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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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정씨(靈光丁氏)는 전라남도 영광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영성 정씨(靈城 丁氏)라고도 한다.

영광 정씨
靈光丁氏
이칭영성 정씨(靈城丁氏)
나라한국
관향전라남도 영광군
시조정진(丁晉)
집성촌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남정리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상대리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면 봉강리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면 용월리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반산리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우산리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해룡리
황해남도 장연군 대구면 선원리
주요 인물정극인, 정걸, 정일권
인구(2015년)63,556명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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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정씨의 시조는 고려조 태학생원(太學生員) 정진(丁晉)이다. 그의 손자 정찬(丁贊)이 공민왕조에 공을 세워 선력좌리공신(宣力佐理功臣) 광록대부(光祿大夫) 영도첨의(領都僉議)에 올라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다.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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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해 정씨(押海 丁氏)의 도시조인 정덕성(丁德盛)은 (唐) 문종(文宗)때 대승상(大丞相)을 지냈고, 무종(武宗) 때 대양군(大陽君)에 봉해졌으며, 853년 군국사(軍國事)로 직간을 하다가 전라남도 신안군압해도(押海島)에 유배되어 정착하였다고 한다. 압해 정씨나주 정씨(羅州丁氏)·영광 정씨(靈光丁氏)·의성 정씨(義城丁氏)·창원 정씨(昌原丁氏)로 동원분파(同源分派)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丁若鏞)은 도시조 정덕성에 대해 '사실 관계에 대한 고증이 어렵다'며 실존 여부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았다. 정약용은 증조부로부터 자신에까지 문헌 연구와 현지 답사 등을 벌인 결과, 정덕성이 정사(正史)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 당의 풍습, 관직명의 차이 등을 들어 정씨동조동근설(凡丁氏同祖同根說)은 날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후대에 모화사상의 영향으로 당(唐)에서 재상을 지내다가 압해도로 유배되어 왔다는 정덕성(丁德盛)이라는 가상인물을 도시조(都始祖)로 날조하여 나주(羅州)·영광(靈光)·창원(昌原)·의성(義城) 등 본관이 서로 다른 여러 정(丁)씨들을 근거도 없이 합쳤다는 것이다.[1]

영광 정씨는 고려조에 태학생원(太學生員)을 지낸 정진(丁晉)을 1세조로 한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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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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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련공파(訓鍊公派)에 별제공파(別堤公派), 생원공파(生員公派), 경근재공파(敬謹齋公派), 벽오당공파(碧梧堂公派), 원종공신공파(原從功臣公派)가 있다.
  • 함열공파(咸悅公派)
  • 불우헌공파(不憂軒公派)에 훈도공파(訓導公派), 참봉공파(參奉公派), 관해당공파(觀海堂公派), 생원공파(生員公派)가 있다.
  • 호군공파(護軍公派)
  • 사정공파(司正公派)
  • 서윤공파(庶尹公派)
  • 진사공파(進士公派)
  • 부사공파(府使公派)
  • 미산공파(薇山公派)
  • 총랑공파(總郞公派)
  • 상호군공파(上護軍公派)에 군수공파(郡守公派), 학생공파, 참봉공파(參奉公派)가 있다
  • 옥과공파(玉果公派)
  • 사평공파(司評公派)에 참봉공파(叅奉公派), 훈도공파(訓導公派)가 있다

과거 급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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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정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1명을 배출하였다.

문과

정경달(丁景達) 정극관(丁克寬) 정극인(丁克仁) 정남익(丁南翼) 정내복(丁來復) 정명열(丁鳴說) 정명옥(丁鳴玉) 정몽보(丁夢輔) 정선(丁璿) 정세림(丁世霖) 정수손(丁秀孫) 정수일(丁守一) 정염조(丁念祖) 정영상(丁永相) 정예손(丁禮孫) 정유조(丁惟祖) 정이공(丁二公) 정인우(丁仁祐) 정재룡(丁載龍) 정재욱(丁在昱) 정채현(丁采鉉)

무과

정구세(丁龜歲) 정난기(丁蘭祺) 정대일(丁大一) 정무영(丁茂英) 정상준(丁尙俊) 정식(丁湜) 정원상(丁元尙) 정철(丁哲) 정호(丁浩) 정호남(丁好南)

생원시

정극인(丁克仁) 정기(丁琦) 정남우(丁南羽) 정남일(丁南一) 정두옥(丁斗玉) 정명국(丁名國) 정명언(丁名彦) 정삼준(丁三俊) 정시엽(丁時燁) 정영필(丁永弼) 정원(丁瑗) 정이대(丁履大) 정익조(丁翊祚) 정익하(丁翊夏) 정재욱(丁載郁) 정재화(丁在和) 정천뢰(丁天賚) 정태현(丁泰鉉) 정현(丁玹) 정효목(丁孝穆)

진사시

정급(丁岌) 정두옥(丁斗玉) 정두환(丁斗煥) 정명옥(丁鳴玉) 정문욱(丁文郁) 정선(丁璿) 정운희(丁運熙) 정윤창(丁允昌) 정일화(丁一和) 정재화(丁載和) 정졸(丁) 정준(丁駿) 정충갑(丁忠甲)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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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靈光)은 전라남도 북서부 해안에 인접한 영광군 일대의 옛 지명으로 백제 때는 무호이군(武戶伊郡)이라 불렸다. 660년(신라 무열왕 7)에 모지(牟支)로 개칭하였다가 757년(경덕왕 16)에는 무령군(武靈郡)으로 바꾸고, 장사현(長沙縣)‧무송현(茂松縣)‧고창현(高敞縣) 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영광군(靈光郡)으로 바꾸었고, 속현으로 함풍현(咸豊縣:咸平)‧모평현(牟平縣:咸平)‧장사현(長沙縣)‧무송현(茂松縣)‧해제현(海際縣:무안군 해제면 일대)‧삼계현(森溪縣:장성군 삼계면‧삼서면 일대)‧임치현(臨淄縣:영광군 염산면‧백수읍 일대)‧육창현(六昌縣:영광군 군남면 일대)을 거느린 대읍이었다. 정주(靜州) 또는 오성군(筽城郡)으로도 불렸다. 조선시대에도 영광군을 유지했으나, 1629~38, 1755~64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전주부 영광군이 되었고, 1896년에는 전라남도 영광군이 되었고, 1955년에는 영광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항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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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동항렬

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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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년 영광 정씨 (4,247가구 18,019명) + 영성 정씨 (2,049가구 8,510명) = 26,529명
  • 2000년 영광 정씨 (6,839가구 21,774명) + 영성 정씨 (3,279가구 10,429명) = 32,203명
  • 2015년 영광 정씨 44,964명 + 영성 정씨 18,592명 = 63,556명

집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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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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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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