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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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내전은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1991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속되는 전쟁이다. 30만 명[1] 또는 4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소말리아 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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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 아프리카의 뿔 분쟁의 일부 | |||||||
![]() 미 육군의 UH-60 블랙 호크기가 모가디슈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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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1986-1991
지원국 ![]() |
소말리아 연합 의회 | ||||||
1992-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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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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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드 바레의 몰락편집
소말리아는 영국 보호령이었던 북부와 이탈리아의 신탁통치를 받던 남부로 갈라져있었다가 1960년에 통일해서 그 결과로 소말리아 민주 공화국이 탄생했다. 1969년 시아드 바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1991년까지 22년간 소말리아 대통령을 역임했다.
미국은 친소정부였던 시아드 바레 집권부를 지지했다. 1986년 시아드 바레가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부족들을 특수부대인 레드 베레로 공격하자, 소말리아 혁명이 시작되었다.[3]
1991년 1월 26일 시아드 바레 대통령이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이끄는 군벌연합의 쿠데타로 축출되어 퇴임한 이후, 소말리아 혁명에 반대하는 혁명이 발생했다. 내전에 따른 폭력의 증가는 인권 마비, 무정부 상태를 초래했다.
내전이 격화되자, 소말릴란드라고 불리는 소말리아 북서부 지역이 소말릴란드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독립을 승인하지 않았다. 북동부 지역은 푼트랜드라고 불린다. 푼트랜드도 1998년 자치 공화국을 선포했으나, 인접한 소말릴란드와 달리 푼틀란드는 소말리아에 대해 명백하게 독립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1993년 소말리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부대인 델타 포스를 모가디슈 전투에 파병했다가 현지 민병대원에게 헬기 두 대가 격추당하고 18명의 병사가 체포돼 목숨을 잃었던 이른바 "블랙호크 다운"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4]
1991년부터 20년간의 내전속에서 소말리아인 40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되며 57만 명은 난민이 돼 인접국으로 떠돌고 140만 명이 살던 곳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소말리아인들은 지금의 무정부 상태보다 시아드 바레 정부 시절이 훨씬 좋았던 '황금시기'였다고 생각하고 있다.[5]
소말리아 인권단체들은 정부군의 20%(5000∼1만 명), 반군 병력의 80%가 소년병이며 9세 어린이까지 전장에 투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6]
UN의 개입 (1992–1996)편집
소말리아 정권 붕괴에 따른 인도적 지원과 질서 안정을 위해서, 유엔 안보리 제733호 결의와 유엔 안보리 제746호 결의에 따라 UNOSOM I 평화유지군이 창설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 ↑ Twentieth Century Atlas - Death Tolls and Casualty Statistics for Wars, Dictatorships and Genocides
- ↑ Hundreds of thousands killed in years of war, says new president
- ↑ The Fall of Siad Barre and the Descent into Civil War Nations Encyclopedia
- ↑ “<중동대변혁> 리비아사태 알카에다 발호 기회되나”. 2018년 10월 23일에 확인함.
-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4887071
-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0&aid=0002144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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