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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식 (1921년)

신원식(申元植, 1921년 3월 18일 ~ 2008년 10월 24일)은 대한민국독립운동가 겸 정치가이다.

산남 신원식
山南 申元植
대한민국 국방부 차관 예하
특별행정보좌관 직무대리
(大韓民國 國防部 次官 隸下
特別行政補佐官 職務代理)
임기 1959년 2월 15일 ~ 1959년 5월 31일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장면
장관 김정렬 (국방부 장관)
차관 최세황 (국방부 차관)
전임 지달수
후임 김찬도
대한민국 관선기 전라북도지사 직무대행 서리
(大韓民國 官選期 全羅北道知事 職務代行 署理)
임기 1963년 12월 16일 ~ 1963년 12월 19일
대통령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
총리 최두선 (대한민국 국무총리)
장관 이계순 (내무부 장관 직무대행 서리)
차관 이계순 (내무부 차관)
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 예하
차석보좌관 직무대리
(日本 駐在 大韓民國 大使 隸下
次席補佐官 職務代理)
임기 1976년 3월 16일 ~ 1978년 3월 16일
군주 히로히토 (일본 군주)
대통령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
총리 최규하 (대한민국 국무총리)
수상 미키 다케오 (일본 총리)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
부대표 김영선 (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
장관 박동진 (대한민국 외무부 장관)
차관 윤하정 (대한민국 외무부 차관)
후임 강재륜
신상정보
출생일 1921년 3월 18일(1921-03-18)
출생지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면 행정리 425번지
사망일 2008년 10월 24일(2008-10-24) (87세)
사망지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1]
거주지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고흥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보성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면 내상리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부산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대한민국 전라남도 함평
대한민국 서울
본관 고령(高靈)
학력 전라남도 고흥 금산보통학교
경력 국민회의 국가시민행정특임고문
정당 무소속
배우자 장정임(이혼)[2]
자녀 신계륜(아들)
친인척 김유미(자부)
종교 유교(성리학) → 불교개신교
서훈 1993년 7월 17일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
웹사이트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1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공훈록 - 002

본관고령(高靈)이며 아명(兒名)은 신재민(申梓珉)이고 (號)는 산남(山南)이다.

생애편집

일제 강점기 시대편집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면 행정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지난날 한때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면 벌교리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경상남도 밀양군 산내면 남명리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1934년 전라남도 고흥 금산보통학교 졸업 이후 1938년 일본에 건너갔으며 1939년 5월 나고야(名古屋)에서 당시 타일 잡역 직공이었던 이수영(李水濚)이 조직한 평화민족부흥회(平和民族復興會)라는 비밀결사 조직체에 김두희 등과 함께 가입하여 항일(抗日) 운동을 벌였고 이에 아울러 몸소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 등을 체험하며 한민족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추구키 위하여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모멸 압제와 아울러 세계 민족 독립운동 관련 상황 등을 매번씩 비밀 회동식에서 역설하며, 서로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 등을 협의하다가 끝끝내 발각되며 1940년 6월 23일을 기하여 동지 21명과 함께 일경에 체포되었다가 고문을 받았고 결국 재판에서 징역 5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오사카에서 복역 중 1943년 이수영(1940년 징역 5년 8개월형 선고), 김두희(1940년 징역 5년형 선고) 등과 함께 병보석으로 석방되어 그 해 조선에 귀국하였다.

광복 이후 전력편집

국가 수훈편집

  •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 7월 17일을 기하여 대통령 표창장을 수여하였다.

만년편집

  • 1999년 11월 26일을 기하여 숙환(지병) 완화를 위한 요양을 하고자 일본 나고야에 건너가 지냈으며 그 후 2008년 10월 24일, 일본 나고야에서 별세하였다.

각주편집

  1. 만성 당뇨병와 만성 저혈압의 합병증으로 일본 나고야에서 요양하던 중 끝내 병사
  2. 1999년 10월 11일 이혼.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