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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수[1](陰脩, ? ~ 190년)는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로, 자는 원기(元基)이며 형주(荊州) 남양군(南陽郡) 신야현(新野縣) 사람이다.

생애편집

이름 음수(陰脩)[1]
시대 후한
생몰 ? ~ 초평 원년(190년)
원기(元基)
본관 · 출신 형주 남양군 신야현
관직 영천태수(潁川太守)
→ 소부(少府)〔동탁〕
작위
소속 동탁

사승(謝承)이 저술한 《후한서(後漢書)》에 열전이 있었으나 유실되었으며, 다른 사서에 조금씩 인용된 구절이 전해지고 있다.

음수는 영천태수(潁川太守)를 지냈는데, 부임할 때 오관연(五官掾) 장중(張仲)을 방정(方正)에 천거하고 공조(功曹) 종요(鍾繇) · 주부(注簿) 순욱(荀彧) · 주기연(主記掾) 장례(張禮) · 적조연(賊曹掾) 두우(杜祐) · 효렴(孝廉) 순유(荀攸) · 계리(計吏) 곽도(郭圖) 등을 발탁하였다.

그 후, 동탁(董卓)이 집권한 후에는 그의 밑에서 소부(少府)를 지냈다.

초평(初平) 원년(190년), 원소(袁紹)가 산동(山東)에서 봉기하자 동탁은 원소의 숙부 원외(袁隗) · 형 원기(袁基) 및 일족 50여 명을 주살하는 한편 음수 등을 원소에게 파견하여 군대를 해산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원소는 이를 무시했고, 음수는 원소의 동생 원술(袁術)에게 죽임을 당하였다.[2]

음수를 섬긴 사람들편집

각주편집

  1. 《후한서(後漢書)》 권74 및 《초국선현전(楚國先賢傳)》에서는 음순(陰循)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2. 후한서》 〈제9권〉 “初平元年[...]六月[...]大鴻臚韓融、少府陰脩、執金吾胡母班、將作大匠吳脩、越騎校尉王瓌安集關東,後將軍袁術、河內太守王匡各執而殺之,唯韓融獲免。”
전임
허상
후한소부
? ~ 190년
후임
전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