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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카간국


위구르 카간국위구르족이 세운 제국이다. 당서에는 회흘(回紇, 回鶻)로 기록되어 있다. 위구르의 기원은 현재 우루무치이며 우루무치 지역에서 동서의 교역을 통제하는 제국이었으며, 840년 키르기스인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거의 1세기 동안 중앙아시아 중남부의 스텝지대를 지배하였다. 수도는 카라발가순이다.

위구르 카간국
회흘(回紇)/회홀(回鶻)
Уйгурын хаант улс

 

 

744년848년
 

국기
국기
Uyghur Khaganate.png
수도카라발가순
정치
공용어고대 위구르어
정부 형태군주제
카간
744년 ~ 747년
841년 ~ 847년

쿠틀룩 빌게 카간
외게 카간
지리
800년 어림 면적3,100,000 km2

기타
국교마니교

역사편집

위구르족은 동돌궐의 지배를 받으며 셀렝가 강 유역에서 거주해 오다, 744년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위구르 제국을 건설하였다. 위구르 제국의 건설자는 쿠틀루그 빌게 카간(Kutlug Bilge Kagan, 骨力裵羅)으로 알려져 있다.

832년 전염병이 휩쓸어서 위구르에게 큰 타격을 입었다. 848년 결국 멸망하였다.

대외 관계편집

위구르 제국은 군사적으로 당나라보다 훨씬 더 우세한 위치에 있었다. 757년, 당조안록산의 난으로 인하여 당나라가 위기를 맞게 되었을 때 위구르군이 수도 장안까지 진군하여 장안을 유린하고 당나라 왕조를 구출시킨다. 이 때 장안을 불태우고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 사람들을 유린하였다.

반면 티베트와는 전쟁을 벌이는 등 대립하였다. 위구르는 감수 협곡을 침입하여 당나라와의 교역을 단절시키려는 티베트 제국에 대해 군사 행동을 취해 832년 이후에는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또한 이로인해서 키르기스, 쿠틀룩 등의 부족들도 위구르의 종주권을 인정했다.

문화편집

762년 위구르 카간 뵈귀는 마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터키 민족 최초로 집단적으로 정착민의 종교를 갖게 되면서 위구르인들이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위구르인들은 선대의 고지(故地)인 산악지대로부터 정착을 위해 스텝의 평야지대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중앙아시아 터키 민족으로서 성곽도시를 건설하였다.(투르판의 고창성) 위구르인들의 관개 농법을 이용한 영농기술이나 뛰어난 프레스코 벽화의 기법 또한 소그드인들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마니교는 위구르족의 도시화와 정착화를 이루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자도 제공하였다. 마니문자(소그드 문자)는 후에 몽골 제국이 문자를 쓰는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군주편집

이미지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