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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민영(嚴敏永, 일본식 이름: 雉山敏夫, 1915년 2월 4일 ~ 1969년 12월 10일[1])은 일제 강점기대한민국의 관료 겸 정치인이다.

생애편집

경상북도 경산에서 출생한 그는 1939년에 일본 규슈 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하였고,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관리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전라북도 임실군무주군의 군수를 지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전라북도 농상부장과 전라남도 농림국장을 거쳤다. 이후 학계로 진출해 대구대학교 교수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지냈고, 1957년에는 경희대학교 법대 학장이 되었다.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붕괴된 뒤 민주당 소속으로 참의원에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듬해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자 김도연이 주도한 자유민주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에서 민주계 중심의 내분이 일어나면서 소선규와 충돌한 끝에, 자신의 계파를 이끌고 5·16 군사정변 세력이 창당한 민주공화당으로 이동하였다.[2] 박정희는 엄민영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고문으로 발탁한 뒤 중용하였다. 제3공화국에서 두 차례 내무부장관을 지냈고, 1967년 9월 16일, 주 일본 대사에 임명되어[3] 재직하던 중 사망했다.

2008년 공개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분야에 선정되었다.

각주편집

  1. “嚴敏永 주일대사 별세. 16일 외무부장 거행”. 조선일보. 1969년 12월 11일. 1면면. 
  2. “공화당에 嚴敏永씨계 합류선언. 자민당 완전히 두조각”. 조선일보. 1963년 7월 31일. 2면면. 
  3. “12國大使任命의결”. 동아일보. 1967년 9월 16일. 國務會議는 16일 駐美·駐英·駐日·駐獨大使를 포함해서 12개國駐在大使를 새로 任命키로 議決했다. 이날 議決된 大使級의 大幅移動은 朴大統領의 決裁가 나는대로 月內에 發令케 되었다. … ▲駐日 大使〓嚴敏永(52•參議員•內務長官) 

참고 자료편집

전임
이계순
(직무대행)
제28대 내무부 장관
1963년 12월 17일 ~ 1964년 5월 11일
후임
양찬우
전임
양찬우
제30대 내무부 장관
1966년 4월 15일 ~ 1967년 6월 28일
후임
이호
전임
김동조
제2대 주 일본 대사
1967년 10월 ~ 1969년 12월 10일
후임
이후락
  전 임
(신설)
제5대 참의원(전라북도 제2부)
1960년 7월 29일 ~ 1961년 5월 16일
민주당
후 임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