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파르망티에

앙투안-오귀스탱 파르망티에 (Antoine-Augustin Parmentier 1737년 8월 12일 – 1813년 12월 13일)는 프랑스와 유럽 전역에서 감자를 식재료로서 전파하는 데 기여한 농경학자이다.[1] 그는 나폴레옹 정권 당시 보건부장관을 맡으면서 천연두 예방백신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추출해 알리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으며 제빵학교를 세우고 냉장 기술에도 많은 연구를 남겼다.

Parmentier Antoine 1737-1813.jpg

16세기에 남미대륙으로부터 감자가 처음 들어왔지만[2] 관상용 작물이나 동물 사료, 가난한 자들의 식량이였을 뿐 식재료로는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3]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는 감자재배를 장려 했으나[4] 프랑스는 감자가 나병을 퍼뜨린다며 재배 자체를 금지했다.[5][6]

7년 전쟁(1756~63) 동안 군 영양사로 복무하다 프로이센에 잡혀 포로생활을 하며 감자를 먹게 되었다. 1763년, 포로에서 석방되어 파리에 돌아온후 영양학을 공부하며, 감자보급에 힘섰다. 1772년 감자로 환자 치료를 위한 방법을 생각해 내기도 했다. 1773년 감자 재배에 관련해 수상하기도 했다.[7]

그의 노력 끝에 1772년 파리 약학청이 식용작물로 감자를 인정했다. 그러나 일부의 반발이 극심해 그가 일하던 병원의 텃밭에서는 소유자였던 종교 집단에 의해 감자를 키울 수조차 없었고 불만이 많았다.

1785년 즈음 가뭄을 극심하게 겪으면서 프랑스 사회는 감자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1795년 감자가 대량으로 수확되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가뭄의 여파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외에 그는 농경학에 관심을 두면서 제빵과 치즈 발효, 곡물 저장, 옥수수, 밀가루, 버섯 재배, 미네랄 함유 물, 포도주 제조 등에 대해서 흥미를 가져 연구를 많이 남겼다.

그는 파리의 페흐 라쉐이 묘지에 묻혔으며 파리 10-11번가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8]

각주편집

  1. [네이버 지식백과] 프랑스의 감자 전도사, 파르망티에 - 역사 속의 감자 (감자, 2004. 9. 17., 전수미)......오늘날의 감자요리를 이야기할 때 루이 15세의 신하이자 학자였던 앙투안 오구스탱 파르망티에(Antoine Augustine Parmentier)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감자를 터부시하던 귀족, 왕족들에게 감자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프러시아의 7년전쟁(1756~1763년) 때 감옥에 갇혀 있었던 파르망티에는 배급으로 맛본 감자가 훌륭한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 그는 사람들이 감자에 대한 편견만 버린다면 감자가 영양학적으로 얼마나 우수한가를 알리는데 일생을 바쳤다. 결국 그의 노력은 프랑스의 감자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2. 자바현 역사교육자협회 <물건의 세계사> 가람기획 2002년 p26
  3. [네이버 지식백과] 앙투안 오귀스탱 파르망티에 [PARMENTIER(ANTOINE AUGUSTIN)] (그랑 라루스 요리백과, 강현정, 김미선).....감자는 농학자 올리비에 드 세르(Olivier de Serres, 1539-1619)에 의해 프랑스에 처음 알려지고 재배되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인들은 감자를 동물 사료나 가난한 자들의 식량으로 여길 뿐 그다지 중요한 먹거리로 취급하지 않았다.
  4. 미야자키 마사키츠<하룻밤에 읽는 물건사>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년 p128
  5. 지바현역사교육자협의회 <물건의 세계사> 가람기획 2002.1.30 p27
  6. 쓰지하라 야스오 <음식, 그 상식을 뒤엎는 역사> 창해 2002년 p191
  7. 쓰지하라 야스오 <음식, 그 상식을 뒤엎는 역사> 창해 2002년 p192
  8. Avenue Parmentier Archived 2007년 1월 22일 - 웨이백 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