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으로 꼬아 처럼 만든 것이다.[1]

새끼
새끼

역사 편집

원삼국 시대의 회색 경질토기인 삿무늬토기 등에서 새끼의 흔적을 볼 수 있다.[2] 신라의 짚신형토기에도 새끼의 형태가 나타난다.[2]

조선 초기에는 궁중관아에서 쓰는 물품을 납품했던 공인 조직인 공계(貢契) 가운데, 새끼나 줄 등을 조달하던 삭계(索契)가 있었을 정도로 새끼가 널리 쓰였다.[2]

19세기 초에 간행된 《만기요람》 〈세폐〉의 〈작태식〉에는 청나라공물로 보내는 직물종이의 "밖을 묶고 싸는 데는 전에는 새끼(藁索고삭)를 사용키로 정하였는데, 영종 정해(1767년, 영조 43년)에 새 겹으로 꼰 굵은 새끼를 사용할 일로 묘당에서 재결(裁決)하였다."라는 기록이 나온다.[2][3]

손으로 꼬아서 쓰다가 20세기 초 새끼틀이 들어오면서 대량생산하게 되었고,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군용으로 많은 새끼가 가마니와 함께 공출되기도 했다.[2] 그 후 새끼틀의 동력화가 진행되었으며, 사람이 발로 밟아 돌리는 디딤 장치를 떼고 주축에 벨트 바퀴를 붙이는 등 여러 부분이 개량되었다.[2]

1960년대 후반까지 새끼가 널리 쓰였으며, 1970년대부터는 여러 합성수지 끈이 널리 쓰이게 되면서 새끼의 쓰임새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2] 20세기 후반부터 민속품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4]

종류 편집

가는 새끼, 중간 새끼, 굵은 새끼, 동바, 밧줄 등 굵기에 따른 구별이 있으며, 손바닥으로 비벼 꼰 새끼는 오른새끼와 왼새끼로 나뉜다.[2]

만들기 편집

농경 사회의 행랑이나 헛청에서, 농한기나 비오는 날에는 새끼를 꼬았다.[2] 볏짚 두 가닥을 양 손바닥으로 비벼 꼬는데, 오른손을 바깥쪽으로, 왼손을 안쪽으로 끌어당겨 오른새끼를 만들 수 있으며, 반대로 왼손을 바깥쪽으로, 오른손을 안쪽으로 끌어당겨 왼새끼를 만들 수 있다.[2]

쓰임새 편집

합성수지 밧줄이나 노끈이 나오기 전까지 농공에서 중요하게 쓰인 소모재였고 대표적인 포장재료였다. 짚신이나 가마니, 지붕의 이엉, 지게동바, 고삐 등에 새끼가 쓰인다.[2] 보통 오른새끼를 쓰지만, 금줄에는 악귀를 쫓는다고 알려진 왼새끼를 썼다.[2]

같이 보기 편집

각주 편집

  1. “새끼”. 《표준국어대사전》. 국립국어원. 2018년 1월 4일에 확인함. 
  2. 박대순. “새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1월 4일에 확인함. 
  3. 서영보; 심상규 (1971) [1808]. 〈작태식〉. 《만기요람》. 번역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한국고전번역원. 
  4. “새끼”. 《두피디아. 2018년 1월 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