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언양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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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언양읍성(蔚州 彦陽邑城)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서부리 일대에 있는 조선시대의 읍성이다. 1966년 12월 27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53호로 지정되었다.

울주 언양읍성
(蔚州 彦陽邑城)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사적
남문 영화루
종목사적 제153호
(1966년 12월 27일 지정)
면적67,986m2
시대조선
위치
울주 언양읍성 (대한민국)
울주 언양읍성
주소울산광역시 울주군 성안2길 55-8 (언양읍)
좌표북위 35° 34′ 9″ 동경 129° 7′ 21″ / 북위 35.56917° 동경 129.12250°  / 35.56917; 129.12250좌표: 북위 35° 34′ 9″ 동경 129° 7′ 21″ / 북위 35.56917° 동경 129.12250°  / 35.56917; 129.12250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편집

예부터 경주·울산·밀양·양산과의 교통 중심지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옛 언양 고을의 읍성이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처음에는 흙으로 성을 쌓았던 것을 연산군 6년(1500)에 현감 이담룡이 확장하여 돌로 다시 쌓았다. 평지에 네모꼴로 만들어진 보기 드문 평지성으로, 원래는 둘레가 약 1,000m, 높이가 4m나 되었으며 성안에는 4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성을 쌓았던 큰 돌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성벽은 조선 전기 읍성 축조의 일반적인 방식이 반영되었다. 큰 돌을 대충 갈아 쌓은 후 빈 공간에 잔돌을 채워 성벽을 튼튼하게 하였다.

언양읍성은 전국의 중요 읍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14∼15세기의 축조방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나타나는 축성법 변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연혁편집

경상도속찬지리지》에 따르면, 언양읍성은 고려 공양왕 2년(1390년)에 토성으로서 최초로 축조되었다. 조선 성종 12년(1481년)에 쓰여진《동국여지승람》에도 여전히 언양읍성이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규모는 둘레가 1489척, 높이가 8척, 우물 2개이다.

석성(石城)으로 개축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증보문헌비고》에 있는데, 연산군 5년(1500)에 현감 이담룡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전해진다. 이 때에 성의 규모가 둘레 3064척, 높이 13척, 우물 3개로 커졌다.[1] 그러나 당시의 성은 임진왜란에 의하여 무너지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광해군 9년(1617)에 고쳐 쌓은 것이라 전해진다.[2]

사진편집

각주편집

  1.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卷二十三 彦陽縣: 城郭 邑城 土築周一千四百九十八尺高八尺內有井二 新增 弘治庚申改石築周三千六十四尺高十三尺內有三井 『성곽 읍성(邑城) 흙으로 쌓았으며, 둘레는 1천 4백 98자이고, 높이는 8자이며, 안에 우물 2개가 있다. 신증 홍치(弘治) 경신년에 돌로 다시 쌓았으며, 둘레는 3천 64자, 높이는 13자이고, 안에 3개의 우물이 있다.
  2. 울산역사교사모임, 《다같이 돌자 울산 한바퀴》(1999년, 울산, 도서출판 처용) 32~34쪽

참고 자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