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식 (1370년)

오식(吳湜, 1370년 ~ 1426년)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1414년 제주목사에 임명되었다가 1417년 예조참의로 임명되어 제주를 떠났다. 이어 형조참의와 전라도관찰사를 거쳐 1419년(세종 1) 판청주목사에 임명되었으며, 1422년(세종 4) 중군동지총제와 좌군동지총제를 지내고, 경주부윤 겸 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으며, 1426년 이조판서 겸 집현전 대제학에 이르렀다.

제주의 관할 구역 조정편집

제주목사로 재직하던 중 제주도의 관아가 제주도 북쪽에 있어 한라산 남쪽에 사는 백성들이 관아를 찾기 불편한 것을 보고 한라산 남쪽에도 관아를 설치해달라고 1416년에 상소하였다. 그의 상소가 받아들여져 오늘날의 서귀포시 지역에 서쪽의 대정현과 동쪽의 정의현이 설치되었다.[1]

○丁酉/濟州都安撫使吳湜、前判官張合等上其土事宜。啓曰: “濟州置郡之初, 漢拏山四面凡十七縣。北面大村縣築城, 以爲本邑; 東西道置靜海鎭, 聚軍馬沿邊防禦, 而東西道都司守, 各以附近軍馬考察, 兼任牧場。 然地大民稠, 訴訟煩多, 東西道山南接人往來牧使所在本邑, 非徒辛艱, 農時往返, 其弊不小。 又靜海鎭軍馬及牧場兼任數多職員, 率其無知之輩, 軍馬考察依憑, 侵民作弊, 或無時?獵, 搔擾殘民。 牧使判官亦未知其故, 豈得考察? 是積年巨弊, 宜於東西道各置縣監, 以才兼文武、公廉正直者差下, 牧場兼任, 使之東西靜海鎭軍馬考察固守, 亦察其所管牧場內馬匹?長、數多職員, 牧子看養能否。 以判官兼差安撫使, 道首領官、安撫使、同首領官, 依他道監司例巡行, 守令勤慢考察, 褒貶施行, 移報吏曹, 則是長治久安之策也。 願自今本邑則屬以東道新村縣·咸德縣·金寧縣、西道貴日縣·高內縣·厓月縣·郭支縣·歸德縣·明月縣。東道縣監以旌義縣爲本邑, 屬以?山縣、狐兒縣、洪爐縣等三縣; 西道縣監以大靜縣爲本邑, 屬以猊來縣、遮歸縣等二縣, 而兩處縣監, 如有公事, 不敢獨斷, 則以安撫使議送決絶後, 辭緣略擧呈報, 以憑黜陟。若進上馬匹刷出及年例馬籍等事, 縣監以所管馬匹齒毛色呈報, 安撫使巡行親監, 考察施行。 所管軍官軍人內, 千戶、百戶則以差定年月久近差等, 縣監分揀呈報安撫使, 相考依舊差下, 以爲恒式如何?” 下六曹, 與議政府擬議啓聞。 吏曹與議政府、諸曹同議: “濟州東西道縣監新設、牧場兼任事、新縣合屬各縣事、馬匹?息巡行考察事、千戶百戶差定事, 依啓本施行。其新設縣監政績殿最, 都安撫使依他領內官例, 以時考察, 傳報都觀察使, 都觀察使竝考牧使判官政績, 褒貶施行。凡刑獄決訟、錢糧等事, 因隔海不可以時而報, 施行後辭緣略擧, 一年兩次呈報監司, 國屯馬匹?息多少, 故失之數, 幷錄呈報, 以憑黜陟。” 從之。

— 조선왕조실록 제2집태종31권113면 원문

제주 도안무사(濟州都安撫使) 오식(吳湜)과 전 판관(判官) 장합(張合) 등이 그 땅의 사의(事宜)를 올렸다. 계문(啓聞)은 이러하였다.

“제주에 군(郡)을 설치하던 초기에 한라산(漢拏山)의 4면(四面)이 모두 17현(縣)이었습니다. 북면(北面)의 대촌현(大村縣)에 성을 쌓아서 본읍의 동서도(東西道)로 삼고, 정해진(靜海鎭)을 두어 군마(軍馬)를 모아 연변을 방어하였고, 그리고 동서도(東西道)의 도사수(都司守)3735)는 각각 부근의 군마를 고찰하고 목장(牧場)을 겸임하였으나, 땅은 크고 백성은 조밀하고 소송이 번다합니다. 동서도(東西道)의 산(山)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목사(牧使)가 있는 본읍(本邑)을 왕래하려면 매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농사 때에 갔다가 오는 데 그 폐단이 적지 않습니다. 또 정해진(靜海鎭)의 군마와 목장(牧場)을 겸임한 다수 직원(職員)이 그 무지한 무리를 거느리고 군마를 고찰한다 핑계하고 백성을 침해하여 폐단을 일으키고, 혹은 무시로 사냥[畋獵]하여 잔약한 백성들을 소요(搔擾)스럽게 하지만, 목사(牧使)와 판관(判官)이 또한 그 연고를 알지 못하니 어찌 고찰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여러 해 묵은 큰 폐단입니다. 마땅히 동서도(東西道)에 각각 현감(縣監)을 두어야 하니, 재주가 문무(文武)를 겸하고 공정하고 청렴하고 정직한 자를 차하(差下)하여 목장(牧場)을 겸임하게 하소서. 이로 하여금 동서(東西) 정해진(靜海鎭)의 군마를 고찰하여 고수(固守)하게 하고, 또한 관할하는 목장(牧場) 안의 마필의 새끼쳐서 자라는 것과 수다한 직원(職員)·목자(牧子)가 보살펴 키우는 일에 능한지의 여부를 살피게 하소서. 판관(判官)을 안무사도(安撫使道)의 수령관(首領官)으로 겸차(兼差)하여, 안무사가 수령관과 같이 다른 도의 감사(監司)의 예에 의하여 순행(巡行)하면서 수령의 부지런한지 게으른지를 고찰하여 포폄(褒貶)을 시행하고, 이조(吏曹)로 이보(移報)하면, 이것이 잘 다스려져 오래도록 평안히 되는 계책입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본읍에는 동도(東道)의 신촌현(新村縣)·함덕현(咸德縣)·금녕현(金寧縣)과 서도(西道)의 귀일현(貴日縣)·고내현(高內縣)·애월현(厓月縣)·곽지현(郭支縣)·귀덕현(歸德縣)·명월현(明月縣)을 소속시키고, 동도(東道)의 현감(縣監)은 정의현(旌義縣)으로서 본읍을 삼아 토산현(兎山縣)·호아현(狐兒縣)·홍로현(洪爐縣) 등 3현(三縣)을 소속시키고, 서도(西道)의 현감(縣監)은 대정현(大靜縣)으로서 본을 삼아 예래현(猊來縣)·차귀현(遮歸縣) 등 2현(縣)을 소속시키되, 두 곳의 현감이 만약 공사(公事)가 있을 때 감히 독단(獨斷)할 수가 없으면, 안무사(安撫使)에 의논을 보내어 결절(決絶)한 뒤에 사연(辭緣)을 대략 들어 정보(呈報)하여서 출척(黜陟)에 빙거하게 하고, 만약 진상(進上)하는 마필을 쇄출(刷出)하는 일과 연례(年例)의 마적(馬籍) 따위의 일이라면 현감(縣監)이 관할하는 마필의 나이와 털빛깔을 정보(呈報)하면, 안무사가 순행(巡行)하여 친히 감독 고찰하여 시행하고, 관할하는 군관(軍官)과 군인(軍人) 가운데 천호(千戶)와 백호(百戶)는 차정(差定)한 연월(年月)의 오래고 짧은 차등을 가지고 현감(縣監)이 분간하여 정보(呈報)하면 안무사가 서로 고찰하여 그전대로 차하(差下)하는 것으로써 항식(恒式)을 삼으소서.”
육조(六曹)와 의정부(議政府)에 내려서 의논하여 계문(啓聞)하게 하니, 이조에서 의정부와 제조(諸曹)와 함께 의논하였다.
“제주(濟州)의 동서도(東西道) 현감(縣監)이 신설한 목장(牧場)을 겸임하는 일이나, 신현(新縣)에다 각현을 합속시키는 일이나, 마필(馬匹)의 번식을 순행하면서 고찰하는 일이나, 천호(千戶)와 백호(百戶)를 차정(差定)하는 일 따위는 계본(啓本)에 의하여 시행하고, 그 신설한 현감의 정적(政績)3736) 에 대한 전최(殿最)3737)는 도안무사가 다른 영내관(領內官)3738)의 예에 의하여 때때로 고찰하여 도관찰사(都觀察使)에게 전보(傳報)하면, 도관찰사는 목사(牧使)와 판관(判官)의 정적(政績)을 아울러 고찰하여 포폄(褒貶)을 시행하고, 모든 형옥(刑獄)의 결송(決訟)과 전량(錢糧) 등의 일은 바다를 격하였기 때문에 제때에 보고할 수 없으니, 시행한 뒤에 사연을 대략 들어서 1년에 두 차례 감사에게 정보(呈報)하게 하되, 국둔(國屯)3739)의 마필의 번식한 다소와 죽어서 없어진 수도 아울러 기록하여 정보(呈報)하게 하여서 출척(黜陟)에 빙거(憑據)하게 하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조선왕조실록 제2집태종31권113면 국역

참고 문헌편집

  • 김찬흡, 제주사인명사전 (제주문화원, 2002)
  • 증보탐라지편찬위원회, 『증보탐라지』(제주문화원, 2004)
  • 제주도지(제주도, 2006)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울산오씨종친회 http://www.ulsanoh.co.kr

각주편집

[[분류:조선의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