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메뉴 열기

위구르족

(위구르인에서 넘어옴)

위구르족(위구르어: ئۇيغۇر, 터키어: Uygurlar, 영어: Uyghur people)은 중앙아시아튀르크계 민족으로 현재 중국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살고 있는 민족이다. 중국에서는 웨이우얼족(중국어 간체자: 维吾尔, 정체자: 維吾爾, 병음: Wéiwú'ěr, 중국조선말: 위글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인정한다. 역사적으로는 744년, 위구르족은 바스밀(Basmil), 카를룩(Qarluq) 등의 부족과 함께 돌궐 제2제국을 멸망시키고 외튀켄(Ötüken)산에서 위구르 제국을 세운다.

Picto infobox character.png
위구르족
ئۇيغۇر
Kokbayraq flag.svg
동튀르케스탄의 기
인구분포
중화인민공화국의 기 중화인민공화국 12,123,000[1][2][3]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223,100[4][5]
우즈베키스탄 우즈베키스탄 55,220[6][7]
키르기스스탄 키르기스스탄 49,000[8]
터키 터키 45,800[9][10]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 50,000 명 이하[11]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5,000–10,000[12]
파키스탄 파키스탄 1,000 가구 이하[13]
러시아 러시아 3,696[14]
인도 인도 2,000 명 이상
언어
위구르어
종교
수니파 이슬람교
민족계통
튀르크족

중국뿐 아니라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몽골, 우즈베키스탄, 독일, 터키, 러시아 등에도 소수가 흩어져 살고 있다. 중국에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뿐만 아니라 후난성 창더 시타오위안 현(중국어: 桃源县)에도 살고 있으며,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같은 주요 도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작기는 하지만 미국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워싱턴 D.C.에도 위구르족 공동체가 있으며, 캐나다토론토밴쿠버에도 살고 있다.

위구르족이 원래부터 살고 있던 우루무치는 중앙아시아에서는 먼 거리에 존재한다. 우루무치는 몽골 서쪽에 더 가깝다. 우즈베크인은 투르크계이지만 위구르와는 한국인과 일본인정도의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위구르족은 키르기스인과 카자흐스탄인과 좀 더 유사성을 보이며 비슷한 단어가 있지만 언어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역사편집

오르혼 제국 이전편집

 
전성기의 동서돌궐 제국의 영토, 600 A.D. 밝은 색은 직접통치지역, 어두운 색은 영향권

위구르족의 조상은 유목 가오처(高車, 고거)족이다. 타림분지에 살았던 토하라(Tocharians, 月氏)족 역시 위구르의 조상에 포함된다고 보기도 한다. 가오체의 이름은 천막을 옮기기 위한 소가 끄는 수레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들은 바이칼호 남쪽 협곡과 예니세이 강 일대에 사는 알타이계의 유목민족이었다. 이들은 약간의 농업과 예니세이강 유역의 풍부한 철광석을 바탕으로 금속문화를 발달시켰다. 이후 흉노에 복속되어 무기를 제공하였으며 이후 유연에프탈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450년 가오체는 유연에 반란을 계획하였으나 유연 지배하의 투르크족에 패배한다. 이 사건은 돌궐제국을 오래 괴롭힌 역사적인 투르크와 퇼레스(鐵勒, 철륵)간 원한의 시작이었다. 돌궐이 유연/에프탈을 패배시켰을때, 그들은 퇼레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이 시기에 고거족의 이름은 퇼레스로 바뀐다.) 이 시기에 위구르는 처음으로 중국의 사서에 바이칼 남쪽 지역의 10,000호의 작은 부족으로 기록된다.

퇼레스 부족연맹이 와해되자, 위구르는 수나라와 연합한 설연타(薛延陀) 연합에 참여하며, 타르두한을 꺾고 독립을 쟁취한다. 이 시기에 위구르는 연합 내에서 설연타 다음의 지위를 점유하였다. 동돌궐과 돌궐 제2제국 사이 공백기인 630년에서 683년 사이 위구르는 설연타를 무너뜨리고 부고(僕固), 동라(同羅), 바이르쿠(拔野古) 등 다섯 부족들과 함께 위구르 연합을 구성하여 독립을 선언한다. 위구르는 다른 유목 터키계 부족들과 함께 돌궐 제2제국에 복속된다. 돌궐 제2제국의 734년 빌케가한(毗伽可汗)의 사망 이후 그 세가 기울게 된다. 위구르는 일련의 반란 뒤에 9개 부족이 연합한 토쿠즈-오구즈(Toqus-Oghuz)라는 부족연맹을 통합하여 새로운 동맹세력, 온 위구르(On-Uygur)의 지도세력이 된다. 십성회흘(十城回吃) 744년, 위구르는 바스밀(Basmil), 카를룩(Qarluq) 등의 부족과 함께 돌궐 제2제국을 멸망시키고 외튀켄(Ötüken)산에서부터 현 몽골고원을 정복하고 위구르 제국을 세운다.

오르콘 위구르 제국편집

 
8세기의 위구르 제국

오르콘 위구르 제국744년 쿠틀룩 보일라(Qutluɣ Boyla, 骨力裵羅)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840년까지 카스피 해 유역에서 만주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점유하였다. 오르콘 강 유역의 광활한 스텝지역을 지배하였으며 수도는 현재의 카라 발가순(Qara Balɣasun)에 위치한 오르두 발릭(Ordu Balïq)이었다. 757년 안사의 난으로 당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에 진군하여 장안을 붙태우고 유린하였다. 759년부터 779년까지 최전성기를 누렸으나 762년 뵈귀(Bögü) 카간은 이란계 소그드인에게서 전파된 마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점차 유목적 성격을 잃고 정착 농경사회로 탈변한다. 결국 군사력이 약해진 위구르 제국은 840년 다른 터키계 민족인 키르기즈(Kyrgyz)에 의해 멸망한다.

위구르 제국 이후편집

위구르의 유민들은 간쑤, 신장, 톈산 산맥 서쪽 추이 강 유역으로 이동해 정착하였다.


동튀르키스탄공화국편집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가 몰락하고 중화민국이 건국된다. 이 와중에 위구르에 대한 통제는 약해졌으며, 중국에 일어난 많은 군벌들과 독일, 미국 등의 사이에서 위구르는 분열된다.

1944년, 중국 본토에서 국공내전이 일어난 틈을 타서 위구르족들은 일리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위구르족과 타림분지 지역의 소수민족들은 독자적인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동튀르키스탄공화국이라고 이름짓는다.

하지만 곧 공산당국공내전에서 승리하였고, 공화국 내부에서는 정치적 장래를 둘러싼 내분이 생긴다. 결국 1949년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부르한 샤히디(Burhan Shahidi)는 중국 공산당과의 병합을 선언했고, 부주석이었던 이사 유숩 알프테킨(Isa Yusuf Alptekin)을 따르던 많은 위구르 사람들은 이에 반대해 터키로 망명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3-7 各地、州、市、县(市)分民族人口数 (중국어). Xinjiang Uyghur Autonomous Region Bureau of Statistics. 2017년 9월 3일에 확인함. 
  2. 'The entire Uyghur population is seemingly being treated as suspect': China's persecution of its Muslim minority”. 《lse.ac.uk》. LSE. 20 May 2018에 확인함. 
  3. Uyghur (러시아어). Historyland. 2018년 5월 3일에 확인함. 
  4. “Ethnic groups of Kazakhstan in 2009”. 《www.almaty-kazakhstan.net》. 2009년 2월 1일에 확인함. 
  5. Агентство Республики Каписью на 26,1% и составила 10098,6 тыс. человек. Увеличилась численность узбеков на 23,3%, составив 457,2 тыс. человек, уйгур - на 6%, составив 223,1 тыс. человек. Снизилась численность русских на 15,3%, составив 3797,0 тыс. человек; немцев - на 49,6%, составив 178,2 тыс. человек; украинцев – на 39,1%, составив 333,2 тыс. человек; татар – на 18,4%, составив 203,3 тыс. человек; других этносов – на 5,8%, составив 714,2 тыс. человек.
  6. Этнический атлас Узбекистана
  7. Уйгуры Узбекистана
  8. Национальный статистический комитет Кыргызской Республики : Перепись населения и жилищного фонда Кыргызской Республики 2009 года в цифрах и фактах - Архив Публикаций - КНИГА II (часть I в таблицах) : 3.1. Численность постоянного населения по национальностям Archived 2012-03-08 - 웨이백 머신.
  9. Yitzhak Shichor; East-West Center (2009). 《Ethno-diplomacy, the Uyghur hitch in Sino-Turkish relations》. East-West Center. 16쪽. ISBN 978-1-932728-80-4. 
  10. “Uygur Ajan Rabia Kadir, Doğu Türkistanlı Mücahidleri İhbar Etti”. 《ISLAH HABER "Özgür Ümmetin Habercisi"》. 8 January 2015. 2016년 2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11. “Nitaqat rules for Palestinians and Turkistanis eased”. 《arabnews.com》. Saudi Labor Ministry. 1 January 2016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3 November 2015에 확인함. 
  12. “Uighur abuse: Australia urged to impose sanctions on China”. 《www.sbs.com.au》. 2018년 9월 11일에 확인함. 
  13. Hoshur, Shohret; Shemshidin, Zubeyra (2010년 4월 6일), “Pakistan Uyghurs in Hiding: Brothers blame raids and arrests on pressure from China”, 《Radio Free Asia》, 2010년 5월 1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0년 5월 11일에 확인함 
  14. “Перепись населения России 2010 года”. 2012년 2월 3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4년 3월 3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