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동화사(桐華寺)는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에 있는 절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경북 5대 본산 중의 하나이자,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다.

동화사

동화사 (대웅전 오른편 심검당 위치에서 촬영)
종파 대한불교 조계종
건립년대 832년
창건자 심지대사
별칭 팔공총림 동화사
위치
소재지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길 1
좌표 북위 35° 59′ 35″ 동경 128° 42′ 15″ / 북위 35.99306° 동경 128.70417°  / 35.99306; 128.70417좌표: 북위 35° 59′ 35″ 동경 128° 42′ 15″ / 북위 35.99306° 동경 128.70417°  / 35.99306; 128.70417

목차

창건편집

《동화사사적비》(1931년)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극달 화상(極達和尙)이 유가사(瑜伽寺)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것을 흥덕왕(興德王) 7년(832년) 심지조사(心地祖師)가 중창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동화사라는 이름은 중창할 당시, 겨울인데도 오동나무가 꽃을 피운 것을 보고 상서로운 징조로 여긴 심지조사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삼국유사》(13세기)에는 진표(眞表)로부터 불골간자를 이어받은 영심(永深)이 다시 심지조사에게 간자 두 개를 전했고, 심지조사가 그것을 봉안할 땅을 찾고자, 중악(中岳)의 두 신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가 서쪽을 향해 던지니 간자가 곧 바람에 날려 날아갔고, 간자가 떨어진 곳이 동화사 참당(籤堂)의 북쪽에 있는 작은 우물이었다. 그리고 심지조사는 그곳에 강당을 지어 간자를 봉안했다고 한다.

연혁편집

 
동화사 당간지주

경문왕(景文王) 3년(863년)에 동화사에 딸린 비로암의 3층 석탑과 석조 비로자나불이 경문왕 자신의 명의로 조성되었다. 9세기 후반을 즈음해서는 금당암의 3층 석탑도 조성되었으며, 이 시기에 동화사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화사는 신라 말기 고려와 후백제가 충돌한 현장으로, 견훤이 신라를 공격했을 때 신라의 구원 요청을 받은 왕건이 거느리고 온 1만 명의 군사가 이곳 동수, 동화사에 주둔하며 후백제와 전투를 벌였으나 패하였다고 한다. 이후 경순왕 1년(928년) 영조선사(靈照禪師)에 의해 부속 암자인 염불암이 지어지고, 같은 왕 7년(934년)에 동화사의 중창이 이루어졌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 동화사는 정종(靖宗) 2년(1036년), 왕명에 따라 개경(開京)의 영통사(靈通寺)와 숭법사, 대구의 부인사(符仁寺)와 함께 출가자의 불교 경율(經律)을 시험하는 사찰로 지정되었다. 명종(明宗) 20년(1190)에는 조계종의 개조(開祖)가 되는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창하였는데, 신종(神宗) 5년(1202년)에 경주의 별초군이 난을 일으켰을 때 난에 가담하기도 하였다. 충렬왕(忠烈王) 24년(1298년) 앞서 동화사를 하안소(下安所)로 삼았던 홍진국사(弘眞國師)의 유지에 의해 중창되었는데, 그가 입적한 뒤에 부도도 동화사에 세워졌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선조 39년(1606년), 임진왜란 당시의 승병장이었던 유정(惟政)이 다시 중창하는데, 이때 동화사는 전국의 승병을 지휘하는 총본부로서의 역할도 갖게 되었다. 숙종(肅宗) 3년(1677년)에 상숭대사(尙崇大師), 영조 8년(1732년) 관허(冠虛)와 운구(雲丘), 낙빈(洛濱), 청월(晴月) 등에 의해 중창 중건되었는데, 현재 동화사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태각, 영산전, 봉서루, 심검당 등의 당우들은 영조 때 중창된 것이다.

1911년 동화사에 아미산 포교당이 창건되었다. 일제 시대 31본산의 하나였던 동화사는 1919년 3.1 운동 당시 중앙학림의 지시에 따라 대구로 온 윤학조가 3월 23일 동화사 지방학림(지금의 동화사 승가대학) 학생이던 후배 권청학 · 김문옥 등을 만나 불교계의 만세운동 참여 소식을 알리고,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결의한 이들은 3월 30일, 대구 덕산정시장(남문 밖 시장)의 장날을 맞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투옥된다(3.30 대구만세운동). 당시 동화사 주지는 김남파(金南坡)로 1917년 조선총독부에 비슬산 대견사를 없애자고 청원하는 등 친일에 앞장선 인물이었다.

1992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 낙성을 전후해 동화사의 많은 당우들이 새롭게 지어졌다.

주요 당우편집

봉서루(鳳棲樓)
동화사가 자리한 곳은 풍수지리에서 '봉황이 알을 품은 지세(鳳巢抱卵)'라 불리는 형세로 여겨졌다. 봉서루는 동화사의 누문(樓門)으로 '봉황이 깃든 누각'이란 뜻이다. 네모난 돌기둥을 세워 누문을 만들고, 그 위에 정면 5칸의 목조 누각을 세운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세워졌으며,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영남도총섭(嶺南都摠攝)으로서 동화사에서 승병(치병)을 지휘했던 연고에 따라 봉서루 안에는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牙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 중간에는 널찍한 자연석이 하나 놓여 있어 흔히 이 부분을 '봉황의 꼬리'라 부르며, 누각 오른쪽 귀퉁이에 있는 세 개의 둥근 돌은 '봉황의 알'을 상징하는 것이다.
대웅전(大雄殿)
세조(世祖) 10년(1465년)에 수리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존하는 대웅전 건물은 선조 39년(1606년)에 학인에 의해 세워진 것을 숙종 3년(1677년)에 한 번 수리하였고, 최종적으로 조선 영조 3년(1727년)에서 영조 8년(1732년) 사이에 수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헌종 4년(1838년)에 다시 수리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축대 아래 양쪽에는 한 쌍의 괘불대와 노주가 있고, 법당으로 오르는 층계는 정면에 반원형으로 쌓아 올렸다. 대웅전 내부 불단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좌측에 아미타불, 우측에 약사여래불을 모셨다. 또 천장에는 세 마리의 용과 여섯 마리의 봉황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영산전
영산전은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고도 한다. 대웅전 동편 뒤 담장으로 둘러싸인 별채에 위치해 있으며, 내부에는 불경의 영산회상의 모습을 재현하여 석조 석가삼존불을 중심으로 십육나한상이 좌우로 열좌해 있다. 현판 글씨는 서예가 해사 김성근의 글씨이다. 맞배지붕에 겹처마 형식의 건축 양식을 갖춘 현재의 영산전은 현종 10년(1669년)에 학찬(學贊)이 세웠던 것을 1920년 중건하였다. 오른쪽 요사는 조실채로 사용하고 있다.
심검당(尋劒堂)
심검당이라는 이름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참선이나 불경 강설용으로 쓰이는 건물에 주로 붙이는 이름이다. 동화사 심검당은 조선 선조 38년(1605년)에 천령(天靈)에 의해 지어졌다. 1919년 3.30 대구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영남 지방학림의 승려 아홉 명이 당시 만세운동 계획을 결의하고 수립했던 장소이다. 현재의 건물은 1978년에 중건된 것으로, 동화사 승려들의 생활 주거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조사전
동화사를 거쳐간 역대 고승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 대웅전 뒤편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18세기 건물이다. 동화사를 처음 세웠다는 극달 화상과 중창조 보조국사, 사명대사, 세장, 두여, 의첨, 지화, 총륜,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석우 스님 등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동화사 금당선원. 《삼국유사》에 나오는 동화사 첨당 우물이 위치한 자리로 알려져 있다.
금당선원
동화사의 동쪽 별당이다. 《삼국유사》에 진표로부터 영심을 거쳐 심지에게 전해진 간자를 봉안할 곳을 찾아 팔공산에 와서 던졌을 때 간자가 떨어진 우물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석우, 효봉 대종사를 비롯, 성철 등 해방 이후로 불교 정화의 주체가 된 많은 승려들이 이곳에서 결사를 세웠다. 1974년 5월 증개축 불사로 정비되었으며, 사찰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삼층 석탑 2기(보물 제248호)가 극락전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지정 문화재편집

동화사에 소재한 대한민국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목록은 다음과 같다.

번호 사진 명칭 시대 지정일 참조
243호   대구 동화사 마애여래좌상
(大邱 桐華寺 磨崖如來坐像)
신라 1963년 1월 21일 지정 [1]
244호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大邱 桐華寺 毘盧庵 石造毘盧遮那佛坐像)
신라 1963년 1월 21일 지정 [2]
247호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大邱 桐華寺 毘盧庵 三層石塔)
신라 1963년 1월 21일 지정 [3]
248호   대구 동화사 금당암 동·서 삼층석탑
(大邱 桐華寺 金堂庵 東·西 三層石塔)
신라 1963년 1월 21일 지정 [4]
254호   대구 동화사 당간지주
(大邱 桐華寺 幢竿支柱)
신라 1963년 1월 21일 지정 [5]
601호   대구 도학동 승탑
(大邱 道鶴洞 僧塔)
미상 1975년 8월 4일 지정 [6]
1505호 대구 동화사 사명당 유정 진영
(大邱 桐華寺 泗溟堂 惟政 眞影)
조선 2006년 12월 29일 지정 [7]
1563호   대구 동화사 대웅전
(大邱 桐華寺 大雄殿)
조선 2008년 4월 28일 지정 [8]
1607호 대구 동화사 목조약사여래좌상 복장전적
(大邱 桐華寺 木造藥師如來坐像 腹藏典籍)
조선 2009년 2월 23일 지정 [9]
1610호 대구 동화사 아미타회상도
(大邱 桐華寺 阿彌陀會上圖)
조선 2009년 2월 23일 지정 [10]
1639호   대구 동화사 보조국사지눌진영
(大邱 桐華寺 普照國師知訥眞影)
조선 2010년 2월 24일 지정 [11]
1772호 대구 동화사 삼장보살도
(大邱 桐華寺 三藏菩薩圖)
조선 2012년 8월 24일 지정 [12]
1773호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
(大邱 桐華寺 地藏十王圖)
조선 2012년 8월 24일 지정 [13]

동화사 승시 축제편집

동화사가 위치한 팔공산 일대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산지에 위치한 사찰끼리 서로 필요한 물품을 물물교환의 형식으로 거래하던, 이른바 승시(僧市)라고 하는 승려들의 시장이 열리던 곳이었다. 동화사는 이 승시를 재현한 '팔공산 승시축제'를 2010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승시라는 독특한 전통의 계승 및 불교문화의 대중화를 목표로 승시와 관련된 학술 세미나와 승시에서의 물물교환 재현 및 승려들이 제작한 불교용품 자선바자회를 비롯하여, 사찰 음식 시연 및 영산재, 극달화상 영정이운식, 승무 시연, 판각 및 탁본체험, 단청 및 불화(탱화)그리기, 염주, 목탁, 컵등 만들기 등의 체험행사와 외국의 불교문화 소개 등의 행사와 더불어, 전통문양 활용 패션 경연대회, 찬불가 경연, 요일별 풍물공연과 줄타기, 널뛰기, 청소년 댄스공연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3년부터는 승려들간의 씨름 경기인 ‘동화사 주지스님배 씨름대회’도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개최되었다.

체험 및 시설편집

템플스테이편집

동화사에서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1]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