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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의암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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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의암사적비(晉州 義巖事蹟碑)는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적비이다. 2000년 1월 31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353호로 지정되었다.

진주의암사적비
(晉州義巖事蹟碑)
대한민국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종목유형문화재 제353호
(2000년 1월 31일 지정)
수량1基
시대조선시대
위치
진주 의암사적비 (대한민국)
진주 의암사적비
주소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500-8번지
좌표북위 35° 11′ 22″ 동경 128° 4′ 51″ / 북위 35.18944° 동경 128.08083°  / 35.18944; 128.08083좌표: 북위 35° 11′ 22″ 동경 128° 4′ 51″ / 북위 35.18944° 동경 128.08083°  / 35.18944; 128.08083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개요편집

의암사적비는 선조 26년(1593) 6월 29일,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진주의 사민(士民)들은 명암 정식(明庵 鄭拭:1683∼1746)이 지은 비문으로 경종 2년(1722)에 세웠다. 영조 16년(1740) 병사 남덕하(南德夏:1688∼1742)는 의기정포(義妓旌褒)를 계청하여 의기사를 창건하였고, 「의암사적비」에는 비각을 건립하여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라는 현판을 게시하였다.

이 비는 아래의 의암(義巖, 경상남도 기념물 제235호)과 마주하고 있어 의기 논개의 순국정신을 한층 더 흠모케 하고 있다. 이 비의 비문에는 “그 바위 홀로 섰고, 그 여인 우뚝 섰네. 여인은 이 바위가 아닌들 어찌 죽을 곳을 찾았고, 바위는 이 여인이 아닌들 어찌 의로운 소리 들으랴. 남강의 높은 바위, 꽃다운 그 이름 만고에 전해지리”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