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 용천부(上京龍泉府)는 발해의 주요 도시였던 5경 중 하나이다. 발해 때는 상경성(上京城) 또는 홀한성(忽汗城)이라고도 했다.

상경
上京
발해
시대남북국 시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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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년 발해 문왕중경에서 상경으로 천도하여 수도로 삼았다. 785년에서 794년 사이 수도가 동경 용원부로 잠시 옮겨졌다가 성왕이 다시 이 곳으로 수도를 옮겼다.[1] 발해가 요나라에 멸망한 뒤, 태조 야율아보기는 그 땅에 동란국(東丹國)을 설치했으나 928년(요 태종 천현 3년), 동란국을 요양부로 옮기면서 완전히 버려졌고, 버려진 성은 여진족이 차지하게 되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상경용천부를 영고탑장군의 치소였던 영고탑으로 비정한 이래 헤이룽장성 무단장 시 닝안 현에 있음을 알았으나 정확한 소재지는 찾지 못하다가 만주국중화인민공화국의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닝안 현 발해진에 있는 고성을 발해의 상경용천부로 비정하게 되었다. 유적으로는 당나라 장안을 본따 만든 것으로 보이는 성터, 도로터, 그리고 왕궁터 등이 있으며 그 안에서 치미, 수막새와 같은 발해시대의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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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龍州), 호주(湖州), 발주(渤州)의 3개 속주를 관할했다.

주명 한자 대략적 위치 비고
용주 龍州 닝안 현 발해진 상경용천부 고성 용천부의 중심지였고 상경성 내에 치소를 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주동남쪽으로 약 7.5km거리에 있는 토성자촌 토성자고성에 치소를 둔 것으로 추정되는 장평현(長平縣)을 속현으로 두었다.
호주 湖州 닝안 현 경박향 남호두고성 본주에서 호(湖)의 어원이 된 징푸호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호수근처의 성중 가장 큰 남호두고성(南湖頭古城)에 치소를 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주 渤州 무단장 시 양밍 구 화림진 남성자고성 성터의 북쪽으로는 반위엔 허 강과 3km거리를 두고 있으며 동쪽으로 러러허 강과 인접하여 흐르고 있어 남쪽을 제외한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은 남쪽으로 약간 길쭉한 장방형을 이루는데, 성벽의 대부분이 도로로 이용되면서 파괴되었으나, 남벽과 서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남아 있는 성의 둘레는 2,060m이고, 남북 길이 580m, 동서 너비 450m 정도이다. 대부분은 흙을 판축하여 쌓았으며, 일부는 돌과 흙을 섞어 쌓은 곳도 있다. 성의 내부는 모두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1986년에 헤이룽장 성 문물로 지정되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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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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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경성 - 고고학 사전, 2001년 12월, 국립문화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