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장 (삼국지)

변장(邊章, ? ~ 186년)은 중국 후한양주(涼州) 금성군(金城郡) 사람이다. 양주의 난에 휘말려 타의로 반군에 가담하였고 정부의 현상을 피하고자 개명하였다. 본명은 변윤(邊允)이었다.

변장(邊章)
본명변윤(邊允)
출생금성군
사망186년
사인타살
성별남성
국적후한
경력신안현령, 독군종사
관련 활동양주의 난
적수한수

생애 편집

신안현령(新安―)과[1] 독군종사(督軍從事)를 지냈고 양주에서 이름이 있었다.[2] 184년(중평 원년) 겨울 북지군(北地郡), 농서군(隴西郡) 부한현(枹罕縣)[3]·하관현(河關縣)의 선령강(先零羌)과 의종호(義從胡) 등 여러 세력이 북궁백옥(北宮伯玉)과 이문후(李文侯)를 장군으로 추대하고 한나라대항하였다. 그 과정에서 호강교위(護羌校尉) 영징(泠徵)과 금성태수 진의(陳懿)는 목숨을 잃었고 변장과 한수는 위협을 받아 그 군정을 맡았다. 변장과 한수는 반군이라고 널리 알려져서 식읍 1,000호의 제후 자리가 현상(懸賞)으로 걸렸다. 둘은 이를 피하고자 각각 변장과 한수로 개명하였다.[1]

185년 환관을 주살한다는 명분으로 원릉이 있는 삼보(三輔)까지 침범하였다. 좌거기장군 황보숭이 진압하러 왔다가 장양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서[4] 7월(음력)에[5] 면직되고 장온이 대신 부임하였다. 미양(美陽)에서 한군과 맞붙어서 잘 싸웠으나 11월 별똥별이 진영을 비추면서 병사들이 불안해하였다. 파로장군(破虜將軍) 동탁우부풍 포홍(鮑鴻)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습해와서 변장과 한수는 수천 명이 죽는 등 크게 패하고 유중(楡中)으로 퇴각하였다. 탕구장군(盪寇―) 주신(周愼)이 3만 명으로 쫓아왔다. 변장과 한수가 따로 군사를 내어 그 보급로를 끊자 주신은 치중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186년 겨울 한수에게 살해당했다.[6]

각주 편집

  1. 《헌제춘추》 ; 이현 주석, 《후한서》72권 열전 제62 동탁에서 인용
  2. 《전략》(典略) ; 배송지 주석, 《삼국지》1권 위서 제1 무제 조조에서 인용
  3. 포한이 아닌 부한이라 발음한다. 이현 주석, 《후한서》87권 열전 제77 서강 무익원검(無弋爰劒)
  4. 《후한서》71권 열전 제61 황보숭
  5. 《후한서》8권 본기 제8 효영제 유굉 중평 2년
  6. 《전략》에서는 병사라 하였으나 《후한서》동탁전을 따른다.

참고 문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