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구

안재구(安在求 1933년 10월 24일 ~ 2020년 7월 8일[1] 는 대한민국의 수학자이자 통일운동가이다.

안재구
출생1933년 10월 24일(1933-10-24)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사망2020년 7월 8일(2020-07-08) (86세)
성별남성
학력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과
경력수학자, 통일운동가
직업대학교수
배우자장수향
병역교보병으로 20사단 전방 근무

생애편집

아버지 안의환, 어머니 김태숙의 장남으로 1933년 10월 24일 달성군 구지면 외갓집에서 출생하였다. 고향 밀양에서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 우정(于正) 안병희(安秉禧) 선생 슬하에서 성장하였다.[2]

1947년 5월 밀양중학교 1학년 때 노동절 집회 참가로 퇴학. 이에 항거하다가 구속되었으나, 곧 석방되었다. 1948년 남한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참가하고[3], 남로당 밀양군당 농민위원회 연락책으로 활동하기도 했다.[2]

1952년 경북대 수학과에 입학하여 학사,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1970년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56년부터 모교에서 강사와 교수로 강의하였다.[2] 미분기하학과 응용해석학 분야에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일부는 미국 수학 학술지에 실릴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은사 박정기 전 경북대 총장의 뒤를 이어 <경북수학저널>을 펴내기도 했다.[1]

1964년 한일굴욕외교 반대투쟁 때 친구 이재문 등과 청년학생운동을 지원하였다. 1969년 친구 이재문, 제자 여정남 등과 3선개헌 반대 투쟁을 지원하였다.[2]

1975년 4월 경북대 제자인 여정남이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법살인을 당한 것을 계기로 1976년 2월 무장혁명을 목표로 한 지하조직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결성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1979년 10월에 체포돼 이듬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해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 참석한 수학자 수백명이 연대 서명서를 한국 정부에 보낸 덕분에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88년 가석방됐다.[4]

1994년 6월 '김일성 주석 조문 파동'에 이은 공안정국 때 이른바 '구국전위 사건'으로 경북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차남 안영민과 또다시 구속돼 '부자 양심수'로 기록되기도 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1999년 8·15 특사로 풀려났다.[4]

2013년 통일연대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등의 동향을 수집해 대북보고문을 정리했다는 등의 혐의로 기소당해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의 유죄 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됐던 아들 영민 씨는 “아버지가 북한에 남쪽 단체 동향을 보고할 이유가 없었다”며 무리한 수사였다고 비판했다.[4]

2020년 7월 8일 별세하였다.

약력편집

  • 1933년 10월 24일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에서 남
  • 1946년 8월 밀성국민학교 졸업
  • 1946년 9월 밀양중학교 입학
  • 1947년 5월 노동절 집회 참가로 퇴학, 이에 항거하다가 구속, 곧 석방
  • 1948년 2월 남한 단독선거 반대 투쟁, 남로당 연락책 등으로 활동
  • 1951년 9월 대구시 영남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2학년 수료 학력을 인정받아 3학년에 입학
  • 1952년 3월 영남고등학교를 졸업.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과 입학
  • 1956년 경북대 사범대를 졸업. 경북대학교 대학원 수학과 석사과정 입학. 경북대 수학과 강사. 영남고등학교 교사. 1961년 2월까지 근무
  • 1958년 3월 경북대학교 대학원 수학과 석사과정 졸업
  • 1959년 10월 21일 ~ 1960년 10월 21일 교보병(교사병역특례로 1년 복무)으로 20사단 전방 근무
  • 1956년 이후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수학과에서 강사,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역임
  • 1976년 2월 20년간 재직해 온 경북대 교수직에서 '국가관 미확립'과 '학생운동' 지원 이유로 재임용 탈락
  • 1979년 10월 ~ 1988년 12월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으로 옥고
  • 1994년 6월 ~ 1999년 8월 구국전위 사건으로 재구속 무기징역 선고받고 복역하다 형집행정지로 석방됨
  • 2013년 재야 동향을 수집해 대북보고문을 정리했다는 등의 혐의로 기소당해 2017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의 유죄 선고를 받았다
  • 2020년 7월 8일 별세

가족편집

  • 아버지 안의환(安義煥)
  • 어머니 김태숙(金兌淑)
  • 부인 장수향 ( ~ 2009년):민가협 공동의장 역임
  • 딸 안소영 (1967 -):서강대학교 철학과 졸업. 역사저술가. 《책만 보는 바보》,《다산의 아버님께》,《갑신년의 세 친구》의 저자.
  • 아들 안영민 (1969 -):민족21 기자
  • 손주 안인산:NC다이노스 선수

저술편집

  •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 (광야, 1989)
  • "철학의 세계 과학의 세계" (죽산, 1990)
  • "수학문화사" (일월서각, 1990)
  • "할배, 왜놈소는 조선소랑 우는 것도 다른강" (돌베개, 1996)
  • "아버지 당신은 산입니다" (아름다운사람들, 2003)

출처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