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정
방원정(房元井, 1593년 ∼ 1652년)은 조선의 문신, 학자이다.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설(君渫)·이정(而淨), 호는 지족와(知足窩)이다.
1618년(광해군 10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을 지냈다.[1]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형 방원진(元震), 재종형(再從兄) 방원량(元亮)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청주(淸州)와 과천(果川)에서 적을 토벌하였다.
1646년(인조 24년) 식년 문과에 급제한 후 삼례찰방(參禮察訪)이 되어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2]
신선술·유언비어·시법(諡法)·외교 정책·흉년 구제책·시장 정책 등 다방면에 깊은 식견을 지녔고, 저서 《지족와집(知足窩集)》을 통해 조리정연한 논지를 전개시켰다. 그 중 「문운운시폐(問云云市弊)」에서는 풍속이 근검을 지향하느냐 아니면 사치를 숭상하느냐 하는 관건은 바로 시장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조정에서 상인들을 너무 억압하고 갖가지 명목으로 세금을 착취하는 폐단을 지적하는 한편, 원활한 유통 경제를 통해 부국(富國)의 실효를 거두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3]
저서
편집- 《지족와집(知足窩集)》 2권 1책
가족 관계
편집각주
편집- ↑ 『만력46년무오식년사마방목(萬曆四十六年戊午式年司馬榜目)』
- ↑ 《승정원일기》 인조 24년 병술(1646, 순치3) 6월 21일(병신) 최종기사
- ↑ 지족와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