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부소산성

부여 부소산성(扶餘 扶蘇山城)은 백제 사비도성의 배후산성과 왕궁성으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부여군 부여읍서쪽금강을 낀 부소산 속에 있으며, 둘레는 대략 2.2km, 면적은 약 74만m2에 달한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호로 지정되었다.

부여 부소산성
(扶餘 扶蘇山城)
(Busosanseong Fortress, Buyeo)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
부소산성 정문
종목사적 제5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면적983,598m2
시대삼국 시대
소유국유
위치
부여 부소산성 (대한민국)
부여 부소산성
주소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 (쌍북리)
좌표북위 36° 17′ 15″ 동경 126° 54′ 55″ / 북위 36.28750° 동경 126.91528°  / 36.28750; 126.91528좌표: 북위 36° 17′ 15″ 동경 126° 54′ 55″ / 북위 36.28750° 동경 126.91528°  / 36.28750; 126.91528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부소산성은 부소산 정상에 테뫼식 산성[주해 1] 쌓은 후, 주변을 포곡식으로[주해 2] 쌓은 복겹 산성이다. 부소산성 주변에는 청산성청마산성이 있으며, 남쪽에는 성흥산성의 지원을 받았다. 과거의 군수품 창고 터 등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도 의자왕의 궁녀들이 자살했다는 낙화암고란사 등이 있다.

개요편집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백제의 도성이다. 《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통일신라 시대부터는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기던 백제 성왕 16년(538)에 왕궁을 보호하기 위해 이중(二重)의 성벽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성왕 22년(500)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있던 것을 무왕 6년(605)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바꾼 것으로 짐작되어 백제 성곽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성곽의 형식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둘러싼 테뫼식과 다시 그 주위를 감싸면서 쌓은 포곡식이 혼합된 복겹식 산성이다. 동·서·남문터가 남아 있으며, 북문터에는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물을 빼는 배수구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안에는 군창터 및 삼국시대 건물터와 영일루·사비루·고란사·낙화암 등이 남아있다. 성 안에 군창터와 건물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방어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하다.

이 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였던 곳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편집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총 8개의 유적지들 중 공주지역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4곳(관북리 유적 및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나성))이 세계 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이번 세계 유산 등재는 충청권에서는 최초로 선정되었다.[1]

발굴편집

부소산성은 부여지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핵심적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특히, 백제 마지막 도읍으로 알려진 추정 사비 왕궁지의 북쪽 배후에 해당하기 때문에 왕실의 후원(後苑)이자, 유사시 도피처의 기능도 있으므로 왕궁에 버금가는 시설을 겸비한 유적이다. 지난 1980년부터∼2002년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연차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백제~조선 시대에 축조한 성벽, 백제 시대 수혈 건물지와 목책열, 조선시대 군창지 등을 확인하였다.[2]

이후 20여년 뒤에 다시 백제의 추정 서문지와 그 주변 성벽을 대상으로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2021년에는 서성벽의 문지와 함께 부소산 전체를 아우르는 백제 포곡식 성의 정확한 동선을 파악하였고, 배수와 출입 관련 시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소산의 남동쪽 정상부를 중심으로 형성된 통일신라의 테뫼식 성의 축조 방식과 시기마다 달라지는 부소산성 성벽의 변화 양상도 파악하였다.[3]

부소산성 내 백제 포곡식 성은 기본적으로 판축으로 축조되었고, 이외에도 판축 외벽만을 석축하는 방식, 두 겹 이상 판축하는 방식, 내벽에 배수로를 부석하는 방식 등이 확인된 바 있다.[3]

2021년에 조사된 서성벽 구간은 부소산성 성벽 중에 중심토루가[주해 3] 가장 견고하고 반듯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성벽의 판축층[주해 4] 너비는 약 4.8 ~ 4.9 m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높이는 최대 4.4m 정도로, 훼손된 점을 고려하면 더욱 거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성벽의 중심을 이루는 판축층의 내외벽은 모두 흙으로 보강하였는데, 일부는 가공한 석재를 이용하여 마무리한 특이한 양상도 확인되었다.[3]

백제 포곡식 성은 통일신라에 의해 재차 보수작업을 거쳐 꾸준히 활용되었다. 그만큼 부소산성이 중요한 위치였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의 성벽 보수는 성 안쪽 벽면으로 와적층과 부석층을 조성하여 방식을 사용하였고, 일부 구간에 한해 석렬이나 석축이 덧대지기도 하였다.[3]

추정 서문지 지점은 부소산 남록의 추정 사비 왕궁지에서 서복사지를 거쳐 성 내로 진입하는 길목에 해당한다. 이곳은 원래 골짜기를 이루는 지점에 해당하며, 조사결과 백제 성벽 판축층 위로 암거가 형성되어 있었다. 암거의 상부구조는 안타깝게도 남아있지 않지만, 이 주변으로 문지공석,[주해 5] 원형 초석, 매우 잘 치석된 대형 가공석들이 산재해 있어 출입 목적의 구조물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3]

백제와 통일신라 성벽이 연접한 지점에서는 백제 성벽 위로 통일신라 테뫼식 성벽이 만들어졌다. 테뫼식 성의 외벽은 기존의 백제 성벽을 수축하여 사용하였지만, 내벽은 백제 성벽 위에 기단석축을 부가하여 축조하였다. 성벽 시설층에서 축성과정 중 유입된 ‘회창7년’(847년)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성벽의 조성 시기는 9세기 중반 이후임을 알 수 있다.[3]

같이 보기편집

주해편집

  1. 테뫼식 성이란 산(뫼) 정상부를 테처럼 둘러서 쌓은 산성을 말한다.
  2. 포곡식 성이란 산 정상부에서 계곡을 포용하고 내려온 능선부에 성벽을 축조한 산성을 말한다.
  3. 토루(土壘)는 토성 몸체를 이루는 흙더미이다.
  4. 판축은 나무판으로 틀을 만들어 그 안을 흙이나 모래 등을 층상(層狀)으로 넣어 방망이로 찧어서 단단하게 하고 차례로 높게 흙을 쌓아 올리는 기법, 또는 그 쌓아 올린 흙 자체를 말한다.
  5. 문지공석은 성문의 문짝 고정용 목주를 끼우기 위해 구멍을 낸 돌이다.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