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른크네 (10세기)

야른크네(고대 노르드어: Járnkné, 아일랜드어: Glúniairn 글루니아른, ? ~ 989년)는 10세기 더블린노르드게일인 왕이다. 당대 브리튼 제도의 노르드인 지역을 호령한 이바르 왕가의 일원이다.

더블린 왕 올라프 크바란이 980년 타라 전투에서 패배하고, 뒤이어 당시 에린의 지고왕이던 콜만 씨족말 세크날 막 돔날이 아예 더블린을 함락시켰다. 올라프는 이오나 섬으로 은둔하여 수도사 생활을 하다 981년경 죽었다. 야른크네와 말 세크날은 모두 전대 지고왕인 북이넬돔날 우어 넬의 누이 둔를라흐(Dúnlaith)의 아들이었다. 말 세크날은 이부형제 야른크네를 더블린을 다스리는 봉신으로 임명했다. 말 세크날은 올라프 크바란이 더블린에 잡아 가두고 있던 많은 인질과 포로들을 해방했는데, 그 중에는 라긴돔날 클렌 막 로르칸도 있었다.[1]

야른크네는 이부형제의 지지를 받아 상당한 편익을 얻었던 것 같으며, 말 세크날은 980년 그를 다른 이부형제들을 제치고 더블린 왕으로 꽂아준 것 외에도 여러 편의를 봐 주었다.이후 야른크네의 먼 친척 베드라표르드의 이바르가 983년 말 세크날과 야른크네의 군대와 싸웠다가 패배했고, 도망가다 죽은 패잔병들 가운데는 이바르의 아들 길라 파트라크(Gilla Pátraic)도 있었다. 말 세크날의 군대는 라긴 일대를 파괴했고, 야른크네의 부대는 글렌덜로흐의 교회를 공격했다.[2]

989년 야른크네는 술에 취해 자다가 자기 노예에게 살해당했다. 두월러터흐 막 이러비시의 《스코틀랜드 편년사》에 따르면 그 노예의 이름은 콜반(Colban)이라고 한다.[3] 벤저민 허드슨아일랜드어 연대기들에 나오는 야른크네의 피살과 막 세크날의 신속한 보복을 보면 그의 죽음이 아마 더블린 내부의 파벌싸움의 결과일 것임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연대기들에 따르면 막 세크날은 더블린을 공격하여 내부 저항을 쓸어버리고 에라크(eraic; 앵글로색슨의 웨르길드에 해당하는 사람 목숨값)를 요구해 받아냈다. 막 세크날은 야른크네의 목숨값 중 3분지 1을 자신의 소유로 하였다. 야른크네의 후임으로 더블린 국왕이 된 것이 야른크네의 이복형제 시그트뤼그 실키스케그와 야른크네의 경쟁자 베드라표르드의 이바르 중 어느 쪽인지는 불확실하다.

지고왕 콩갈라흐 크노그바의 아들과 결혼한 라근힐드(Ragnhildr)는 야른크네의 동부동복 누이다.[4] 야른크네의 아들 길라 키어란(Gilla Ciaráin)은 1014년 클론타르프 전투에서 죽었다.[5] 차남 시트리크(Sitriuc)는 1036년 웨일스에서 삼촌 시그트뤼그 실키스케그의 아들 고프라드(Gofraid)를 죽였다. 야른크네의 아들 시트리크는 맨섬의 왕 고프라드 막 시트리크( ? ~ 1070년)의 아버지인 것으로 생각된다. 고프라드는 핑갈이라는 아들을 낳았고 핑갈은 맨섬을 이어받아 다스리다 1079년 죽었다. 일각에서는 란나우막크 콩갈도 핑갈의 아들이라고도 한다.[6]

각주 편집

  1. Downham, Viking Kings, pp. 51–52; Hudson, Viking Pirates, pp. 52–54. For family relationships, see: Downham, Viking Kings, p. 29, fig. 6; Hudson, Viking Pirates, p. 49, fig. 2.
  2. Downham, Viking Kings, p. 252; Hudson, Viking Pirates, pp. 81–82.
  3. Downham, Viking Kings, p. 252.
  4. Hudson, Viking Pirates, p. 49, fig. 2.
  5. Downham, Viking Kings, pp.251–252; Hudson, Viking Pirates, p. 83, figure 3.
  6. Hudson, Viking Pirates, pp. 170–172.

참고 자료 편집


올라프 크바란
제15대 더블린 국왕
980년–989년

시그트뤼그 실키스케그 또는
베드라표르드의 이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