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자동차공업
아시아자동차공업(亞細亞自動車工業[1][2], Asia Motors Co.)은 1962년 5월 3일 박정희 전 대한민국 대통령이 국가 재건 방안의 하나로 국내 자동차 공업을 육성한다는 취지 하에 제정, 공포한 자동차 공업 보호 육성법에 기인하여 1964년 12월 21일 이탈리아 피아트, 프랑스 SIMCA 그리고 SIAVE 은행과 차관 협정을 체결, 이듬해 1965년 7월 2일 전라남도 광주에 호남 연고 기업인인 이문환(李文煥)에 의하여 자본금 8억 2천 8백만 원으로 설립되었다. 1969년 경영이 악화되어 동국제강에 매각되었고, 1976년 기아산업에 다시 매각되었다.
형태 | 주식회사, 대기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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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 1965년 7월 2일 |
산업 분야 | 승용차 및 기타 여객용 자동차 제조업 |
해체 | 1999년 6월 30일 |
본사 소재지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6길 3 (여의도동) |
모기업 | 기아 |
생산라인은 내방동(RV, 1톤 트럭)과 안청동(버스, 특수차량)에 있었으며, 합병 후 기아자동차의 생산라인으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첫 모델인 세단 피아트 124를 선보인 것은 현대자동차가 포드 20M 모델을 선보인 것보다 1년 뒤인 1970년 3월이지만, 설립 연도로 보면 아시아자동차가 설립된 것은 1965년 7월이므로, 대한민국의 자동차 공업을 이끈 선두 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의 첫 제품인 피아트 124는 그 내구성이나 경제성, 그리고 당시 중상류층이 선호하던 보수적인 외형으로 단번에 신진의 코로나, 현대자동차의 코티나와 더불어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의 강력한 3각 경쟁 주도를 이루었지만 불과 3년 만에 생산 중단되었다.
1980년 2차 오일 쇼크 이후 1981년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로 승용차 생산은 현대자동차와 새한자동차(현 한국GM)가, 중·소형 트럭 생산은 기아자동차가 독점하게 되었으며, 이는 1986년까지 지속되었다. 1986년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 해제 이후에 기아자동차도 승용차를 개발하지만, 이는 기아자동차의 브랜드로 판매되었고, 아시아자동차는 군수용 차량과 대형 버스, 트럭을 계속 생산하여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였다. 아시아자동차가 기아자동차와 합병된 이후에도 광주 공장에서 군수용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1997년 기아그룹의 자금난으로 부도 유예 협약 대상 업체로 선정되어 법정 관리를 받아 오다가 1998년 국제 입찰에서 기아자동차와 아시아자동차를 분리 매각하거나 통합 매각하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결국 두 회사 모두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었다. 이후 기아자동차와 통합하여 아시아자동차는 자동차 업계에서 사라지게 되며, 타우너, 콤비, 코스모스, AM버스 등은 기아자동차의 브랜드로 변경되어 계보를 이어 오다가 모두 5년만에 단종되었고, 대형 트럭인 그랜토는 기아자동차와 합병한 이후 고작 3년 만에 생산 중단되었다. 아시아자동차에서 생산하였던 차종들 중 현재까지 생산 중인 모델은 1994년에 출시하여 장수 중인 대형버스 그랜버드가 유일하다.
아시아자동차 자체 브랜드 차량
편집아시아자동차 위탁 생산차량
편집기아자동차로 브랜드가 승계된 차량
편집역사
편집- 1965년 7월 2일: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 분리 설립 초대 사장은 이문환
- 1969년 9월: 경영이 부실화되어 동국제강그룹에 인수 및 자회사 편입
- 1976년 8월: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의 모회사인 기아그룹에 인수 및 자회사 편입과 동시에 기아산업의 방계회사가 됨
- 1986년 11월: 당시 방계회사인 기아산업과 모 회사인 기아그룹의 새 CI가 출범되어 ㄱ자와 ㅇ자가 겹쳐진 것에서 kia(상단에는 물결표시 됨)로 변경과 동시에 아시아자동차의 CI는 ㅇ자와 그 중간에 직사다리꼴 그림이 겹쳐져있는 것에서 Asia(상단에는 물결표시 됨)로 변경되었다.
- 1988년 10월 20일: 주식 상장
- 1994년: 당시 방계회사인 기아자동차와 모 회사인 기아그룹의 새 CI가 출범되어 kia(상단에는 물결표시 됨)에서 금색 테두리를 두른 빨간바탕의 타원 속 KIA로 변경과 동시에 아시아자동차의 CI는 Asia(상단에는 물결표시 됨)에서 금색 테두리를 두른 빨간바탕의 타원 속 ASIA로 바뀌었다.
- 1997년 2월 15일: 타원 속 KIA 로고로 통일
- 1997년 7월 15일: 부도유예 협약대상 업체 선정
- 1998년 4월: 법정관리
- 1998년 10월: 기아 및 아시아자동차, 국제 입찰에서 현대그룹에 낙찰
- 1999년 6월 30일: 기아자동차에 흡수 합병됐으며 그 탓인지 기아자동차가 당시 인수된 그룹인 현대그룹에 속했던 현대자동차가 모기업인 전북 현대 다이노스가 이 날(VS 안양LG)[11], 7월 7일(VS 천안일화)[12], 8월 21일 (VS 울산현대), 8월 25일 (VS 천안일화) 프로축구 경기[13]를 아시아자동차 공장이 있었던 광주에 위치를 둔 무등경기장에서 홈경기를 치름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신진과 아세아의 자동차 생산”. 2020년 2월 18일에 확인함.
-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020년 2월 18일에 확인함.
- ↑ 밴형 차량에서만 적용했다.
- ↑ 1톤, 2000년 이후 세레스 단독 이후 4륜 차량이었다.
- ↑ 1.25톤 ~ 1.4톤 ~ 2톤 ~ 2.5톤
- ↑ 1톤, 4륜 세레스 단족 이후 추가차량, 프런티어는 1.2톤 ~ 1.4톤 , 2톤 ~ 2.5톤 까지 추가생산했다.
- ↑ 2.5톤 ~ 3.5톤
- ↑ 4톤 한정
- ↑ 4.5톤 ~ 5톤
- ↑ 코치 - 9인승 ~ 12인승, 밴 - 3 ~ 6인승, 이후 2000년 기아자동차로 흡수통합 후 그랜드는 코치 - 12 ~ 15인승, 밴 , 3인승밴 ~ 6인승밴, 그랜드 구급차로 생산되었다.
- ↑ “BUY KOREA컵 K-리그 부천 번개 2골 5연승”. 한겨레신문. 1999년 7월 1일. 2019년 4월 6일에 확인함.
- ↑ 배극인 김호성 (1999년 7월 8일). “수원'골 폭죽'선두로”. 동아일보. 2019년 4월 6일에 확인함.
- ↑ 권오상 (1999년 8월 26일). “BUY KOREA 컵 K-리그 수원 토종축구 매운맛 과시”. 한겨레신문. 2019년 4월 6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