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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현(白光炫, 1625년 ~ 1697년[1])은 조선 후기의 침의(鍼醫)이다. 본관은 임천이며 자는 숙미(淑微)이다. 백광현은 종기의 외과적 치료술을 개발한 사람으로, 한의학에 이를 본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종기 치료사에 획기적 전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는 침을 써서 종기를 절개해 독을 제거하고 뿌리를 뽑는 과격한 치료법을 썼다.

백광현
출생
조선의 기 조선
사망
조선의 기 조선
성별남성
국적조선의 기 조선
별칭일명 태악(泰岳) 광현(光玹, 光弦, 光鉉, 光顯)
직업마의, 어의, 관료
부모백철명(白哲明)
자녀백흥령(白興齡) 백흥성(白興聲) 백흥린(白興隣)

생애편집

원래 말의 병을 고치는 마의(馬醫, 현재의 수의사.)였는데, 그는 말의 병을 오로지 침을 써서 고쳤고 의서는 보지 않았다. 침으로 말의 병을 다스리는 기술이 진보하자, 사람의 종기에도 시술해 보았더니 효험이 있었다. 그는 이내 사람의 종기를 치료하는 의원으로 전업했고, 수많은 종기의 증상을 보면서 임상경험이 풍부해져 의술이 더욱 정심해졌다.

현종 때 내의원 의관이 되었다. 《현종개수실록》 11년 음력 8월 16일에 현종의 병이 회복된 것을 기념하여 내의원 의관들에게 가자(加資)를 하는데, 백광현의 이름이 처음 보인다. 그는 공이 있을 때마다 품계가 올랐고, 마침내는 어의를 지냈으며 현감까지 되었다. 1684년(숙종 10년) 음력 5월 2일에 왕은 그를 강령 현감(康翎縣監)에 임명했다가 이어 포천 현감(抱川縣監)으로 바꾸어 임명했다.

1691년에는 지중추부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숭록대부[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에 올랐다.

1695년(숙종 21년) 음력 12월 9일 숙종은 백광현을 각기병을 앓는 영돈녕부사 윤지완(尹趾完)에게 보내는데, 이날 《숙종실록》은 “백광현은 종기를 잘 치료하여 많은 기효(奇效)가 있으니, 세상에서 신의(神醫)라 일컬었다.”라고 하였다. 아마도 종기를 치료하는 탁월한 능력 때문에 내의원에 발탁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평가편집

  • 정래교에 따르면 “종기를 절개해 치료하는 방법은 백태의(白太醫)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하였다.
  • 장지연(張志淵)이 “우리 나라의 결렬의 법(상처를 찢어 치료하는 법)이 백태의로부터 시작하였다.”라고 한 바와 같이 그는 침에 의한 수술의 권위자였다.

가족관계편집

  • 조부 : 인호(仁豪) 가선대부(嘉善大夫)행용양위부사과(行龍驤尉副司果)
  • 부 : 철명(哲明)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折衝將軍 僉知中樞府事)
  • 형 : 광찬(光璨)
  • 본인 : 백광현(白光玹)
    • 초배 : 정부인 창녕 조씨(昌寧曺氏) 첨추(僉知中樞) 조덕건의 녀
    • 계배 : 청주 한씨(淸州韓氏)
      • 아들 : 흥령(興齡)
        • 손자 : 홍도(弘道)
      • 아들 : 흥성(興成)
      • 아들 : 흥성(興聲)
      • 아들 : 흥린(興隣)

백광현을 다룬 작품편집

참고 자료편집

  • 정래교가 지은 〈백태의전〉(白太醫傳).
  • 강명관 (2004년 1월 5일). 〈수만 백성 살린 이름없는 명의들 | 민중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 초 12쇄판. 서울: 푸른역사. ISBN 89-87787-74-5.  |id=에 templatestyles stripmarker가 있음(위치 1) (도움말); |장=에 지움 문자가 있음(위치 19) (도움말)
  • 〈백광현〉. 《Daum사전 - 문화원형 백과사전》. 2008년 6월 17일에 확인함. 

각주편집

  1. 방성혜, 《조선 최고의 외과의사 백광현뎐 1》, 시대의창, 2012, 12쪽.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