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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岩寺洞)은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위치한 법정동으로 8호선의 종점인 암사역이 있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제1동
岩寺第1洞 Amsa 1(il)-dong
암사제1동주민센터
암사제1동주민센터
Gangdong.png
면적 1.01 km2
인구 39,384명 (2012.12.31.)
인구밀도 38,994 명/km2
세대 15,869가구 (2012.12.31.)
법정동 암사동
39
370
동주민센터 서울특별시 강동구 올림픽로98가길 57
홈페이지 암사1동 주민센터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제2동
岩寺第2洞 Amsa 2(i)-dong
암사제2동주민센터
암사제2동주민센터
면적 1.18 km2
인구 16,530명 (2012.12.31.)
인구밀도 14,008 명/km2
세대 6,293가구 (2012.12.31.)
법정동 암사동
19
165
동주민센터 서울특별시 강동구 상암로3길 28
홈페이지 강동구 암사2동 주민센터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제3동
岩寺第3洞 Amsa 3(sam)-dong
암사제3동주민센터
암사제3동주민센터
면적 2.51 km2
인구 19,083명 (2012.12.31.)
인구밀도 7,603 명/km2
세대 6,178가구 (2012.12.31.)
법정동 암사동
20
213
동주민센터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로 137
홈페이지 강동구 암사3동 주민센터

목차

개요와 역사편집

암사동이라는 이름은 삼국시대의 9개의 사찰(절터)이 위치해 있어서 구암사(九岩寺), 속칭 바위절이라 하던 것이 암사동으로 변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삼국시대 초창기 백제 불교의 효시인 백중사가 위치했던 자리라 추정한다. 이후 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7개의 사찰이 더 증축이 되었다고 전하였다.

조선시대 구암사리로 불리다가 1914년 주소 사업으로 볕우물, 불현마을, 점마을, 새장터 등을 합하여 암사리, 지금의 암사동으로 개명되었다. [1]

동쪽으로는 천호1동˙명일동과 인접하고, 서쪽은 한강을 건너 광진구, 남쪽은 구 암사시장이 자리한 천호2동, 북쪽은 구리암사대교를 건너 구리시가 있다.

마을편집

  • 참앞 - 고려,조선시대 나루터앞길이나 마을앞길을 참(站) 앞이라고 불리었는데. 너른나루에서 배를 기다리던 장소이다. 아랫나루터길가라는 뜻으로 하진참(下津站)이라고도 불리었다.

지금의 신암초등학교 방향이다.

  • 여문골 - 조선 성종때 직제학을 지낸 정선근이 암사동 고덕산일대 부모묘소 밑에다 노막을 짓고 3년간 시묘하다가 성종이 서거하다 3년을 또 보내어 여묘골(6년 시묘-여문골) 이라는 말이 지어지게되었다.

그는 이후 정사에 나가 연산군에게 직언하고 조언을 많이하였는데 정직한 그를 보고 아부하던 신하들에게 미움을 사 모함을 받고 죽게되었으니

그가 죽고 또 다시 3년상을 입었게된가 그를 시묘를 하던 그의 아들도 3년상을 치르다 마찬가지로 죽게된다.

이후 인조반정이후 인조는 그의 손자에게 대대로 집안에 자랑인 정문을 내리는데 보기 드물게 한집에서 왕에게 6정문을 받았고 , 시묘살이를 6년씩 2번하였다 하여 여문골 또는 여묘골, 우뭇골이라고도 한다. 위치는 지금의 암사취수정수장이다.

  • 점말 - 도자기를 만드는 점(店)이 있었는데 백제시대 때부터 궁궐에 쓰일 그릇을 구워냈던 곳으로 오래전 광주분원과 함께 도자기 생산으로 유명했던곳이다. 지금의 서원마을이다.
  • 섭말 : 새능말과 안마을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협소한 지형이 마치 불꽃 모양이다. 옛 길이 지나고 있다. 섭말은 주변이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어 인근 마을 보다 따뜻하다. 그래서 한자로 따뜻할 섭(㸎)을 쓰고 섬말로 발음한 것이다. 옛날에 마을 앞 논에 섬을 팠다는 말은 와전이며 섭말을 한자로 도촌(島村)이라하였는데 실제 이쪽은 비가 많이 오면 섬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섬말, 이라 전한다

지금의 암사동 피자헛 안쪽 마을로 추정


  • 새능말 - 일명 능말 , 일반적으로 능이라는 단어는 왕의 묘를 지칭하는 한자인데 조선 인조때 임숙영(임진왜란때의 공신)의 충절이 커 묘를 크게 만들어썼다 해서 새능말이라 한다. 지금은 이장되었다.

임숙영은 암사동일대에서 살았다 전한다. 지금의 도시공간건물 앞이다.


  • 갯말 - 민물 개펄 (한강) 모퉁이에 있는 마을이므로 갯모루 또는 갯물이라 함

지금의 암사3동 롯데캐슬방향으로 추정

  • 서원말 - 이후 조선시대의 유교가 들어서고 절터 옆으로 서원이 들어섰으며 그 산아래 기와집들이 자리잡게되었으므로 이곳을 서원말이라 한다. 지금의 점마을 윗쪽이다. (현재는 같음)


  • 양지말 - 볕이 잘드는 한밭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하여 양지말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점마을 아래에 있는 양지마을이다

  • 복지말 - 본디 이 자리는 일본인들이 복숭아나무와 매화나무, 과수와 조림지역이었다한다.

그러나 홍수이후 1957년에 북한에서 내려온 월남 피난민을 위하여 새로 농장을 만들고 복을 받은 마을이란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현재의 암사도서관 윗쪽이다.

  • 볕우물마을 - 양지마을과 점말 사이에 있던 우물로서 백제인들이 축조했던 우물이라 구전해서 내려온다 먼 과거 암사동 토성을 짓을때 마을과 함께 우물이 생겨났다고 전한다.

물맛이 맑고 특이했다 한다.

볕우물 마을에는 만석꾼(부농을 일컫는다.) 김종택이 살았는데 집이 99칸이나 되는 거부였다한다. (1920년 조선지도에는 그의 집의 규모가 보임) 1950년 그와 그의 자손들은 그 가세를 믿고 전쟁이 나도 떠나가지않았는데 결국 김일성에게 납북되어 그의 종적은 묘연히 사라졌다. 아마 인민재판으로 끌려갔을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대명아파트자리이다.

  • 부처고개 - 암사동에 있는 고개로 돌부처가 있어 부처고개 또는 불현(佛峴)이라 했다.

돌부처상는 일인들에 도굴당해 사라졌다한다. 지금의 명일동 순복음교회 옆지역으로 추정

  • 토막나루 - 구리시 토평리로 건너가는 나루로 나무토막으로 배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고 해서 붙은 명칭. 지금의 구리암사대교 남단으로 추정한다.
  • 도당재 - 지금의 신암중학교 앞 언덕을 일컫는다 복지마을이 대거 생기기전 농번기때 기도하는 신당과 여러 암자가 많이 있었던 언덕이라고 전한다.

지금의 신암중학교 건너편이었다 한다.

  • 구암사지(九岩寺址) - 일명 암회사, 신라시대에 절이 9개나 있어, 구암사라 하였고 속칭 바위절이라 하였으며 그 한자명으로 암사리라 한데서 연유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옛지명이 있다. 지금의 암사동과 고덕산끝에 있는 바위절터라고 남아 전한다.

행정 구역편집

법정동 행정동
암사동 암사제1동
암사제2동
암사제3동

주요 시설편집

교통편집

올림픽대로가 인접해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암사대교가 개통되어 있으며, 지하철 8호선이 암사역에서 구리를 거쳐 진접신도시 까지 연장 개통이 계획 중이다.

문헌편집

구암사 중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온 백중사(伯仲寺)가 암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하였으며, 서거정이 읊은 「백중사」[2] 시가 전한다.

백중사라는 절의 위치에 대해서는 조선시대 집필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 6권 광주군 부분에서 백중사 라는절은 하진참(下津站) 동쪽에 있다라고 전하였다.

고려말에서 조선초기때까지 이 절은 위치하였으나 중종때 승과를 없앴고, 이후

임란을 맞이한뒤 유림들이 번창했던 1700년대 즈음 사라진것으로 추정이 된다.

아래의 시는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암사리 (지금의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 고지봉옆

한강 연안에 있던 일명 암사(岩寺), 또는 암회사(岩回寺) - 백중사(伯仲寺)를 소재로 한 서거정의 사찰과 풍류의시이다.

            伯仲寺 백중사에서

招提架蒼獻 (초제가창헌)

何日側金開 (하일측금개)

落葉無人掃 (낙엽무인소)

空堂有客來 (공당유객래)

山形臨水斷 (산형임수단)

水勢觸山廻 (수세촉산회)

坐共高僧話 (좌공고승화)

胸襟自不埃 (흉금자불애)

      <사가정  : 사가시집 - 보유 . 3>

[3]

사찰이 푸른 벼랑에 걸렸는데,

언제쯤 금을 펼쳐 저리 지었나.

낙엽이야 쓰는 사람 없을망정

절집에 찾아오는 길손 있구나.

산세는 못물에 이르러 끊겼고

물굽인 산에 부딪쳐 굽도누나.

앉아서 고승과 함께 대화하니

마음은 제냥 세속 티끌 사라져.

벼랑(蒼獻)에 매달린 듯한 사찰(招提), ‘금개’는 ‘부처님을 연화대에 모셨는가’란 뜻이니, 기련 1.2구는 예사롭지 않은 사찰의 전경으로 시상을 열었다. 대구인 3.4구는 ‘없고 : 있음’으로, 대를 맞춰 고즈넉한 산사의 정밀경, 이른바 세속과의 차별성을 전제로 법계의 위상을 설정했다.

5.6구 역시 ‘산 : 물’의 형상으로 대를 맞추되 ‘산 다한 곳, 그러니 산자락 다하자 물이 모인 못이요, 모인 물은 산자락 굽이굽이 굽돌아 흐른다는 백중사의 실경 묘사로 7.8구의 주제를 유도했다.

곧 불자와 유가와의 선문답이 아니라, 유불불이(儒佛不二)의 법문, 혹은 청정법문이었대도 좋다. 워낙 도란 상대에 대한 인정이요, 시문의 예도 역시 다름 아니다.

각주편집

  1. “암사동 유래”. 2014년 7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1년 9월 14일에 확인함. 
  2. 서거정의 시집 - 사가시집 중 시 (詩) - 백중사(伯仲寺)
  3. 서거정 : 사가시집 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