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 원정 (1519년)
제2차 알제 원정은 1519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의 명으로 우고 데 몽카다 지휘가 지휘하는 스페인-이탈리아 원정 연합군이 오스만령 알제리 수도 알제의 공격에 나선 사건이다.[4] 1516년 제1차 알제 원정에 이어 이번 원정도 합스부르크 측의 대패로 끝났다.[5]
제2차 알제 원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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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시칠리아 왕국 | 알제 술탄국 | ||||||
지휘관 | |||||||
우고 데 몽카다 | 바르바로스 하이레딘 | ||||||
병력 | |||||||
전함 58척[2] 병사 23,000명[2] | 소수 | ||||||
피해 규모 | |||||||
전함 20척 침몰[2] 4,000명 전사[2] 3,036명 생포[3] | 극소수 |
전개
편집카를 5세는 시칠리아 총독 우고 데 몽카다에게 알제 정복을 위한 원정대를 조직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1519년 8월에 알제 공격을 개시하였다. 3년 전 스페인의 1차 공격은 기상악화로 인한 스페인 함대의 큰 피해와 더불어 바르바로스 하이레딘의 형제인 오루츠 레이스가 지휘하는 현지 저항군에 의해 크게 패했었다.
이번에도 바르바로스 하이레딘은 군대를 이끌고 원정군을 무찌를 준비에 나섰다.[6] 그리고 실제로도 스페인-이탈리아의 함선들을 성공적으로 격파하여 수많은 함선들을 난파시키고 원정군의 학살을 초래하였다.[7] 원정군을 몸소 지휘하던 우고 데 몽카다는 해변가의 시체 사이에 숨어 알제리군의 눈을 피한 뒤 탈출에 성공하였으나,[7] 나머지 목숨을 부지한 스페인 군인 3,036명은 포로 신세로 잡혔다.[3]
카를 5세는 포로로 잡힌 장교들에게 몸값을 제시하며 교섭을 시도하였으나 바르바로스는 그들을 전원 처형하는 명령을 내렸다.[7] 이후 카를 5세는 시신 반환을 위해 웃돈을 얹어 제시하였지만 바르바로스는 그 시신들을 바다에 던져 버리는 조치를 취하면서, "죽은 자의 친척이 알제에 오면 아버지나 형제의 매장지를 알지 못하게 하라. 재도 볼 수 없고 파도만 보이게 하라”라는 말을 남겼다.[7]
같이 보기
편집출처
편집- ↑ A History of the Maghrib in the Islamic Period Jamil M. Abun-Nasr, Cambridge University Press,
- ↑ 가 나 다 라 Clodfelter 2017, 25쪽.
- ↑ 가 나 The City in the Islamic World (2 vols.) Salma Khadra Jayyusi, Renata Holod, Antillio Petruccioli, André Raymond BRILL
- ↑ Istanbul, Rome and Jerusalem: Titans of the Holy Cities Simon Sebag Montefiore Hachette UK
- ↑ Algérie et Tunisie Gilbert Jacqueton Hachette,
- ↑ Lords of the Sea: A History of the Barbary Corsairs Alan G. Jamieson Reaktion Books
- ↑ 가 나 다 라 Empires of the Sea: The Final Battle for the Mediterranean, 1521-1580 Roger Crowley Faber & Faber,
출처
편집- Clodfelter, Micheal (2017년 4월 24일). 《Warfare and Armed Conflicts: A Statistical Encyclopedia of Casualty and Other Figures, 1492-2015》 (영어). McFarland. ISBN 978-1-4766-25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