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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1958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가계편집

  • 21대조 : 심덕부
    • 20대조 : 심온
      • 19대조 : 심회
        • 18대조 : 심원
          • 17대조 : 심순문
            • 16대조 : 심달원
              • 15대조 : 심수
                      • 아버지 : 심용섭
                        • 본인 : 심재철

생애편집

1958년 전라남도 광주시(현재의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고,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에 진학한 그는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대학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24인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의자 중 대부분은 5월 17일에 연행되었고, 나머지는 6월 15일 이석표 체포, 6월 16일 이신범 체포, 6월17일 전국에 심재철 지명수배령이 내려지고 6월 18일 설훈, 송기원 체포, 며칠 후 이해찬, 조성우 체포, 6월 30일 심재철은 자수하였다. 1988년 5공청문회 때 심재철은 자신이 검찰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거짓 자백을 했으며 한통련 사건과 관련한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것은 검찰측 증인으로 나온 간첩의 증언 때문이었다고 밝혔다.[1] 실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의자중 대부분이 이때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책을 써 자신들이 고문에 굴복하지 않을수 없음을 고백했다.[2] 심재철이 수배중인 6월 17일 이미 계엄사령부는 김대중의 학생운동 총책인 이해찬의 조종을 받아 전국의 학생운동을 진두지휘했다고 발표하였다. 심재철이 자수한 후 이미 발표된 내용에 꿰맞춰져 고문을 당했다. 다른 이들이 언사한 거짓 진술에 의한 조작에 꿰맞춰지기 위해 심재철은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고문받던 다른 피의자들과 달리 치안본부 특수대에 끌려가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청와대 경비를 맡고 있던 33헌병단 군인들(최하위가 무술 유단자로 구성된 이들)에게 고문을 받았으며, 내란음모사건 피의자중 가장 혹독하게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3][4]

1985년 교사에 임용되어 서울 동대문여자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를 지내다가 그만두고 MBC에 입사하여 MBC 문화방송 보도국 기자를 지냈다. 1988년 방송사 최초 MBC노조를 만들고 초대 전임자를 지냈으며 1992년 MBC방송민주화 투쟁에서 옥고(업무방해·노동쟁의조정법, 징역8월·집유2년 (1993.1.20))를 치렀다.[5]

1995년 12월에 신한국당 부대변인, 안양 동안 갑구 지구당 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6대 총선에서 원내진입에 성공해 한나라당 제3정조위원장, 국무총리(이한동, 장상 후보자) 인사청문위원, 공적자금특위위원 등을 지낸 이래 17대 재선 때 전략기획위원장, 원내수석 부대표, 홍보위원장을 지냈고 18대 3선때는 경기도당 위원장, 정책위 위원장, 국회예결위 위원장 19대 4선 때는 최고위원을 지냈으며 20대 때는 국회 부의장에 당선되는 등 현재까지 총 32개의 국회직 29개의 당직을 역임하였다.

학력편집

경력편집

의정 활동편집

제16대 국회편집

  •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제16대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초선)
  • 한나라당 제3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 한나라당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
  • 제16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제16대 국회 장애인특별위원회 간사
  •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

제17대 국회편집

  •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제17대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재선)
  • 제17대 국회 국회개혁특별위원회 위원
  • 제17대 국회 후반기 건설교통위원회 위원
  • 제17대 국회 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 한나라당 전략기획위원회 위원장
  •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부위원장
  • 제17대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직능정책본부 문화예술위원장
  •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

제18대 국회편집

  •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제18대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3선)
  • 제18대 국회 전반기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위원
  • 제18대 국회 전반기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 제18대 국회 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 제5회 지방선거 한나라당 클린공천감시단 단장
  •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
  •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

제19대 국회편집

  •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제19대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4선)
  • 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토해양위원회 위원
  • 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 제19대 국회 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 새누리당 국민안전운동본부 본부장
  • 새누리당 최고위원
  • 새누리당 아파트관리비절감대책특위 위원장
  • 새누리당 세월호사고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 새누리당 국민건강특별위원회 위원장
  • 새누리당 유라시아철도 추진위원회 위원장

제20대 국회편집

  • 2016년 5월 30일 ~ : 제20대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5선)
  • 제20대 국회 전 ~ 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 제20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 자유한국당 6·13 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고문
  • 자유한국당 남경필 경기도지사 후보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자유한국당 경기도당 안양시 동안구(을) 당협위원장
  • 자유한국당 좌파독재저지특별위원회 고문

범죄사실편집

내란음모, 계엄법 위반편집

징역 5년(형의면제, 4개월 복역)

1980년 6월30일 자수하여 검거되었고 같은 해 9월17일 징역 5년을 선고를 받았으나 자수 후 4개월만인 같은해 11월4일 형의면제[6]로 석방되었다. 그후 1983년 12월 23일 특별복권[7] 되었다.

문화방송 파업편집

1992년 10월 3일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특수부는 노동쟁의조정법위반, 업무방해 혐의로 前 MBC 문화방송 기자였던 심재철을 지명수배했다. 심재철은 이완기 문화방송 노조위원장 직무대리 등과 함께 1992년 9월 2일, 문화방송 파업이 서울지방노동위의 직권중재에 회부돼 쟁의행위를 할 수가 없는데도 제작 거부 등 단체 행동을 하였고(노동쟁의조정법위반), 9월 14일 서울지노위가 중재안을 내놓은 뒤에도 파업을 계속하여 문화방송에 광고수입 등 10억여원의 재산상의 손실을 끼친(업무방해) 혐의를 받았다.[8] 1992년 11월 18일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특수부는 심재철을 구속하였다.[9]

1993년 1월 20일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1995년 8월 15일 특별사면되었다.[7]

불법 인쇄물 배포편집

심재철은 1996년과 2000년 1월 사이에[10] 자신의 민주화운동 전력 기사와 유명 인사의격려사 등을 넣어 지구당 간행물 합본호를 제작한 뒤 자신의 사진과 지지내용이 담긴 후원회 초청장을 동봉, 선거구민 5백명에게 우송하였다. 또한 안양시청 강당 등 3곳에서 명함형 소형인쇄물 50여장을 배포하였다. 2001년 7월 23일 수원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정덕모)는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위반 혐의로 심재철에게 벌금 150만원을 선고했다.[11]

심재철과 검찰은 모두 항소하였고[10], 2001년 12월 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재판장 강병섭)는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심재철에게 벌금 80만원으로 감형하여 선고했다.[12] 이에 대해 검찰과 심재철 모두 상고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되었다.[10]

선거구민에게 도서기부 시도편집

심재철은 자신의 처가 교통사고를 당한 자신을 간병하며 작성한 병상일기를 편집하여 "아내의 일기"라는 249쪽 분량의 단행본 서적으로 5,000부를 제작한 다음, 2000년 3월 20일 한나라당 지구당 사무실에서 선거사무장과 지구당 홍보책임자에게 해당 서적이 든 우편물을 우체국에 접수시키도록 하여 소인까지 찍었다. 우편물은 2,642명의 선거구민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발송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거쳤으나, 3월 22일 관할 선거관리위원회가 우송중지 요청을 하여 우체국은 우송을 중단하였다. 검찰은 선거구민에게 시판시 6000원 상당으로 예상되는 서적 1권씩을 제공하려는 의사표시를 하여 기부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위반 혐의로 심재철을 기소하였다.[13]

2001년 12월 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재판장 강병섭)와 항소심 재판부인 2001년 12월 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0부(재판장 강병섭) 모두 도서기부 의사표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은 무죄가 선고된 혐의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였다.[10]

2002년 9월 10일 대법원은 원심판결의 무죄 부분을 파기하고 유죄취지로 원심법원으로 파기환송하였다.[13]

2002년 12월 6일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2부(재판장 이성룡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위반으로 심재철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14][15]

2003년 3월 28일 대법원 2부(주심 이규홍 대법관)는 상고를 기각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16]

논란편집

누드 사진 감상 논란편집

2013년 3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드 사진을 검색해 논란이 되었다.[17] 나중에 한국당 의총에서 관련 사건으로 김성태 원내대표와 설전을 벌여 화제가 되었다. 김성태 원내대표에게 사퇴하고 심재철 의원이 말하자 김성태 의원은 “2013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성의 누드사진을 보는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노출되면서 출당 위기까지 있었는데 막아주지 않았느냐”고 발언하였으며 심재철 의원은 “당시 출당요구는 없었다”고 맞섰다.[18]

정부 업무추진비 불법 자료유출 공개 논란편집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 보좌진이 정부의 업무추진비를 공개하면서, 정부의 비공개 예산 정보를 무단 열람·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기획재정부는 2018년 9월 17일 심 의원실 보좌관들이 한국재정정보원이 운영하는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민감한 예산정보 수십만 건을 내려받았다며, 이들을 정보통신망법 및 전자정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심 의원은 보좌진이 접속 권한을 받아 정부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등을 다운받았음에도 정부가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등 국정감사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반박했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재훈 재정정보원장, 기재부 관계자 등을 무고 등 혐의로 전날 맞고발했다.[19] 이와 관련하여 검찰에서는 2019년 4월 8일, 검찰은 심재철 의원을 기소유예 처분하였다. 심재철 의원이 자료를 불법 유출한것은 맞지만 불법 유출한 예산지출 내역 자료가 대부분 압수되었고, 잔여 자료를 검찰에 반환한점과 향후 이와 같은 자료를 활용하지 않을 것을 서약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였다고 검찰은 설명하였다.. [20]

5.18 보상금 관련 거짓 해명 논란편집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20여년 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피해자)로 인정돼 정부 보상금이 지급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주장해왔던 심재철 의원은 정작 자신이 5·18피해자로 인정돼 보상금까지 받았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심재철 의원은“5·18유공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공개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국가에 공을 세웠는데 왜 부끄러워하고 숨기는지 저는 그 점이 이해 안된다”면서 “세금이 어떻게 얼마나 들어가는지 공개돼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하였다.5.18 보상금을 받은 사실이 언론사를 통하여 공개되자 보도자료를 통해 보상금을 받은 것은 맞지만, 자신이 직접 신청하지는 않았다고 해명하였다. 보상심의위원회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고인 24명에 대해 모두 일괄보상을 실시했다고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광주시는 일괄보상은 없었고 5·18 보상금을 받으려면 신청서를 두 번 작성해야 하며 심 의원이 인정받은 연행·구금의 경우 ‘기타지원금 지급신청서’를 작성해 5·18 피해자에 해당하는지를 심의받아야 하고 신청서에는 주민등록번호 등을 적어야 하며 주민등록등본·호적등본·소득증명서류와 5·18 피해를 소명할 수 있는 서류도 첨부하도록 돼 있읐으며 보상금액이 결정되면 이를 수령하기 위해 “보상 결정에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동의 및 청구서’에 서명하고 돈을 입금받을 본인 명의 은행계좌를 적어야 한다고 말하였으며 심재철 의원의 5.18 민주화운동 보상금 신청서가 광주시에 영구문서로 보관돼 있고,5.18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신청서를 내야만 심의를 거쳐 받을 수 있다고 밝혀 심재철 의원이 직접 신청서를 제출하여 돈을 받았음에도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거짓 해명을 한것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21][22][23][24]

공약이행 관련편집

18대, 19대 선거공약 이행 우수의원 선정편집

심재철 의원은 학자금 대출이자 인하, 무료 필수 예방접종 확대, 휴대폰 및 통신요금 인하, 아파트 관리비 부과체계 표준화를 통한 관리비 절감 등 공약을 성실히 이행해 시민단체 270여개로 구성된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주관단체 '법률소비자연맹'으로부터 선거공약 이행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었다.[25]

저서편집

  • 《유라시아에서 만난 대한민국》(2015)
  • 《하루》(2011)
  • 《우리는 내일로 간다》(1995)
  • 《제15대 국회의원 후보자 공약집》(1996)
  • 《심재철의 국회 속 기록》(1998)
  • 《심재철의 온라인 - 제15대 총선 공약》(1999)

역대 선거 결과편집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총선 15대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갑 신한국당 18,222 표
24.70%
2위 낙선
총선 16대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한나라당 62,108 표
49.12%
1위   초선
총선 17대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한나라당 41,838 표
50.99%
1위   재선
총선 18대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한나라당 39,453 표
61.23%
1위   3선
총선 19대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새누리당 42,405 표
51.68%
1위   4선
총선 20대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새누리당 36,148 표
41.47%
1위   5선

각주편집

  1. 출처: 김영진, 충정 작전과 광주항쟁(上) P126, 「동광출판사」
  2. 2000년 10월 이문영, 한승헌, 이해동, 송기원, 설훈 책머리에서 (문이당,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의 진실, 2002) 中 "1980년에 취조받았을때 무죄한 김대중 씨를 내란의 괴수로,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내란자로 허위자백한 것입니다. 혹독한 고문에 의한것이지만 비록 죽더라도 안 한 것을 안 했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 약함입니다."
  3. 김종완, 군화발에 짓밟힌 민주화의 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진실, 문이당, 2002
  4. 김상현, 내가 겪은 80년, 그리고 광주 p219,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의 진실, 문이당 2002
  5. 참여연대 국회감시사이트 http://watch.peoplepower21.org/New/cm_info.php?member_seq=133 Archived 2014년 10월 16일 - 웨이백 머신
  6. 강현석 (2019년 5월). 4개월 수감 심재철·32개월 수감 이해찬 5·18 보상금 차이 당연한 차이 (보고서). 
  7. 이옥남·김도연 (2016년 4월). 4·13 총선국회의원 당선자 전과현황 (보고서). 바른사회시민회의. 
  8. “노조 간부 7명 구속”. 《한겨레》. 1992년 10월 4일. 
  9. “문화방송 심재철 前 기자 구속”. 《한겨레》. 1992년 11월 19일. 
  10. 조상현 (2002년 12월 17일). “(포커스) 심재철의원, 의원직 어떻게 되나”. 《법률신문》. 
  11. 윤기동 (2001년 7월 23일). “심재철 의원 벌금 150만원 선고”. 《한국경제》 (네이버 뉴스). 
  12. 박세용 (2001년 12월 11일). “의원3명 2심서도 당선무효형(종합)”. 《연합뉴스》 (네이버 뉴스). 
  13. 대법원 (2002년 9월 10일).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위반 [대법원 2002. 9. 10., 선고, 2002도43, 판결] (보고서). 국가법령정보센터. 
  14. 오유신 (2002년 12월 6일). “송영길·심재철 의원 의원직 유지할듯”. 《국민일보》. 
  15. 류이근 (2002년 12월 6일). “심재철 의원 '현직 유지' 논란”. 《한겨레》. 
  16. 고웅석 (2003년 3월 28일). “김영배 의원직 상실.심재철 유지될듯(종합)”. 《연합뉴스》. 
  17. [1]
  18. 수정 2018.07.13 21:11, 입력 2018 07 13 19:24 (2018년 7월 13일). “한국당 때아닌 '누드사진 논쟁'...심재철 망신주기용?”. 2019년 1월 1일에 확인함. 
  19. 방현덕 (2018년 9월 20일). “심재철-기재부 '재정정보 유출' 공방 서울중앙지검이 수사”. 《연합뉴스》. 
  20. “검찰 '기재부 예산자료 유출 의혹' 심재철 기소유예”. 2019년 4월 8일. 2019년 5월 27일에 확인함. 
  21. 수정: 2019.05.16 09:17, 입력: 2019 05 16 06:00 (2019년 5월 16일). “[단독]‘5·18 피해자’ 사양했다던 심재철에 보상금 3500만원 지급됐다”. 2019년 6월 1일에 확인함. 
  22. 전정인. “심재철, 5·18 보상금 수령 인정…″일괄 보상받아″”. 2019년 6월 1일에 확인함. 
  23. 수정: 2019.05.20 06:02, 입력: 2019 05 20 06:00 (2019년 5월 20일). “[단독]심재철, 5·18 보상금 받으려 신청서 2번 제출 드러나”. 2019년 6월 1일에 확인함. 
  24. “심재철 의원 5.18 보상금 신청서 광주시에 보관”. 2019년 5월 20일. 2019년 6월 1일에 확인함. 
  25. “선거공약 이행 우수의원 시상”. 2019년 5월 27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

전임
정갑윤
제20대 전반기 국회부의장(제2당)
2016년 6월 9일 ~ 2018년 5월 29일
후임
이주영
  전 임
(안양시 동안구 갑)최희준
(안양시 동안구 을)이석현
제16대 국회의원(경기 안양시 동안구)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한나라당무소속한나라당
후 임
(안양시 동안구 갑)이석현
(안양시 동안구 을)심재철
 
  전 임
(안양시 동안구)심재철
제17대 국회의원(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2004년 5월 30일 ~ 2008년 5월 29일
한나라당
(안양시 동안구 갑)이석현
후 임
(안양시 동안구 갑)이석현
(안양시 동안구 을)심재철
 
  전 임
(안양시 동안구 갑)이석현
(안양시 동안구 을)심재철
제18대 국회의원(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한나라당새누리당
(안양시 동안구 갑)이석현
후 임
(안양시 동안구 갑)이석현
(안양시 동안구 을)심재철
 
  전 임
(안양시 동안구 갑)이석현
(안양시 동안구 을)심재철
제19대 국회의원(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새누리당
(안양시 동안구 갑)이석현
후 임
(안양시 동안구 갑)이석현
(안양시 동안구 을)심재철
 
  전 임
(안양시 동안구 갑)이석현
(안양시 동안구 을)심재철
제20대 국회의원(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2016년 5월 30일 ~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안양시 동안구 갑)이석현
후 임
(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