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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군(礪山郡)은 1914년까지 지금의 익산시 북부 3면(面)에 있던 지역이다.

목차

기록편집

"여량현(礪良縣)은 본래 백제의 지량초현(只良肖縣)인데, 경덕왕 때 고친 이름이다." - 삼국사기 지리지 전주 덕은군

"야산현(野山縣)은 본래 백제의 알야산현(閼也山縣)인데, 경덕왕 때 고친 이름이다. 지금(고려)의 낭산현이다." - 삼국사기 지리지 전주 금마군

"여산현은 본래 백제의 지량초현인데, 신라에서 여량현으로 고쳐 덕은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낭산현은 본래 백제의 알야산현이었는데 신라에서 야산현으로 고쳐 금마군의 영현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낭산현으로 고쳐 모두 전주 임내로 하였다. 공양왕 3년(1391년)에 두 현을 겸감무로 하였다가 우리 왕조의 공정왕(조선 정종) 2년(1400년)에 낭산을 여량의 속현으로 하였으며, 태종 4년(1404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 세종실록 지리지 여산현

조선 정종 2년(1400년)에 여량(礪良)과 낭산(朗山)의 두 현(縣)을 합하여 여산현(礪山縣)이라 했는데, 여량 지역에 삼한 시대 마한여래비리국이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이릉부리(爾陵夫里)라 불리던 전남 화순군 지역일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여량 지역은 구석기 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는데, 숯돌이 많이 나와서 숯돌산(只良肖-礪山)으로 불렸다.


역사편집

  • 서기 9년, 온조왕때에 백제에 편입되었다. 백제의 군현제 성립후 각각 지량초현과 알야산현으로 개편되었다.
  • 660년 백제가 신라에 패망하자 당나라가 백제고토를 가로채 웅진 도독부를 세웠다. 671년 신라는 당나라를 축출하고 소부리주를 설치했다.
  • 685년 신문왕5년에 전국의 행정구역을 9주로 재정비하면서 백제의 중부지방에 지금의 전주시일원을 치소로 완산주를 설치했다. 지량초현과 알야산현은 각각 금마저군과 덕근지군(德近支郡)의 관할현으로 완산주에 속했다. 757년 전국의 행정구역명칭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지자 여량현과 야산현으로 개칭했다.
  • 고려 초기에 야산현이 낭산(朗山)으로 개명했다. 여량현과 낭산현 모두 1018년 고려 현종9년에 전주의 속현으로 편입되었다.
  • 1391년 공양왕 3년 여량현이 감무가 설치되자 낭산현도 그 관할에 들어갔다.
  • 조선시대1400년 정종 2년에 두 현이 통합되어 여산현이 되었다. 세종 18년에 군으로 승격되어 충청도에 소속되었다가 세종 26년에 전라도로 복귀되었다.
  • 1669년 여산도호부로 승격되었다.
  • 갑오개혁 때인 1895년행정체제 개편으로 군으로 강등되었다.

1914년 이후편집

  • 1914년 4월 1일 일제에 의한 행정폐합으로 익산군에 통폐합되었다. 산하 면들도 여산. 낭산. 망성, 황화 4면으로 통폐합되었다.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군내면(郡內面) 여산면 여산리
천동면(川東面) 대성리, 두여리, 호산리
천서면(川西面) 원수리, 제남리
서이면(西二面) 낭산면 구평리, 석천리, 성남리, 낭산리
서삼면(西三面) 용기리
서사면(西四面) 삼담리, 호암리
북일면(北一面) 망성면 신작리, 화산리
북삼면(北三面) 어량리, 내촌리, 무형리, 장선리
합선면(合先面) 황화면 고내리, 황화정리
공촌면(公村面) 마전리, 봉동리
피제면(皮堤面) 안심리, 신화리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