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통문(女權通文), 또는 여학교설시통문(女學校設始通文)은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 양반 여성들이 주축이 되고 300여 명의 여성이 찬동해 이뤄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을 말한다. 이소사(李召史), 김소사(金召史)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는데, 소사(召史)는 나이든 기혼 여성을 의미한다.[1]

황성신문에 게재된 여권통문 전문

기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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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9월 8일 황성신문 별보란과 9일 독립신문에 게재된 ‘여성통문’ 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1]

어찌하여 우리 여인들은 일양 귀먹고 눈 어두운 병신 모양으로 구규(舊閨)만 지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로다. 혹자 신체와 수족과 이목이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병신 모양 사나이의 벌어주는 것만 먹고 평생을 심규에 처하여 그 절제만 받으리오. 이왕에 먼저 문명개화한 나라를 보면 남녀가 일반 사람이라 어려서부터 각각 학교에 다니며 각항 재주를 다 배우고 이목을 넓혀 장성한 후에 사나이와 부부지의를 정하여 평생을 살더라도 그 사나이의 일로 절제를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극히 공경함을 받음은 다름 아니라 그 재조와 권리와 신의가 사나이와 같기 때문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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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립중앙도서관 국제교류홍보팀 (2021년 9월 1일). “소장자료에서 예술로 연결되고 문화로 꽃 피다”. 국립중앙도서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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