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Pudmaker/수필/다툼

오늘은 2시간 가량 위키백과:기여가 많은 일반 사용자 명단을 편집했다. 어차피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편집하거나, 들이 알아서 편집하겠지만, 잠깐 편집하면서 여기에 열거된 이름들의 활동상을 살펴보니 나도 모르게 2시간이 넘게 편집해 버렸다.

해당 문서에는 1000회 이상 기여한 사용자들이 등장한다. 일주일에 50번의 기여를 한다고 가정해도, 20주, 거의 반 년 가까운 시간이다. 즉, 위의 명단에 등록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반 년 이상은 위키백과에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숫자를 얼핏 세어보니, 대략 200명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현재 시점에서 위키백과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용자가 100명 내외라고 하니,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위키백과를 접었거나 눈팅으로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왜 위키백과를 접었을까? 그냥 귀찮아서일 수도 있고, 흥미를 잃어서일 수도 있다. 아마 그런 이유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특기할 만한 점은 '다툼' 때문에 접은 사례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편집하다가 남과 충돌이 일어나고,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이 다툼으로 나아가고, 나아가서는 위키백과를 그만두거나 눈팅족으로 돌아선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으로는 바로 '토론'을 들 수 있다. 토론은 위키백과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이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토론 없이 일이 진행되어서는 안되며, 해당 토론 역시 형식적으로 구색만 맞춘 모습이 아니라 실질적이어야 한다. 이런 방식은 의사결정의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공동체 성원들의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결과를 도출한다는 훨씬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다수의 경우, 온라인 상의 토론이 토론이라기보다는 '말싸움'에 가까운 모습이 되는 것을 많이 경험한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서 발생한 수많은 불협화음을 보곤 한다. 얼굴을 맞대고 하는 토론에서 많은 사람들은 신중하게 발언한다. 엉뚱한 소리를 했다가 눈 앞에서 면박을 당할 수도 있고, 심하면 싸움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면을 통한 토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간혹 지면 논쟁에서도 수준 이하의 말들이 오가는 경우가 있으나, 대체적으로는 논리적이고 세련된 말들이 오간다. 이는 지면 토론의 많은 경우 실명과 직함을 내걸고 있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온라인 상의 토론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조중동부터 한겨레, 프레시안, 민중의소리 등의 인터넷 토론방을 보라. 저런 공간들에서 오가는 말들은 토론보다는 욕구 배설에 가깝다. 그나마 제대로 된 인터넷 토론문화를 보여준다는 다음 아고라는 어떠한가. 실제 아고라에서는 매일매일 좋은 글들이 발표된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논리와 이성에 근거한 토론과 주장만큼, 혹은 그 이상의 쓰레기와 욕설이 오고간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위키백과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키백과를 통해 현실의 자신을 나타내거나, 오프라인 모임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위키백과 ID를 통해 보여주는 '자신'은 현실의 '자신'을 완벽히 보여주지 않는다. 조금만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위키백과 내에서 사실상 완벽한 익명으로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또한, ip 사용자들이 이러한 익명성을 이용해 '찌질'대는 사례도 여럿 발견할 수 있다.(본인도 얼마 전에 당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어디 토론에서 '말싸움'이라도 했던가? 혹은 일부 뉴라이트의 찌질?)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몇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고 나름 오랜 기간동안 참여했던 위키백과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 몰래 활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위키백과가 대한민국 주민등록법에 기반한 실명제를 한다 치더라도, 인터넷 상의 토론에서 말이 험하게 나가는 상황을 막을 수 없다. 실명제 이전 익명성에 숨어서 하던 습성도 남아있거니와, 오프라인에서의 대화와 달리 순간적인 판단과 감정이 여과없이 분출될 수 있다는 점은 실명제 하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실명제로 얻을 것은 거의 없는 반면, '한국어판'이 '한국판'이 되어버리는 문제점, 개인정보 유출 등등의 나쁜 점들만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기여 많은 사용자 목록을 편집하면서, 더이상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나 지금이나 백:쫓의 신봉자인 나지만, 위의 경우에는 백:쫓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몇 달간 위키백과에서 활동하고, 나름 위키백과에 익숙해진 사람이더라도, 토론하다가 질려서 위키백과를 그만두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또한, 토론 도중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부적절한 발언의 말꼬리를 붙잡고 한없이 키보드 배틀을 하는 모습도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상대가 아무리 비논리적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설령 욕지거리를 한다 하더라도 마음 속으로 '참을 인' 20개씩 새기면서 대처해야 하겠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용자들이 이런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나름 다음과 같은 대응방식을 세워놓고 있다.

  1. 어떠한 욕설도 일체 상대하지 않는다.
  2. 비이성, 비논리적 주장을 일삼는 상대와의 편집전쟁은 피한다.
  3. 상대와 의견 충돌이 있을 경우, 1:1로 논파하려 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대응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단순 말싸움보다는 조금 부드러운 대화가 가능하며, 아울러 내가 잘못 생각했을 가능성도 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4. 나보다 위키백과가 익숙하지 않은 상대와 토론할 때는 항상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여 알 수 없는 용어를 남발하거나 '원래 그런거니까 너도 따라와라'는 식으로 대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많은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을 실천한다고 해서 위키백과 내부의 다툼이 없어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위키백과 자체가 토론이 핵심인 만큼, 갈등은 아예 없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나부터 노력하지 않으면 그 누가 노력할까? 약소한 노력이지만 이를 통해 탈퇴를 마음먹었던 사용자가 한 명이라도 줄어든다면, 그것 역시 문서 편집만큼이나, 혹은 더 중요한 '기여'가 아닐까? adidas (토론) 2009년 4월 1일 (수) 12:09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