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요하네스 에크하르트(Johannes Eckhart, Eckhart von Hochheim, 1260년경-1327년경)는 독일로마 가톨릭 신비사상가이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마이스터 엑카르트라고 통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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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링겐고타에 가까운 호흐하임에서 태어났다. 15세 때 도미니크회에 가입하고 쾰른의 동회의 학교에서 알베르투스 마그누스에게 배웠다. 파리로 가서 프란체스코회와의 논쟁에서 명성을 얻고, 1302년 파리 대학으로부터 마기스테르의 칭호를 허용받았다. 1304년작센의 도미니크회 관구장(官區長)이 되었으나 다시 파리로 돌아와 <3부작(三部作)>을 썼다. 1313년 슈트라스부르크로 돌아와 설교에 전념하였으나, 자기 부정의 변증법을 통한 인간-신 합일을 역설하였기에, 프란체스코회로부터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1980년, 독일 발버베르크에서 개최된 도미니코회 총회가 마이스터 엑카르트에 대한 판결을 재심해 줄 것을 교황청에 요청하기로 결정하고, 자료 수집을 위해 마이스터 엑카르트 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 마이스터 엑카르트 복권 운동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신학 편집

관상기도 편집

에크하르트는 말을 하지 않고, 하느님의 임재를 기다리고 경험하는 관상(觀想)으로부터 출발하여 정적(靜寂)과 무(無)의 경지에 철저하였으며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을 생각했다. 에크하르트에게 하느님은 이성으로도 감각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무한한 황야같은 분이며 무한 자체이다. 여기에서 하느님은 페르소나(神格)을 초월한 하느님, 곧 '신성(神性)'으로서 모든 특징을 통합 해소한다. 이러한 신에게 몰입할 때 핵심이 되는 것이 인간의 영혼의 '작은 불꽃'이며 영혼의 성(城)이다. 자기를 무(無)로 돌려 하느님의 무와 합일하면 비로소 인간은 완전한 자유에 도달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드디어는 하느님까지도 버리고 최고의 덕을 달성한다.

영향 편집

이러한 정신의 자유에 대한 이론이 후에 신플라톤주의루터에게 영향을 미쳤다. 에크하르트의 영성에 대해서는 감리교 고진하 목사가 《기독교 사상》에 연재글로 소개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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