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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종옥

리종옥(李鍾玉, 표준어: 이종옥, 1905년 1월 10일 함경북도 성진 ~ 1999년 9월 23일 평양시)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항일운동가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국무총리, 국가부주석 등을 지냈다.[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범 당시 산업성 국장이 되었으며 이후 경제관료로 활동하였다.

이력편집

함경남도 성진군 성진읍(김책시로 개명)에서 태어나 1937년 일본 대학 전문부를 거쳐, 1940년 만주 하얼빈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1944년 항일빨치산 운동에 참가했다. 1948년 2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의 한 사람에 선출되고, 9월 2일 북조선 정부가 수립되자 정무원 산업성 과장이 되었다. 1949년 10월 산업성 국장, 1950년 산업성 부상, 1951년 12월 내각 경공업상이 되었다.

1956년 4월 제3차 조선로동당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 서열 28위로 선출되고, 56년 6월 김일성 수상의 소련, 동독, 중앙유럽 순방길에 북조선 대표단원의 한 사람으로 수행하였다. 1959년 7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다.

1960년 내각 부총리 겸 중공업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1962년 내각 부총리에 재선되면서 부총리 겸 금속화학공업상이 되었다.[1] 그 후 1965년 국립 과학원 원장을 거쳐 1971년 광업상이 되었다. 1972년 6월 다시 광업상, 그해 말 제5차 내각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중공업위원장 겸 중앙인민위원, 1973년 조선로동당 정치위원회 후보위원이 되었다.[1] 1976년 11월 정무원 부총리가 되었다.

1977년 제6차 내각이 출범하였고 다시 부총리가 되었다. 1980년 제6차 조선로동당대회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어 김일성김일,오진우,김정일에 이어 북한권력서열 5위가 되었다. 1982년 제7대 내각에서도 정무원 총리가 되었으며[1], 그 해에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다. 1984년 1월 국가 부주석으로 선임되었고, 1988년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1]

1998년 9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사실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계에서 은퇴했다.[1] 1999년 지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1992년 다시 김일성훈장을 수여받았다.[1] 1999년 9월 23일 병으로 사망, 국장으로 평양시 신미리의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가족 관계편집

  • 아들 : 리만호

각주편집

전임
강량욱, 박성철, 김일
북조선의 국가부주석
(박성철, 임춘추와 공동)
1984년 1월 - 1998년 9월
후임
주석제 폐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부총리
1960년 - 1962년
후임
리종옥
전임
리종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부총리
1962년 - 1965년
후임
,
전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부총리
1976년 - 1977년
후임
,
전임
박성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총리
1977년 12월 15일 - 1982년 3월
후임
리종옥
전임
리종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총리
1982년 3월 - 1984년 1월 27일
후임
강성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산업성 부상
1950년 - 1951년 12월
전임
김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내각 산업상 서리
1951년 2월 1일 - 1951년 12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내각 경공업상
1951년 12월 -
전임
(신설)
(석탄공업성, 기계공업성, 동력화학공업성 통합)
제1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내각 중공업위원회 위원장
1960년 - 1961년 1월
후임
김두삼
전임
김두삼
(중공업위원회 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내각 금속화학공업상
1962년 - 1965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학원장
1965년 9월 - 1967년 12월
후임
리종옥
전임
리종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학원장
1967년 12월 - 1971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내각 광업상
1972년 6월 - 1972년 12월
전임
신설
(금속화학공업성, 전기석탄공업성, 기계공업성 통합)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내각 중공업위원회 위원장
1972년 12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