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聞慶 鳳巖寺 智證大師塔碑)은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길 313, 봉암사 절에 있는 통일신라의 석비이다. 전체 높이는 412cm, 비신 높이는 273cm, 비신 너비는 164cm, 비신 두께는 23cm이다. 석비의 재질은 편마암(비신)과 화강암(귀부)이다. 조성연대는 신라 경애왕 원년(924년)이다.
대한민국의 국보 | |
종목 | 국보 (구)제315호 (2010년 1월 4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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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 | 1기 |
시대 | 통일신라 |
소유 | 봉암사 |
위치 | |
주소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길 313, 봉암사 (원북리) |
좌표 | 북위 36° 42′ 01″ 동경 128° 00′ 20″ / 북위 36.70028° 동경 128.00556° |
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대한민국의 보물(해지) | |
종목 | 보물 (구)제138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2010년 1월 4일 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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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1월 4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315호로 승격되었다.[1]
지정 사유
편집이 석비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창자인 도헌국사(道憲國師) 곧 지증대사(智證大師)의 탑비로서, 비석의 크기나 귀부와 이수의 조각수법 등이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비문에는 신라의 불교사를 3시기로 나누어 약술하고 도신(道信)(遵範)-혜은(慧隱)-도헌(道憲)으로 이어지는 도헌국사의 법계(法系)를 구체적으로국하고 있어서 신라 하대의 불교사 특히 선종사(禪宗史) 연구의 중요한 1차 사료가 된다.
이 비는 당대의 대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이 비문을 지은 것으로 그가 비문을 지은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保寧 聖住寺址 郎慧和尙塔碑, 국보 제8호),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국보 제47호)와 함께 4산비문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탑비로서, 그 학술적 가치가 일찍부터 높이 평가되어 온 것이다.
이 비에는 탑비를 세운 연대가 밝혀져 있을 뿐 아니라, 비문을 쓰고 각자(刻字)한 사람이 분황사의 승려 혜강(慧江)임이 밝혀져 있어서 한국 서예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저자 최치원은 여타 전기자료와는 달리 지증대사의 일생 행적을 여섯 가지의 신이(神異)한 사실〔육이(六異)〕과 여섯 가지의 훌륭한 행적 육시(六是)로 정리하고, 예를 들어가며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는데 이는 다른 비문에서는 볼 수 없는 전기 서술의 한 특징이다.
한편, 이 비문에는 신라 하대의 인명, 지명, 관명, 사찰명, 제도, 풍속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신라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신라의 왕토사상(王土思想) 및 사원에 토지를 기진(寄進)하는 절차를 알려주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신라 말 선종 산문의 개창이 지방 유력자의 후원에 힘입어 이루어졌음을 알려주는 명확한 기록이 비문 중에 밝혀져 있고 비 건립의 후원자 또한 명확하게 밝혀진 것도 이 비가 갖는 의의를 높여 준다. 또 사원 운영의 주체인 사직(寺職)의 구체적인 모습이 확인되는 신라 유일의 비라는 점도 의의가 크다. 뿐만 아 니라 이 비문에는 백제의 소도(蘇塗)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백제 소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국내 유일의 기록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이 탑비는 신라 경애왕 원년(924년)에 세워진 고비(古碑)로, 지증대사의 전기자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한국고대사 특히 신라 선종사·서예사·한문학사 등 한국고대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갖는 탑비로 평가된다.
같이 보기
편집-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 - 보물 제137호
- 소도
각주
편집- ↑ 문화재청고시 제2009-129호, 대한민국 관보 제17166호, 94쪽, 2010년 1월 4일.
참고 자료
편집-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