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현 (조선)

조선 후기의 문신

심수현(沈壽賢, 1663년 ~ 1736년)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영조영의정을 지냈다.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기숙(耆叔), 호는 지산(止山)이다. 강화학파로서 준소(峻少)의 영수이다.

심수현
沈壽賢
출생1663년
조선 한성부
사망1736년
조선 한성부
거주지조선
성별남성
국적조선
본관청송
별칭자(字) : 기숙(耆叔)
호 : 지산(止山)
학력1704년(숙종 30)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제
직업문신 · 정치인
소속소론
부모아버지 : 홍문관 응교 증 영의정 심유(沈濡)
어머니 : 증 정경부인 백천 조씨
형제심제현 (형)
심경현(동생)
심공현(동생)
배우자초취 : 증 정경부인 전의 이씨
후취 : 정경부인 광주 안씨
자녀5남 4녀
심육(장남)
심악(차남)
심약(삼남)
심필(사남)
심발(오남)
친척조석윤 (외조부)
홍진보(사위)
홍양호(외손자)
심대윤(고손자)

훈구파 대신 영의정 심회의 후손이고, 영의정 심연원의 후손이며, 서인(西人)의 초대 영수 심의겸의 후손이다. 영조 때 이조판서, 좌참찬, 판돈녕부사를 지낸 노론 심택현(沈宅賢)과는 8촌지간이다. 또한, 강화학파의 대학자로서 이조판서와 문형(文衡), 판중추부사를 지낸 풍산 홍씨 홍양호(洪良浩)의 외조부이다. 그리고, 영조 때의 소론 산림(少論 山林) 심육(沈錥)의 아버지이고, 조선 후기 실학자 심대윤(沈大允)의 고조부이다.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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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대조 : 심연원 - 영의정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 7대조 : 심강 - 조선 제13대 명종국구,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 영돈녕부사 증 영의정
  • 6대조 : 심의겸 - 서인의 초대 영수, 병조판서 청양군(靑陽君)
  • 5대조 : 심엄 - 옥과현감 증 영의정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 고조부 : 심광세 - 홍문관 응교 증 이조참판
    • 증조부 : 심억(沈檍) - 한성부 서윤, 증 좌찬성
      • 조부 : 심약한(沈若漢) - 증 좌찬성
        • 아버지 : 심유(沈濡) - 홍문관 응교 증 영의정
        • 어머니 : 증 정경부인 백천 조씨 - 대제학 조석윤(趙錫胤)의 딸
          • 형 : 심제현(沈齊賢) - 삼척부사
          • 동생 : 심경현(沈景賢) - 진사
          • 동생 : 심공현(沈恭賢) - 사과
          • 본인 : 심수현(沈壽賢) - 준소(峻少)의 영수, 영의정
            • 장남 : 심육(沈錥) - 소론 산림(少論 山林), 세자시강원 찬선, 성균관 좨주, 형조참판, 대사헌
              • 손자 : 심정지(沈靖之)
                • 증손자 : 심동륜(沈同倫)
                  • 고손자 : 심대항(沈大恒)
            • 차남 : 심악(沈䥃) - 이조참판
              • 손자 : 심신지(沈新之)
                • 증손자 : 심응륜(沈應倫)
                  • 고손자 : 심대재(沈大載) - 심완륜(沈完倫)의 아들
                • 증손자 : 심완륜(沈完倫) - 심무지(沈戊之)에 양자로 입적
            • 삼남 : 심약(沈鑰) - 용담현령
            • 사남 : 심필(沈鉍)
            • 오남 : 심발(沈鈸) - 내시교관
              • 손자 : 심무지(沈戊之)
                • 증손자 : 심완륜(沈完倫) - 심신지(沈新之)의 아들
                  • 고손자 : 심대윤(沈大允) - 조선 후기 대실학자
                  • 고손자 : 심대재(沈大載) - 심응륜(沈應倫)에 양자로 입적
                  • 고손자 : 심의래(沈宜來)
                  • 고손자 : 심대시(沈大時)
                  • 고손자 : 심의돈(沈宜敦)
                  • 고손자 : 심의규(沈宜逵)
            • 장녀 : 동래인 부사 정석기에게 출가
            • 차녀 : 풍산인 홍진보에게 출가
            • 삼녀 : 동래인 군수 정양순에게 출가
            • 사녀 : 전의인 첨지중추부사 이익윤에게 출가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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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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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4년(숙종 30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 홍문관 수찬, 홍문관 교리, 강원도 암행어사, 사간원 헌납, 의주부윤, 승지, 양양부사, 충청도 관찰사, 승지, 형조참의, 경상도 균전사를 지냈다.

경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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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 강화부 유수, 대사헌, 이조참판 겸 세자시강원 좌부빈객,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겸 산릉 제조를 지냈다.

영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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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4년(영조 즉위년) 병조판서판의금부사 겸 지경연관사가 되었다.[1] 비변사 당상 겸 유사 당상도 겸하였다.

1725년(영조 1년) 금위대장을 겸하였다.[2] 이후, 지중추부사, 병조판서 겸 지경연관사 겸 세자시강원 빈객 겸 판의금부사를 거쳐, 1727년 우의정, 1729년 판중추부사, 1732년(영조 8년) 영의정공조판서가 되었다.[3]

1734년 영의정에서 물러나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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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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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종실록》
  • 《경종실록》
  • 《영조실록》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