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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동(千戶洞)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위치한 행정동이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제1동
千戶第1洞 Cheonho 1(il)-dong
Cheonho 1(il)-dong Comunity Service Center 20140621 171504.jpg
천호제1동주민센터
Gangdong.png
면적0.71 km2
인구 (2012.12.31.)32,013 명
• 인구 밀도45,000 명/km2
• 세대13,046가구
법정동천호동
• 통·리·반36통 320반
동주민센터서울특별시 강동구 구천면로42길 59
웹사이트천호1동 주민센터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제2동
千戶第2洞 Cheonho 2(i)-dong
Cheonho 2(i)-dong Comunity Service Center 20140621 173414.jpg
천호제2동주민센터
면적1.57 km2
인구 (2012.12.31.)38,480 명
• 인구 밀도24,500 명/km2
• 세대17,097가구
법정동천호동
• 통·리·반43통 408반
동주민센터서울특별시 강동구 올림픽로 698
웹사이트강동구 천호2동 주민센터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제3동
千戶第3洞 Cheonho 3(sam)-dong
Cheonho 3(sam)-dong Comunity Service Center 20140621 174453.jpg
천호제3동주민센터
면적0.79 km2
인구 (2012.12.31.)26,970 명
• 인구 밀도34,000 명/km2
• 세대12,387가구
법정동천호동
• 통·리·반30통 283반
동주민센터서울특별시 강동구 진황도로23길 7
웹사이트강동구 천호3동 주민센터

개요와 역사편집

천호동의 개요

2017년 현재 강동구 제일의 번화, 주거지로서 발전한 동으로써 굽은다리가 있는 곡교리로 불리었다가 후에 오랜 마을이 많았던 동네라 불리게 되면서 즈믄개의 문짝집이라는 뜻의 천호(千戶) 라 불리게 되었다. (지명에 관하여서는 한간의 설이 많으므로 아래를 참조)

삼국 - 백제시대때 - 고구려와 말갈의 침략과

한강 북쪽을 지키는 방어선으로써, 한강의 범람으로 부터 안전한 로서 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고려 ~ 조선시대 광주군 구천면의 한 나루터 마을로서 발전하게되며 당말, 차재말, 은호말, 굽은다리 마을이 언덕과 구릉위에 형성 되어 한양과 수운이 오가는 나루터와 말을 갈아탈수있는 역참이 발달, 일대 농작물 생산이 용이하여 도읍과 가까운 마을로 발전되었다. (조선시대 한양의 5개 나루터 - 송파진,양화진,광진,마포진,노량진)

1902년 대한제국이 우정국 주소사업으로 당말, 벽동말 , 차재말 , 별북망대 등 마을을 광주군 구천면 곡교리(曲橋里)로 병합하였다.

1936년 일제가 한강근처, 양진나루(지금의 광장동)와 광진나루(지금의 천호동)를 잇는 다리를 건설함으로써,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다음 "광진교"라 명명했다. 이 근처의 동네인 천호동은 더욱 발전하기에 이른다.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 성동구에 편입되면서 천호동으로 바뀌었고[1], 1975년 10월 1일 성동구에서 분리된 강남구에 편입되었으며[2], 1979년 10월 1일 강남구에서 분리된 강동구에 편입되었다.[3]

1970년대 행정동은 천호1동, 천호2동 , 천호3동 , 천호4동으로 분할 관리하였으나 이후 2005년이후 천호 4동을 2동과 3동으로 분할함으로써 현재까지 3개의 행정동으로 분할되어있으며, 2000년 이로서 현재 강동구 지역에서 제일 인구가 많고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한 지역으로 발전한다.

지명 유래편집

천호동(千戶洞)의 이름이 얻어지기까지 천호동의 위치 , 역사적 지리로써는 삼국시대때 백제의 초기도읍지로 추정되는 풍납토성 동북방향의 지역으로서 풍납토성 동북쪽~ 고덕산 사이에 이르는 지역이 바로 지금의 천호동 지역이다. 과거 해발40~70에 중턱 산들이 위치해 백제 초기도읍 북쪽지역의 방어,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강의 범람으로부터 서민들을 지키는 지역마을으로써 쓰였던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조선시대 때에는 수운의 길목으로써 강원 충청의 좌로수참을 주관하는 요충지였고, 한양과 광주를 잇던 도진촌락(道津村落) 으로 자연 발생이되기 시작했다.

1. 고려, 조선시대 고유지명설 (故有地名-說)

일설로는 이 일대가 번화해 조선시대 만 가구를 다루고 관리하는 군대 계급: 만호(萬戶)가 있었듯이 그 만호 계급 아래 천가구를 관리하던 천호(千戶)정도의 가구가 사는 마을이어서 그리 불리게 되었다고도 전한다. 그러나 조선시대때 이미 구천면 곡교리(龜川面 曲橋里)라는 지명이 있었으므로 이 설은 믿기 어려우나 천호리(千戶里) 라는 이름이 구천-곡교(龜川-曲橋) 이라는 한자보다 쓰기 편해 그리 혼용되었다고 전한다.

2. 하칭설 (下稱-說)

일제강점기 때 1934년 8월에 광진교를 착공하게되는데 이는 한강에서 두 번째 교량이었고, 서울과 경기도 광주를 잇는 다리가 만들어진다. 1936년 10월에 압록강다리 다음으로 길고 멋진 철제 다리를 완공하게 되었는데 도시설계와 토지측량을 들어간 일제의 의해 도로설계가 실시됨으로써 우연하게도 이곳의 지명이 도쿄시 가토구 가메이(東京市 江東区 亀戶)와 한자명이 같은이유로 연상되는 구천(龜川)/곡교(曲橋)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천호(千戶)라 하칭(下稱)되었을거라 일컬어지던 추측설이 가장 유력한 설이다.

한간에서는 구천이라는 이름이 일본인 이름과 같아 바꾸게 한것은 아닌가 추측한다.

(일본 東京市 江東区 亀戶과 서울시 강동구 천호동 (江東區 千戶/廣州郡 龜川面) -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일원이 견주임) 가 있다.

구청에서는 광진교 준공식 때 주민대표로 뽑힌 고분다리(曲橋里)에 사는 최씨 노인이 준공식을 마치고 천호동 뒷산 북망지(北望地)에 올라가 광진교를 가득 메우고 건너오는 인파를 보고 “앞으로 이곳에 집이 천호(千戶)가 더 들어설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이 말이 천호동으로 개명하게된 사연이라고도 말하지만 이는 확실치 않다.

  • 연구 - 1960년대초 역사학자가 한간의 설에 천호(千戶)동의 토성이 있었던 일대를 백제 초기도읍지 풍납토성의 동북측 뱀성(사성)으로 보았고,“남부여 백제의 영향을 받은 일본 나라시대의 한 성 마을의 양식과 보초소동과 함께 사람이 사는 집이 함께있는 성마을 모습이 혼재되어있어 이를 본따 1000개의 문짝집, 천호”라 지었다는 설이 있다.

아이가 넘을 만한 작은 산이라고 일컬어지는 아재또는 강서아재 (서쪽강에 아차산)와 강동아재 (일자산과 작은 언덕들) 라는 말이 강동의 어원이 되었다. 이로써 경기도 광주 사람들은 서울가는 길의 작은 2아재를 지나쳐야한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바로 서아재와 동아재(지금의 천호동 북망지언덕 - 천호동 동아아파트 자리로 추정 - 고덕산(고지봉) - 일자산) 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암사동토성이 사라진 - 프라이어팰리스 아파트 -> 당말 -> 강동역 -> 천호역뒤 성내뒷길)

지금은 한강이 W 모양을 그리지만 오래전의 강동구 근처의 한강은 두갈래로 흘러 하나는 서쪽으로 하나는 남쪽인 석촌호수쪽에서 탄천까지 흘러들었으므로 강동과 강서의 구분이 명확했다.

각 마을이름과 개울편집

  • 고분다리(曲橋里) : 옛날에 구부러진 다리가 있던 마을이라 곡교리라고도 불린다. 여러 마을 한가운데 놓여져있어 가운뎃말이라고도 일컬어졌으며 이곳으로부터 시장이 번화했으며 조선시대부터 역참이 있고, 면치가 있던 작은 장터였다. (고분다리 시장~ 천호동시장길) 한자로 곡교리(曲橋里)라고 표기 하고 있으니 표준어로 굽은다리가 된 것이다.

명일동에서 흘러오는 개천(봐지개울) 사이에 고분다리마을과 벽동마을을 잇는 다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개천이 흐르는 곳에 지하철 5호선이 신설되면서 ‘굽은다리역’이 생겼다. 그래서 ‘고분다리’와 ‘굽은다리’는 더욱 헷갈리게되었다.

천호동 250번지로부터 지금의 굽은다리길 일대를 말한다. 혹자는 ‘고분(古墳)이 있는 마을(다리)’로 해석하지만 아직까지 이곳에서 고분이 발견되지 않았다.

  • 갯갓말 : 다니는 언덕길이 경사가 심하여 비탈길이라 하고 이름이 갯갓말, 혹은 까까-말 개-깐말이라 하였다. (삼성아파트쪽)
  • 당말 : 천호동 시장 뒤 언덕 마을. 신당이 있으므로 당마을 또는 당촌(堂村)이라 한다. (천호3동 감탄사 절 과 그 주변
  • 사택말 (사택길, 촌) : 지금의 한신아파트와 동아아파트 사이에 있던 네개의 못(四澤) 옆 마을을 일컬어 사택촌이라고 하였 다 (구 암사시장 입구 뒤)
  • 차재말 : 배를 타기전 수레(차)가 물건을 싣거나 내려놓았다 - 차재(車載)하는 언덕마을이라는 뜻이다. 위치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지금의 성덕여상부근으로 추정된다.
  • 벽동말 : 벽오동나무가 있어 벽동마을 또는 벽동촌(碧桐村)이라 불리었다. 지금은 마을 제례도 지내고 서낭당나무도 있었다고한다. (지금의 천호1동 사무소 부근 )
  • 은호대 : 오래전 조선시대때 포졸이 지키던 숨겨진 소초 호(隱護)가 있었던 뜰이라 전하며 붙여진 이름이다. 위치는 모르나 지금의 계광빌라~용주빌라(천일초등학교 옆 언덕)으로 추정된다.
  • 토말 : 천호삼성아파트 부근에 있었던 마을로 추정.
  • 십자성 마을 :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조성한마을, 월남전 파병을 다녀온 군인들의 노고를 치하, 그들의 거주권을 위하여 벽동마을(천호동)과 원터골(명일동) 사이 남측 벌판에 마을을 조성, 이 이름을 동남아시아의 상징이자, 월남(베트남)에서 비추이는 별인, 남십자성을 보고온 군인의 마을이라 하여 "십자성 마을" 이라지었다.
  • 천사 마을 : 1970년대 이후 파이롯트공장도 설립이되고 뚝방이 생김에 따라 기존 한강 배후 습지에 주거지가 형성이 된다. 이후 1990년 주민자치일환으로 이름을 짓는데 천호4동의 마을이며, 축약음이 천사와 같은 이름이라하여 "천사 마을(天使-)" 이라 지었다. (지금 천호제일교회~강동 초등학교 일원)
  • 장미 마을 : 1980대 이후 한강안쪽 뚝방이 생기면서 천호2동 주민자치의 일환으로 골목에 장미꽃길과 보조대를 설치하여 일대를 장미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 금은물 : 당말아래 , 동신중학교 부근으로 추정, 물이 흐른 작은 개울, 실개천로 추정한다.
  • 봐지개울 : 천호동과 명일동 사이에서 흐르던 개울, 성내천으로 흘러들어갔던 지류중에 하나다.
  • 토산개울 : 지금의 우성아파트 근처의 작은 개울 , 흙산개울이라고도 한다. 한강백사장을 지나 바로 유입되었다고한다. 지금은 덮어져있으며 천호2동 사이로 흐른 개천인듯하다, 천호 한강시민지구에 합류 흔적이 남아있다.
  • 기와집골 : 마을에서 보기드문 귀한 기와집이 족고개 지나 웃길나들이 골짜기에 있어서 이곳을 기와죽골 또는 개죽골이라 불렀다, 천일초등학교 북쪽
  • 족고개 : 은호대로 가는길 , 방아간이 있던 곳으로, 벽동말과 가운뎃말 사이언덕으로, 광나루로 한양 나들이 갈때 넘어야하는 곳으로 불리었으며 지금의 장약국 위쪽고개를 말한다.
  • 감골 : 감나무가 많았던 곳 , 지금의 우성아파트 동쪽 근처 작은 마을과 언덕사이길
  • 당산재 : 당말 남측의 중간고개.
  • 구름고개 : 동신중학교 옆 구름이 모이는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
  • 미나리깡 : (사택골 옆) 미나리밭이라하여 미나리깡이라 불리었다 지금의 일주빌딩 옆 신한은
  • 왜골-(옆) - 지금의 주홍빌딩 안쪽 고개 ,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자주 넘다하여 "왜고개" 라고도 했다
  • 천호동 문구 거리 : 과거 너른나루(광진-廣津)의 기록소 터가 있어, 이를 기록하기위해 먹,종이등의 물품을 대는곳이 있었다고 한다. 이 일대가 한강의 범람이 심하여 일대의 동네가 유실되었고 이후 1980년대 서울의 유서깊은 창신동 문구거리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서울시에서 이를 과거 소규모의 문방사우가 있던 천호동쪽 (한강 범람을 막는 둑방조성 )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움으로서 이에 천호동 문구거리가 조성된다.
  • 광나루 : 일명 너른나루, 현재 광진교가 있는 지점~암사동일대로써 남쪽 선착장을 광나루라고 불렀으며 , 북쪽 선착장을 양나루(지금의 광진교)라고 불리게되었다. 고려, 조선시대의 나루터로 번화하였으며 이후에 나루터의 이름은 통용됨으로 북쪽과 남쪽 모두 광나루지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깨끗한 백사장이 있어 1960년대까지 강수욕과 뱃놀이의 유원지로 성황을 이루었다.
  • 구천면길 : 조선시대에 말길 (북 광주로~여주로)로 추정, 과거의 광진나루(광진교)~ 명일동~ 하남~ 북 광주군으로 가던 옛길 (일제가 이후 도로개설공사)
  • 북망대(北望 ) : 천호동 뒷산, 동아재의 가장 높은곳, 산 위에 북망지가 있어서 임금이 계시는 곳(정확히 한강 서북방면을 볼수있음) 을 향해 절을 올렸다. (언덕을 깎아내린 천호동 동아아파트 ~ 천성교회로 추정)

혹자는 지금의 천호성당 위쪽으로 말하는데 조선 중기때 정엽이 벼슬을 버리고 산 아래 집에 살면서 삭망이 되면 산에 올라 북궐예(북쪽 궁궐을 바라보며 임금께 예를 올렸다)를 올렸다 하여 이곳을 북망대 또는 북망산이라 고도 불렀다고 한다.

  • 사성(蛇城) : 학명(學名), 동아재라고도 불리며, 풍납토성 북쪽에서 부터 - 성내뒷길 - 금은물 언덕 - 당산재 - 북망지 - 미나리깡골 - 감골언덕 - 암사동 토성 - 암사지정 - 고덕산(고지봉) - 방축촌 - 일자산 - 초이리 언덕 - 풍산동 언덕 - 창모루 - 숭산 (검단산) 의 이르는 거대한 한성백제의 방어지역으로 추정되는 명칭

행정 구역편집

법정동 행정동
천호동 천호제1동
천호제2동
천호제3동

주요 시설편집

    • 천호동 공원
    • 샛마을 근린공원
    • 천호 어린이공원

문화편집

  • E마트 강
  • 현대백화점 천호
  • 홈플러스 강동
  • 천호 CGV
  • 롯데시네마 강동
  • 천일 어린이 전용도서관
  • 천호동 공원
  • 천호동 성당
  • 천호시장 - 고분다리 시장 - 광영 시장
  • 천호동 로데오거리
  • 해공도서관

교통편집

교육편집

각주편집

  1. 법률 제1172호 서울특별시·도·군·구의관할구역변경에관한법률 (1962년 11월 21일)
  2. 대통령령 제7816호 구의증설및관할구역변경에관한규정 (1975년 9월 23일)
  3. 대통령령 제9630호 서울특별시은평구등7개구설치및구관할구역조정에관한규정 (1979년 9월 26일)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