은 책] '李’ 자의 音과 뜻을 ‘외엿니’라고 기록함
    • 東國新續三綱行實 [광해군 9년(1617)에 왕명에 의하여 국가 사업으로 편찬된 孝子, 忠臣, 烈女의 기록집] 李壽慶(니슈경), 李慶男(니경남), 李宅仁(니?인) 등 ‘李’자는 모두 ‘니’로 표기됨
    • 獨立新聞 창간호 [1896년 4월 7일 창간.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 관찰사 니건하. 문쳔 군슈 니한용. 회계원 출납과장 니용교” 등 모두 ‘니’로 표기됨.
  6. 다만 두음법칙은 한반도 북쪽보다 이남 지역에서, 그리고 오직 한자어에서만 발생했었다는 얘기가 있다. [1]
  7. 조규태(2009)
  8. 조규태(1999)
  9. 조규태(1999)
  10. 李가‘니’로 표기된 예: 왕명으로 추진한 공적인 사업으로 간행된 문헌이나 기타 중요한 문헌에 ‘니’로 표기한 예가 많이 나타난다. 특히 조선왕조 말기인 開化期 때에 나온 우리 나라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인 ‘독립신문’에 ‘니’라고 표기한 것을 보면 開化期 때까지도 일반적으로 ‘李’ 자를 ‘니’로 발음했었다.
    • 杜詩諺解 初刊本 (성종 12년 : 1481)“셩이 니가 (姓李的)”
    • 訓蒙字會 [중종 22년(1527). 아동에게 한자의 音과 뜻을 정확하게 가르치기 위해 지은 책] 李’ 자의 音과 뜻을 ‘외엿니’ 라고 했음 [참고로 ‘柳’ 자는 ‘버들류’로 되어 있음)
    • 東國新續三綱行實 [광해군 9년(1617)에 왕명에 의하여 국가 사업으로 편찬된 孝子, 忠臣, 烈女의 기록집] 李壽慶(니슈경), 李慶男(니경남), 李宅仁(니?인) 등 ‘李’지는 모두 ‘니’로 표기됨
    • 癸丑日記 (光海君 때, 仁穆大妃 內人) 니이첨(李爾瞻) 니덕형(李德馨) 니?복(李恒福)
    • 古時調集 南薰太平歌 [純祖 때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됨. 作者 未詳의 時調]“옛날에 니??도”“그곳에 니젹선(李謫仙) 소동파
    • 한글로 된 小說에 있는 ‘니’씨 姓 표기 春香傳 : “젼나도 남원부? 니등이 ? 아?을 두어스니 ”九雲夢 : “니쇼화(李蕭和)은 황졔의 ?이니”意幽堂集 : “니번은 뉼곡 형이라 파쥐예 잇더니 서울 드러와“니탁 - 니상국 탁은 셩묘됴 명신이라
    • 獨立新聞 창간호 [1896년 4월 7일 창간. 최초의 한글 전용 신문] 관찰사 니건하. 문쳔 군슈 니한용. 회계원 출납과장 니용교” 등 모두 ‘니’로 표기됨.
    ‘李’ 자를 ‘리’로 표기한 예: 조선왕조 초기에도 간혹 용례가 있지만 주로 후기에 많이 나타난다.
    • 內訓 - 李링氏씽女녕戒갱예 닐오?(선조 때. 초간본은 성종 때)
    • 東國正韻 - ‘링’로 표기됨 (上聲. 5권 16장)
    • 三韻聲彙(영조 27년 : 1751년) - ‘리’로 표기됨
    • 李鳳雲의 국문정리 서문 (1897) “리봉운 ?셔(李鳳雲 自序)”
    • 兪吉濬의 朝鮮文典 (1906) “리슌신(李舜臣)은 인명이니”
    • 崔南善의 新字典(1915) - ‘리’로 표기됨
    李자를‘이’로 표기한 예:‘李’ 자를 ‘이’로 표기한 용례는 많지 않다. 주로 문학 작품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 烈女春香守節歌 “잇? 삼쳔동 이할임(李翰林)이라 하난 양반이 잇스?”
    • 歌辭 作品 - 朴履和(박리화)의 萬古歌 “이??(李太白)"
  11. 이완용, 이건하 등
  12. “겨레말 큰사전 - 남녘말 북녘말”. 2013년 5월 2일. 2013년 9월 23일에 확인함.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