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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채(白南埰, 1886년 달성 - ?)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경북 경산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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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1918년 대구 계성학교 교감 및 이사장으로 활동했으며,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서병우(徐丙佑), 홍주일(洪宙一), 이만집(李萬集), 김마리아 등과 시위운동을 계획하다 발각되어 2년 간 복역하였다. 이후 희도보통학교(현재 대구종로초등학교) 교장을 지냈고, 대구요업주식회사 사장을 지냈다.

해방 후 과도입법의원을 거쳐 제헌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재임 중 1949년 동료의원 9명과 함께 축첩공무원 추방에 대한 의견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도 했다.[1]

사후편집

  • 1977년 독립운동 경력이 인정되어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1]
  • 1992년 7월 8일 대구에서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으로 이장되었다.[1]


약력편집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전 임
(초대)
제헌 국회의원(대구부 병)
1948년 5월 31일 - 1950년 5월 30일
한국민주당
대구부 갑:최윤동
대구부 을:서상일
후 임
(대구시 갑)조경규
(대구시 을)박성하
(대구시 병)이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