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춘섭(嚴春燮, 1883년 10월 8일(1883-10-08)~1933년 8월 15일(1933-08-15))은 일제 강점기 조선 시대의 함북 지역의 대한민국 임정 관련 항일 독립 운동가로, 1990년 8월 15일 (1990-08-15)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엄춘섭
신상정보
출생1883년 10월 8일(1883-10-08)
조선 함경도 경성군 주남면 삼향동리 111번지
사망1933년 8월 15일(1933-08-15)(49세)
일제강점기 조선 함경남도 원산부
거주지일제강점기 조선 함경북도 청진부
국적대한민국
본관영월
별칭중국식 가명: 뤄처(羅澈, 나철)
직업항일 독립 운동가
학력 쓰촨충칭 융촨 중학교 중퇴(1906년 6월)
형제4남 2녀 중 막내아들(다섯째)
활동 정보
관련 활동독립운동
활동 기간1919년~1923년
주요 활동3·1 대한 독립 운동
경력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 연통제 함경북도 경성 지부 사감
상훈건국훈장 애족장(1990. 08. 15.)
웹사이트엄춘섭 : 독립유공자 공훈록 - 국가보훈처

생애

편집

함경도 경성(鏡城)에서 출생한 그는, 제법 돋보이는 총명함으로 1888년에서부터 어언 8년 동안 향리에서 《자치통감(資治通鑑)》 및 《역경 주역(易經 周易)》 등의 중급 한문 서적을 탐독 및 학습하다가, 1896년에 한성으로 유학하여, 한성계동보통학교(1903년 3월)한 이후로는, 에 유학하여 쓰촨 성 지역의 충칭 융촨 중학교를 중퇴(1906년 6월)하였으며, 만저우 지린퉁화로 망명하여 뤄처(羅澈, 나철)라는 중국어 가명으로 농업 관련 노동자로 활약 등을 하다가 해당 액수를 모아 1909년 6월에 대한제국 함경북도 경성 향리에 귀환 및 귀국하였으며, 1919년 3월 1일, 일제 강점기 시대의 함북 경성에서 일어난 3·1 대한 독립 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였으며, 동년(1919년)의 7월에 안창호(당시 임정 내무총장)의 지시 및 지령 등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에서 조직한 함북 경성 연통제(聯通制)의 함북 경성 주남면(朱南面)의 삼향동리(三鄕洞里)의 사감(司監)으로 선임되어 대한 독립 사상 등을 고취하면서 활동하다가, 같은해(1919년)의 12월 일경한테 붙잡혔다. 결국, 엄춘섭 그는 이듬해 1920년 8월 10일 함남 함흥지법(함흥지방법원)의 함북 청진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죄 등으로 징역 2년 8월(32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복역 1년 5월(17개월)여만인 1921년 5월 2일()에 당시 히로히토 왕세자(당시 요시히토 일왕 부부의 장남)의 4월 29일 만20세 생일 축하 관련 특별사면 조처 등으로 인하여 옥고를 끝내고 출감하였다.

사후

편집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고자 1990년 8월 15일(57주기)을 기하여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외부 링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