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 (신라)

심지(心地, ?~?)는 9세기 신라의 승려이다.

삼국유사》에는 헌덕왕(憲德王)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열다섯 살에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중악(中岳)에 머물렀다.

속리산에서 영심(永深)이 진표(眞表)의 불골간자(佛骨簡子)를 받들어 과증법회(果證法會)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지만, 뒤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승려로서 법회에 참가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하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 예배하고 참회하였다. 그런데 7일이 지나 큰 눈이 내렸는데, 심지가 서 있는 자리 사방으로 열 자 거리에는 눈이 떨어지지도 쌓이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신이하게 여겨 마침내 그가 법당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였지만, 심지는 병을 핑계로 법당에는 들어가지 않은 채 물러나 다른 방에서 법당을 향해 절을 올렸다.

법회가 끝나고 돌아오던 심지는 간자 두 개가 옷섶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돌아가서 영심에게 알렸는데, 분명히 간자를 함 속에 깊이 넣어놨는데 그럴 리 없다며 영심은 자신이 간자를 넣어둔 상자를 살폈고, 상자를 닫고 봉해놓은 것은 예전과 같지만 간자만이 없어져 있는 것에 놀란 영심은 다시 심지로부터 간자를 전해받아 보관했지만, 마찬가지로 상자에 넣어둔 간자가 다시 심지의 옷에 붙어있는 일이 생기자, 영심은 "부처의 뜻은 당신에게 있으니 당신이 그것을 받들라"며 간자를 심지에게 전해주었다.

심지가 그 간자를 정수리에 이고 중악으로 돌아오자, 산신이 두 선자(仙子)를 데리고 심지를 맞이하여 산꼭대기에 그를 데려다 바위 위에 앉히고는 엎드려 불문에 귀의하기를 청했는데, 심지는 "지금 땅을 가려서 성간(聖簡)을 봉안해야 하는데,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니 함께 높이 올라가 간자를 던져 점을 쳐보자"고 하고는 중악 산신들과 산꼭대기에 올라 서쪽을 향해 던졌다. 간자는 곧 바람에 날려 날아가 중악 깊은 곳의 숲의 샘물 속에 떨어졌고, 심지는 간자가 떨어진 샘이 있던 자리에 절을 지어 간자를 모시게 되었다. 바로 지금의 동화사(桐華寺)였다.

절을 중창할 당시 계절이 겨울이었는데도 오동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고, 심지는 이에 감탄하여 절의 이름을 유가사에서 동화사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동화사 경내의 조사전 앞에는 '심지조사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오동나무가 서있다.

참고 문헌편집

  • 《삼국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